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독일은 지난주부터 영하 3도가량으로 떨어지며 추위가 일찍 찾아왔다. 그래도 예년과 다름없이 크리스마스 마켓이 문을 열어 한껏 들뜬 연말 분위기가 시작되었다. 다시 코로나와 감기 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대중교통 이외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는 없어져 ‘마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코로나로 인한 격리 의무, 규제 등이 대부분 사라진 상태에서 이제는 코로나도 감기의 일종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으로 다소 위축됐지만, 그럼에도 한 해를 조용하고 따뜻하게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베를린 스타트업 커뮤니티들도 하나둘 연말 행사를 여는 중이다. 커뮤니티 성격마다 그 모습이 각양각색이지만 대체로 12월 초, 늦어도 15일 전에는 12월의 공식적인 행사가 끝이 난다. 이후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로 긴 휴가가 시작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일 년에 두 번, 여름휴가와 크리스마스 휴가 때 유럽 사람들은 일을 멈추고 긴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여름휴가는 일정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12월은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송년회, 신년회까지 대부분이 비슷한 시기에 모두가 동시에 한 번 쉼표를 찍고 간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베를린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연말 풍경을 살펴보자.
#커뮤니티마다 전체 송년회, 글뤼바인 마시거나 쿠키 만들어
베를린의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전통을 자랑하는 팩토리 베를린(factory Berlin)은 매달 열리는 커뮤니티 네트워킹 행사인 ‘해피아워(Happy Hour)’에 연말을 맞아 특별한 소재를 들고 왔다. 우리에게는 뱅쇼라고 알려진, 독일에서는 글뤼바인이라고 불리는 따뜻한 와인을 마시는 행사다.
글뤼바인, 그리고 따뜻한 과일주스의 일종인 킨더푼취(Kinderpunsch)는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다. 모두가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불빛 아래서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마켓을 방문해서 글뤼바인 한잔을 마시는 것이 낭만처럼 여겨진다. 팩토리 베를린에서도 글뤼바인과 크리스마스 마켓 스낵을 준비해서, 전체 커뮤니티 송년회를 마련했다. 열심히 달려온 한해를 함께 놀고 마시면서 즐기자는 의미이다.
유럽 최대의 모빌리티 허브인 드라이버리도 전통적인 ‘유럽식 크리스마스 행사’를 연다. 12월 13일 오후 4시에 커뮤니티 사람들이 모두 모여 쿠키를 만들고 장식하면서 글뤼바인을 마시는 것. 4시면 컴컴해지는 베를린의 특성상, 조금 일찍 시작하고 가족과 어린이를 동반할 수 있다.
베를린에서 10년 넘게 운영된 스타트업 커뮤니티 실리콘 알레에서도 매달 첫째 주 화요일 오전에 진행하는 커피 밋업을 통해 2023년을 준비한다. 실리콘 알레는 베를린의 테크신을 전 세계와 연결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실리콘 알레에서 매월 열리는 밋업은 전 세계의 스타트업계에서 베를린을 방문하러 오는 새로운 창업자와 테크신 종사자를 위한 일종의 환영 모임이다. 스타트업 창업자, 직원, 커뮤니티 일원, 투자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격식 없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도 연말을 맞아 독일식 아침을 먹었다
지난 금요일 오전 10시, 우리 회사도 코워킹 스페이스를 쓰는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제안으로 송년회 겸 독일식 아침을 먹었다. 각자 한 가지씩 먹을 것, 마실 것을 들고 와 소박하게 얘기 나누고 2~3시간 정도 아주 천천히 아침을 먹는 것이 독일식 주말 아침식사 풍경이다. 빵과 살라미, 치즈, 버터, 우유, 주스, 커피, 간단한 과일, 삶은 계란, 후식용 쿠키 등이 우리의 메뉴였다.
우리가 이 공유 오피스를 사용한 지 약 6개월 정도 되었지만, 그간 참 많은 사람이 오갔다. 처음 이 공간에 둥지를 틀었을 때 있던 2개의 회사는 더 큰 사무실로 옮겼고, 약 3개월 전부터 하나둘 새로운 멤버가 합류했다. 그러니 이날 아침 식사는 첫 공식 회식(!)이었던 셈이다. 오며가며 통성명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간단히 소개는 했지만, 이렇게 차분하게 앉아 아침을 먹으며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늘 화상회의가 많아서 아이팟을 끼고 누군가와 (내가 보기엔 허공에 대고) 얘기를 나누던 팀(Tim)은 리플랜시티(Replan.city)라는 모빌리티 최적화 솔루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다. 러시아인으로 2013년 베를린공과대학에서 교통 계획 및 운영(Transport planning and operation)을 전공하고 이후 바로 창업했다. 리플랜시티는 AI 기반 디지털 트윈을 사용하여 도시 및 온디맨드 모빌리티 사업자가 최적화된 경로 설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혼자 베를린에 있고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와 드레스덴에 직원이 있어서, 그간 아이팟을 끼고 늘 바빠 보였다는 것을 이번 아침 식사를 하며 알게 되었다.
이번 행사를 조직한 얀(Jan)은 사무실에서 분위기를 가장 부드럽게 이끄는 아주 친절한 친구다. 지멘스(Siemens)와 독일철도(Deutsche Bahn)에서 오랫동안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크라프트페어라우프 엔지니어링(Kraftverlauf Engineering GmbH & Co. KG)이라는 컨설팅 회사를 직접 설립해 기업을 위한 기술 기반 프로젝트 관리를 하고 있다.
그가 오랫동안 호주를 비롯한 아시아태평양에서 산 경험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누구보다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게 한 해가 갔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한 스타트업계에서는 성장의 속도만큼이나 시간도 로켓처럼 더 빨리 지나갔을 것이다. 과연 이 속도가 맞을까 이 방향이 맞을까를 계속해서 고민하면서 후진하지 못하고, 앞으로 가는 것을 숙명처럼 여기며 돌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빠르게 서로 소개할 겨를도 없이 바빴던 스타트업과 작은 회사들에게 이번 아침 식사는 송년회이면서 모두에게 좋은 쉼표가 되었다. 이렇게 관계가 시작되고, 깊이 있게 알아가며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내년에는 또 어떤 흥미로운 만남이 이어질까.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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