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엔씨소프트가 K팝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의 매각을 추진한다.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클렙을 통해 지난해 1월 플랫폼을 출시한 지 약 2년 만이다. 후발주자로 시장에 뛰어든 엔씨소프트는 개발 역량과 엔터 사업을 접목한 유니버스를 발판 삼아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자리 잡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플랫폼과 콘텐츠 투자 비용에 더해 아티스트 IP(지적재산권) 부재로 인한 수익성 문제까지 비(非) 엔터사의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력한 팬덤을 확보한 하이브, SM 등 엔터사와의 경쟁에서 성과를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 빠르게 사업 정리를 논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엔터 성공’ 기대 등에 업었는데…출시한 지 2년 만에 매물로
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유니버스 사업부 매각을 추진 중이다. 사업 다각화 취지로 시작한 엔씨소프트의 엔터 사업은 개시 2년 만에 정리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시장가치는 1000억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인수 후보자로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산하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거론된다. 스타쉽은 가수와 배우 매니지먼트를 겸하고 있어 음원, 영상 IP를 성장 원천으로 삼는 카카오엔터 M컴퍼니 간판 자회사 중 하나다. 스타쉽을 통해 추가적인 동력을 확보하려는 카카오엔터는 유니버스 인수로 자체 플랫폼을 구축, 사업 확장에 기대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매각·인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엔씨소프트와 카카오엔터 측은 “확정된 바 없다”고 답했다.
방탄소년단(BTS)을 주축으로 한 하이브의 ‘위버스’, SM엔터테인먼트 자회사 디어유의 ‘버블’과 함께 3대 플랫폼으로 꼽히는 후발주자 유니버스는 이들 중 유일하게 게임사가 운영한다. 엔씨소프트는 2020년 7월 출자금 8억 원으로 자회사 클렙을 세우고,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해 엔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친동생이자 김택헌 수석부사장이 대표 자리에 올라 신사업을 이끌고 있다.
2021년 1월 서비스를 개시한 유니버스는 위버스와 버블의 성격을 결합한 형태다. 플랫폼 내에서 예능과 화보 등 자체 제작 콘텐츠를 제공하고 프라이빗메시지(프메)를 통해 자신이 구독한 스타와 대화할 수 있게 했다. 차별화 전략으로는 AI 음성 합성, 모션캡처, 캐릭터 스캔 등 선진 IT 기술을 내세우고 있다. 게임사의 정체성이 담긴 각종 IT 기술을 활용해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한다는 게 목표였다.
유니버스(위), 위버스(가운데), 버블(아래) 등 3대 팬덤 플랫폼은 팬 커뮤니티와 구독형 소통을 접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각 사 제공
#‘팬덤’ 아닌 ‘플랫폼’에 초점…엔터-게임 체질 달라 한계
하지만 게임사와 엔터사의 체질이 다른 만큼 엔씨소프트가 겪은 사업 운영상 한계도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팬과 아티스트의 소통 거점’이라는 외형은 같지만 수익 구조나 사업 목적은 다르기 때문이다. 위버스와 버블은 매니지먼트사로서 스타의 백업 역할을 하던 엔터사들이 플랫폼, IP 사업에서 성장할 발판이 된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하이브는 오프라인 행사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트위터로 이동해온 팬덤 문화를 자체 플랫폼에 정착시키고 이 사업을 3대 축으로 키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2월 1일 신인 걸그룹 뉴진스의 유료 구독 소통 서비스 모델도 개시했다. 하이브는 그동안 유료 구독형 소통에 선을 그어왔지만 내년 상반기 중으로 다른 입점 아티스트에게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이혜인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월간 이용자수(MAU) 7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100만 구독자는 충분히 달성 가능한 수준”이라며 수익과 흥행이 모두 검증된 사업 모델인 만큼 좋은 실적을 낼 것으로 내다봤다. 상장사인 디어유 버블도 JYP, FNC 등 국내 엔터사와 계약을 맺고 참여형 팬덤 플랫폼을 안정적으로 키우고 있다.
엔터사로서는 개별 아티스트의 상황에 따라 변동성이 컸던 취약점을 안정적인 플랫폼 사업을 통해 보완하려는 의도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팬덤 플랫폼은 엔터사의 새로운 먹거리이기도 하지만 기존 엔터 사업의 파급력을 증폭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아티스트와 관련된 콘텐츠·사업권을 이미 가진 엔터사들의 경우, 수수료를 떼지 않는 자체 유통 경로를 구축하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아티스트 사생활 문제나 ‘소통이 상품이 됐다’는 지적 등 잡음이 계속돼도 증권가에서는 팬덤 플랫폼이 엔터사의 핵심 동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이유다.
엔씨소프트는 유니버스를 발판 삼아 엔터·플랫폼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소속 아티스트 없이 수익성을 높이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사진은 하이브의 BTS(위), SM의 에스파. 사진=각 사 제공
유니버스를 통해 엔터 사업에 발을 내디딘 엔씨소프트는 상황이 다르다. 소속 아티스트가 없기 때문에 추가 비용이 드는 데다 장기적으로 재계약 때마다 수익 배분 조건이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악조건에 놓였다. 운영사 클렙은 지난해 매출 114억 원, 영업이익 17억 원으로 흑자를 냈지만 올해 3분기까지 매출 88억 원, 영업손실 3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모회사 엔씨소프트의 규모나 사업 초기인 점을 고려하면 큰 손실은 아니지만,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소속 아티스트 IP가 없기 때문에 낮은 수익성이 고질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엔터사처럼 외부 플랫폼에 지급해야 했던 수수료를 절감하는 수익적 효과나 팬덤 이탈을 방지하는 ‘록인 효과’ 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소속 연예인 라인업이 탄탄해 아티스트 입점에도 체력소모가 덜하고 별다른 마케팅 비용도 들지 않는 버블과 대조적이다. 버블은 지난해 매출 400억 원, 영업이익 132억 원으로 33.1%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알짜배기 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게임과 엔터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AI 기술을 접목해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세웠지만 매출이나 수익성,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 측면에서 계속 끌고 가는 것이 여의치 않겠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본업인 게임에 집중하기보다 타 분야로의 확장에만 몰두하니 게임 개발도 신사업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수는 입점 아티스트 계약 관리다. 지난달 엔씨소프트가 보이그룹 더보이즈 소속사 IST엔터테인먼트에 일방적으로 서비스 종료를 통보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연간 구독권을 보유한 구독자들에게 기존 구독권 환불과 이용 안내를 제대로 공지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엔씨소프트는 엔터나 메타버스 등 신사업 투자보다는 핵심 사업인 게임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노선을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올 3분기 연결기준 매출 6042억 원, 영업이익 1444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매출 21%, 영업이익 50% 성장을 이끌어냈지만 신작 부재로 리니지IP를 벗어난 새 수익원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다. 엔씨소프트는 내년 상반기 PC·콘솔 신작 게임 ‘쓰론 앤 리버티(TL)’ 등 공개를 계획하고 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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