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조 6000억 원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이 발생한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도주 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3년째 해외 도피 중인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과 이인광 에스모 회장에 이어 또 다시 핵심 인물을 놓치면서 라임 사태의 전모를 밝힐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현재 수감된 라임 사태 관련자 가운데 ‘몸통’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과 김정수 전 리드 회장 정도다.
2020년 5월 구속기소 됐다가 지난해 7월 보석으로 석방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 온 김봉현 전 회장이 지난 11일 결심공판 직전 전자장치를 끊고 도주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의 밀항 준비 정황을 포착, 신병을 확보하려 했으나 법원은 지난 9월 14일과 10월 7일 두 차례 김 전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달 26일 보석 취소를 신청했으나 법원은 김 전 회장이 자취를 감춘 지난 11일 뒤늦게 보석 취소를 결정했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세 차례의 신병확보 기회를 놓친 데에 대한 법원의 책임론이 제기된다. 김 전 회장은 이미 2019년 12월부터 2020년 4월까지 5개월간의 도피 전력이 있는 데다, 횡령 공범이던 수원여객 전 임원의 해외도피를 위해 전세기까지 지원해준 바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에게 도주를 권유하고 자금을 지원했던 것 또한 김 전 회장이다. 이 전 부사장은 재판 과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김 전 회장의 권유로 도주했으며, 김 전 회장이 운전기사와 차량 및 휴대폰 등을 지원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이번 김 전 회장의 도피에서 주목할 점은 도주를 도운 인물이 김 전 회장의 조카라는 점이다. 김 전 회장은 도주 직전까지 함께 있던 조카 A 씨와 휴대전화 유심을 바꿔 끼우고 도주했다. 검찰은 이 밖에도 A 씨가 김 전 회장의 도주를 도운 정황을 포착했으나, 친족의 도주를 도운 경우 범인도피죄로 처벌할 수 없도록 한 형법 규정에 따라 A 씨를 체포하지는 않았다.
과거 도피 당시 김 전 회장은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도피 중이던 김 전 회장의 호텔 예약, 치과 치료 등을 위해 명의를 빌려주거나 도움을 준 측근 홍 아무개 씨는 과거 이인광 전 에스모 회장과 함께 코스닥 주가조작 및 횡령 사건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라임 사태 혹은 그 이전부터 주가조작 및 기업사냥 등으로 관계를 맺고 있던 ‘선수’들이 서로의 도피를 지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라임 사태에 정통한 법조계 인사는 “라임 사태의 다른 주요 인물들이 해외 도피 중인 데다,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이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자 김 전 회장도 중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해 해외 도주를 결심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 전 회장은 다단계판매(피라미드) 출신으로 도피할 경우 이를 지원할 조력자가 많다”면서도 “과거에 도피를 도운 이들이 재판에 넘겨졌던 만큼, 이번에는 범인도피죄를 적용하지 못하는 친족(조카)의 도움을 받은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김봉현 전 회장이 사라지면서 라임 수사는 더욱 미궁에 빠졌다. 라임 자금이 미국 사모펀드(IIG·International Investment Group LLC)로 흘러가게 된 경위와 법조계·정재계 로비 의혹 등이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김 전 회장이 ‘배후’로 지목한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의 체포도 필수다. 부동산 개발회사 메트로폴리탄과 14개 계열사를 운영하면서 라임으로부터 국내 부동산 개발 등의 명목으로 약 3500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김 회장은 2019년 10월 라임 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한 이후 자취를 감췄다.
김영홍 회장의 도피 자금줄은 필리핀 막탄섬에 위치한 이슬라리조트로 추정된다. 이슬라리조트에는 라임 자금 300억 원이 투입됐다. 김 회장은 사촌 형 김 아무개 씨를 비롯한 측근들을 통해 이슬라리조트와 카지노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받아 도피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사촌 형 김 아무개 씨는 지난 6월 필리핀에서 귀국해 경찰 조사를 받았고, 정 아무개 총괄대표는 지난 1월 필리핀 현지에서 체포, 국내 송환돼 재판에 넘겨졌다. 정 대표는 지난 8월 11일 1심에서 온라인 도박장 개설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강원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정 대표 등 4명을 도박공간 개설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에 따라 정 대표는 같은 혐의로 추가 수사를 받게 됐다.
그러나 도피 교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김 회장의 소재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다. 경찰은 지난 10월 17일 범인도피교사·범인도피 혐의를 받는 김영홍 회장과 그의 도피를 도운 사촌 형 김 아무개 씨, 이슬라리조트 카지노 총괄 대표이던 정 아무개 씨 등 9명에 대한 수사를 중지했다. 김 회장의 소재를 발견하기 전까지 관련 수사를 중지한다는 것. 앞서 경찰은 김 회장과 김 씨, 이슬라리조트 카지노 근무자들 간의 통화 내용을 확보한 바 있다.
김 회장 측근들의 이슬라리조트 카지노 도박장 불법 영업과 도피자금 지원을 고발한 고발인은 “김 씨와 직원들을 수사해 김 회장의 소재를 파악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김 회장의 소재 파악 전까지 수사를 중지한다는 것은 봐주기식 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김 회장은 현재에도 온라인 카지노를 재정비, 국내에 송출하며 도피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은닉재산 추적 전문 변호사인 백왕기 변호사는 “김봉현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조카 A 씨와 김영홍 회장의 사촌 형 김 씨의 사례는 다르다”며 “김 씨는 제3자와 김 회장을 연결해 이슬라리조트 근무자들을 통해 김 회장의 도피를 지원, 범인도피를 교사했다. 또 지시를 받은 이슬라리조트 근무자들에 대해서는 범인도피죄가 성립된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eop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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