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국 최초로 도시재생과 재개발이 동시 추진되던 노원구 백사마을에 일반 분양 아파트가 먼저 지어진다. 현재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인 임대주택 주거지 보전 사업은 투자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류하고, 분양 아파트 재개발을 선(先)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당초 마을 원형을 보존하도록 구상됐던 임대주택단지는 내년 7월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심사 판정에 따라 시행 방향이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9월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관련 질의를 받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고 지시하겠다”고 밝힌 지 한 달여 만에 나온 대안적 조치다. 부적격 판정이 떨어지면 정비계획 변경 등으로 사업이 최소 3~4년 더 지연될 것을 우려한 주민 건의가 반영됐다. 한때 서울시가 임대주택 비용 문제로 제동을 걸면서 사업 재개까지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이번 조치로 이주비 누적 등 주민 부담을 해소하는 임시방편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반년 만에 주민 의견 반영…주거지 보존과 분리해 재개발 사업 재개
24일 정비업계와 관계기관 등에 따르면 현재 노원구 중계본동 주택재개발 사업은 토지 등 소유자 약 1250명에게 분양신청을 받고 있다. 11월 8일부터 30일간 진행하는 분양신청은 조합원들이 개략적인 분담금을 안내 받고 아파트 평형 등을 선택하는 절차다. 11월 11일 주민전체회의에서는 전기·정보통신 시공사로 GS건설이 선정됐다.
황진숙 중계본동 주택재개발 사업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은 “백사마을은 서울시가 지난 10년 동안 진행해온 주거지 보전안 검토로 사업 중단 위기를 맞았지만, 분양단지를 먼저 진행하겠다는 주민대표회의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며 “지난해 말 시공사 선정에 이어 전기·정보통신 시공사도 결정돼 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은 도시재생과 재개발을 결합한 정비 방식이 처음 시도된 곳이다. 주택단지형 484세대 규모(4만 832㎡) 주거지 보전 사업과 일반 아파트 1953세대(14만 6133㎡) 규모의 재개발 사업이 동시 진행될 계획이었다. ‘상생형 주거지 재생’에 나선 서울시가 오세훈 시장 재임 시기인 2011년 기존의 전면 재개발 정비계획을 보류하고, 이듬해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주거지 보전 사업 직접 시행을 결정한 이래로 10년간 추진됐다. 하지만 지난해 말 비용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기존 마을의 지형, 계단·골목길, 작은 마당 등 원형 보존을 목표로 하는 임대주택의 건축비가 분양 아파트(3.3㎡당 508만 원)보다 2배 이상 높은 1100만 원으로 책정되면서다.
이후 백사마을은 올 봄부터 사실상 사업이 멈춘 상태였다. 총 1700억 원이 투입되는 임대주택 사업이 발이 묶이며 재개발 사업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주거지 보전 사업은 서울시 예산으로 매입한 주거지 보전 용지 위에 시행자 서울주택공사(SH)가 건물을 지으면 서울시가 값을 치르는 ‘매입형 임대’ 방식이 적용된다. 서울시가 주거지 보전 사업의 토지비나 건축비를 확정하지 않으면 통합 정비계획으로 묶여 있는 일반 재개발도 추진이 불가능하다. 지난 3월 SH로부터 임대주택 공사비 내역을 전달 받은 서울시는 ‘너무 비싸 검토가 필요하다’며 공사비 산정 결정을 미뤘다. 이후 서울시는 타 임대주택과의 형평성, 투자 대비 효율성 등 재정 운영에 대해 객관적인 검토를 받기 위해 행정안전부에 중앙투자심사를 맡겼다.
현재 투자심사의 사전 절차인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인데, 이번 조사를 맡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조사 개시 후 결과 도출까지 6~7개월이 소요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내년 2월에 타당성 조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3월에 바로 투자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반 아파트로 변경 유력…‘상생형 재생’ 밀어붙인 서울시 비판 피하기 어려워
우여곡절 끝에 분양 단지를 우선 시행할 수 있게 된 마을 주민들은 사업 재개를 반겼다. 조합은 기존 사업시행 인가안대로 내년 5~6월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주민대표회의 측은 “일단 주거지 보전 용지 가격은 수입으로, 서울시 몫인 건축비용은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처리해 감정평가를 받았다. 이를 토대로 9월 말쯤 조합원 분양가가 확정됐다”며 “일반 분양 아파트의 경우 2024년 초 착공, 2026년 말까지 준공을 완료해 조합원 입주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거지 보전 용지가 어떤 사업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따라 백사마을의 전체 모습도 달라질 전망이다. 예상 가능한 방안은 크게 세 가지다.
타당성 조사 혹은 투자심사 단계에서 적격 판정을 받는다면 기존의 주거지 보전안대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산자락의 고층 아파트단지와 옛 마을의 성격을 녹아낸 저지대의 임대주택단지가 조화를 이루는 첫 사례가 탄생한다. 다만 적격 판정이 나와도 서울시와의 매매 급액 협의에서 주민 분담금이 늘어나는 결과가 나온다면 주민들의 반발이 일 수 있다. SH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분양 신청 절차를 시작하기로 했다. 다만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위해서는 주거지 보전 구역에 대해 서울시와 임대주택 매매금액 협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비 업계 안팎에서는 이 계획이 최종적으로 부적격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다수다. 통상적으로 재개발 지역의 임대주택 사업은 투자심사 대상이 아니지만, 이번 사례는 면적에 비해 입주하는 가구 수가 적고 1700억 원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서울시의 비생산적 재정 운영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9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오세훈 시장에게 백사마을 관련 시정질문에 나선 서준오 의원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서울시와 노원구청 담당자들 모두 주거지 보전 사업 투자심사가 부적격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분양단지를 우선 시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심사가 부적격으로 나오면 정비계획을 임대 아파트 건립으로 변경해야 하므로 백사마을 개발은 앞으로 4~5년 더 있어야 시작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주거지 보전 용지에도 아파트가 건설되는 방안이 유력한 시행 방향으로 꼽힌다. 정비계획을 변경해 건축심의를 받고 일반 재개발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하는 식이다. 이 경우 백사마을은 약 3000세대의 미니 신도시급 대단지로 조성된다. 서울시 몫으로 넘어갔던 임대주택 비율은 다시 조합에 편입돼 기존 일반 분양 단지 구성과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3의 방안이 고려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비즈한국 취재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시와 SH, 주민대표회의가 공사비 논란 이후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서울시는 사업 지연을 막을 수 있는 차선책으로 ‘부지를 서울시에 매매하는 안’을 거론했다. 서울시가 일단 땅 매입만 하고 임대주택 건축 및 공급 사업은 보류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주민대표회의가 당시 이 제안을 거부한 데다 투자심사 부적합 결론까지 난 상황에서 이 방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낮지만 이전에 언급되지 않은 새 대안이 제시될 수도 있다.
다만 투자심사 이후 백사마을 사업이 새롭게 정비해 순항하더라도 서울시가 사업 지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택단지 건설단가는 아파트 보다 훨씬 높은데 이를 추진 10년 만에 문제 삼은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백사마을 사업 진행 상황을 묻는 질문에 “서울시가 사업시행자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 분양 단지 사업의 추진과 시행에 관해서는 결정하거나 추진하는 사항이 없다”고만 답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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