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더 크라운’이 시즌5로 돌아왔다. 로열 패밀리이자 셀러브러티 못지않게 가십을 몰고 다니는 윈저 왕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더 크라운’의 이번 시즌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윈저 왕가의 상징과도 같았던 엘리자베스 2세가 지난 9월 8일 세상을 뜨고 64년간 왕세자의 자리에 있던 찰스 왕세자가 찰스 3세가 된 ‘현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즌5가 다루는 시기는 1990년대로,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혼이 다뤄지는 때. 왕가의 이야기를 다룬 대중매체 작품에 대해 언제나 왕가의 반응은 내심 노심초사겠지만 이번은 특히 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시즌5는 왕실 요트에 ‘브리타니아’란 이름을 내렸던 젊은 엘리자베스 2세의 과거 모습으로 오프닝을 연 뒤, 노년에 접어든 엘리자베스 2세가 건강검진을 받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부쩍 건강에 유의해야 할 60대인 여왕과 달리, 아들이자 후계자인 찰스는 원숙한 40대가 되어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싶으나 왕세자라는 제한된 역할 때문에 답답해하는 처지. 2022년의 현실을 사는 우리는 찰스가 70대가 되어서야 왕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 크라운’에서 역할을 두고 은근한 견제를 벌이는 여왕과 왕세자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여전히 카밀라와 불륜을 이어가는 찰스 왕세자의 불륜이 세상에 불거지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왕가를 둘러싼 영국은 시끄러워지고, 여기에 소련의 붕괴와 홍콩의 중국 반환 등 90년대의 격변이 그려지며 시즌5는 짐짓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이 결혼에는 셋이 있었다. 그래서 약간 복잡했다”라는 다이애나의 유명한 발언이 나온 BBC 인터뷰가 이루어지기까지의 내막도 비중 있게 담는다. 이 인터뷰는 드라마에서 그린 것처럼 BBC 기자였던 마틴 바시르가 조작된 서류를 활용해 다이애나의 신뢰를 사 성사시킨 것으로, 지난 2020년 조사를 의뢰해 거짓으로 성사됐음이 알려지며 BBC가 공식사과와 배상을 진행한 건이기도 하다.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생활과는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 인터뷰의 진실이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서야 밝혀졌다는 것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왕실 사람들과 왕실에 얽히는 사람들, 총리로 대변되는 정치인 등 왕가와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고 다층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더 크라운’답게 시즌5에서도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진다. 유색 인종으로 출세를 위해 인터뷰에 집착하는 BBC 기자 마틴 바시르, 당시 최연소 영국 총리로 집권해 의욕적인 개혁 의지를 보이는 토니 블레어, 단순한 불륜 상대가 아니라 찰스의 연설문에 코치를 할 만큼 진지한 인생 파트너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카밀라, 로열 패밀리에 접근해 영국 상류사회에 진입하려 애쓰는 모하메드 알파예드 등 실존 인물들을 거리감을 두고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게 연출한 점이 눈에 띈다.
물론 핵심은 여전히 윈저 왕가 사람들이다. 이번 시즌 서사의 축이 찰스와 다이애나 부부에게 있기에 엘리자베스 2세의 개인적인 모습은 다소 축소된 모양새지만, 여전히 ‘더 크라운’의 기둥은 여왕에게 있다. 특히 아들 며느리 부부의 불화에 따라 왕실에 흠결이 나고 대중의 지지가 약화되면서 여왕으로서, 어머니로서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금은 없는 여왕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배우들은 ‘더 크라운’ 시리즈를 보는 묘미. 시즌5에서는 젊은 시절의 여왕을 연기했던 클레어 포이, 중년의 여왕으로 중후함을 보여준 올리비아 콜먼에 이어 노년의 여왕으로 이멜다 스턴톤이 등장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돌로레스 엄브릿지 교수로 잘 알려진 그이기에 처음엔 올리비아 콜먼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으나, 역시는 역시다. 노년에 접어들어 유약해지는 감정을 애써 추스르며 왕위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는 데 모자람이 없다. 올리비아 콜먼, 헬레나 본햄 카터, 찰스 댄스, 질리언 앤더슨이란 무시무시한 중년 배우 라인업에 젊은 다이애나를 맡은 엠마 코린을 스타로 탄생시켰던 시즌3, 4에 비하면 시즌5의 라인업은 조금 심심해 보일 수 있다. 물론 아쉬움을 상쇄시킬 배우도 있다. 여왕의 동생인 마거릿 공주가 이루지 못한 옛사랑 피터 타운센드와 재회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4화를 보면, 무려 티모시 달튼이 피터 타운센드로 등장하기 때문! 4대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티모시 달튼은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중후한 멋을 자랑하며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더 크라운’ 시즌5는 찰스와 다이애나의 파국을 담으며 ‘다이애나의 죽음’이라는 폭풍전야를 향해 달려간다. 특히 이번 시즌은 찰스 왕세자와 당시 존 메이저 총리가 여왕의 퇴위를 은연중 의논하고, 필립 공과 페니 냇치불의 각별한 우정을 다루는 등 예민한 이야깃거리가 많아 ‘악의적인 왜곡’이란 비판도 받고 있는 상태다. 실존 인물들을 그리기에 불편한 사람은 많겠지만, 현재 시즌6을 촬영하고 있을 만큼 이 시리즈에 팬심을 고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어마무시하게 많다. 편당 제작비 150억원이 이해가 가는 싱크로율 높은 영상미도, 시즌1부터 시즌4에 이르기까지 미국 에미상을 휩쓸 정도로 인상적인 배우들의 연기도 이 시리즈를 놓지 못하게 만든다. 비록 찰스 3세는 이번 시즌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 불태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테지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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