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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죄었더니…회사채 발행 반 토막, 부도 기업 3개월 연속 증가세

급격히 늘던 화폐발행잔액·통화승수 감소…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 겹쳐

2022.12.02(Fri) 14:10:22

[비즈한국] 급등세를 보이는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달아 올리는 등 돈줄을 죄면서 시중에 돈이 안 도는 돈맥 경화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에 풀려있는 돈 자체가 최근 들어 감소한 데다 고금리에 기업과 가계에 대출이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돈이 도는 속도도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월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특히 소비와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자금을 구하기 위해 채권 시장에 나서고 있지만 시중에 돈이 안 돌면서 채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부도 위기에 처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이 오히려 경제 자체를 잡을 조짐을 보이면서 세계 각국에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하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은도 기준금리 인상 보폭을 좀 더 줄여나갈 지 주목된다. 

 

한은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화폐발행잔액은 178조 8917억 원으로 한 달 전(180조 6223억 원)보다 1.0% 감소했다. 화폐발행잔액이란 한은이 시중에 공급한 화폐 가운데 한은 금고로 다시 돌아온 금액을 제외하고 현재 시중에서 사용되는 현금을 의미한다.

 

화폐발행잔액은 2018년까지 110조 원 규모였으나 코로나19에 따른 경제난에 통화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급격하게 늘었다. 2019년 말에는 124조5216억 원으로 120조 원대를 넘어선 데 이어 2021년 말에는 166조6677억 원까지 올랐다. 올해는 9월에 180조 원까지 올랐으나 10월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3고(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투자와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화폐발행액 등 본원통화(화폐발행액+지급준비예치금)가 창출하는 통화량도 줄고 있다. 한은이 은행 등에 공급한 돈이 시중에 얼마나 잘 유통되는지 보여주는 통화승수(본원통화 대비 광의통화(M2)·평잔 계절조정 기준)는 올해 9월까지 평균 14.1배로 나타났다.

 

이는 한은이 은행에 1만 원을 공급하면 시중에 14만 1000원이 창출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통화승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평균(14.4배)보다 낮은 것은 물론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2년 이래 최저치다. 특히 올해 7월에는 통화승수가 월 기준으로 사상 최저치인 13.6배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시중에 돈이 도는 상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수인 통화유통속도(국내총생산(GDP) 대비 광의통화(M2))도 급격하게 느려지고 있다. 올 3분기 말 현재 통화유통속도는 0.122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통화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통화 한 단위가 각종 거래를 위해 몇 번 유통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통화유통속도 하락은 돈이 시중에서 그만큼 돌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 

 


한은이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공급을 억제하고, 시중에서 유통되는 통화량 자체도 줄면서 기업들은 자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0월에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액은 8조 2982억 원으로 전월(16조 4480억 원)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올 10월까지 회사채 발행 총액도 161조 9594억 원으로 전년 동기(176조 2367억 원)에 비해 8.1%나 감소했다. 회사채 발행뿐 아니라 회사채 거래 자체도 줄어들었다. 올 10월 회사채 거래액은 2712억 원으로 한 달 전(2970억 원)보다 258억 원(8.7%) 감소했다.

 

이러한 회사채 발행 및 거래 감소는 3고 지속으로 수출과 내수 모두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의 경영 상황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기업들의 부도가 서서히 늘고 있다. 10월에 부도업체는 20개로 지난해 11월(20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부도업체수는 7월 8개에서 3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 돈맥경화에 따른 자금난에 정부는 11월 28일 국고채 발행을 6조 원 축소하고, 은행 예대율(예금액 대비 대출액 비율) 규제를 완화해 8조5000억 원 추가 대출이 가능하게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안정을 내세운 중앙은행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기업들의 자금난을 불러오고 있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기업 지원을 위해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별무소용이 될 수 있다. 한은이 시장에 기준금리 인상은 계속된다는 사인은 보내더라도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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