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용산구청이 우리나라 대표 부촌으로 꼽히는 한남동 단독주택 단지에 위치한 도로를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변경해 국내 유력 기업인에게 매각한 사실이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용산구는 이 땅이 그간 도로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향후 행정 목적으로 사용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매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공이 이용해야 할 도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배경에는 용산구 측의 방만한 행정이 자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와 부동산등기부 등에 따르면 용산구는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독주택 단지에 위치한 143.7㎡(43.5평) 규모 토지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에게 26억 7117만 원에 매각했다. 직사각형 형태인 이 땅은 조 회장이 보유한 한남동 단독주택 동쪽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소유한 단독주택 서쪽에 맞닿았다. 남북으로는 한남동 단독주택 단지에 뻗은 도로와 접했지만 남쪽면이 도로와 15m가량 고도차가 있는 낭떠러지로 사실상 막다른 길에 자리했다.
땅 용도는 당초 도로였지만 매매 직전 대지로 변경됐다. 용산구는 1996년 서울시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이 땅을 1989년 2월 승계해 33년간 도로로 관리했다. 그러다 조정호 회장 측이 이 도로에 대한 용도 폐지 신청을 내자 올해 3월 내부 검토를 거쳐 도로 용도를 폐지했다. 거래 일주일 전인 지난 4일에는 땅의 용도가 대지로 최종 변경됐다. 공공이 이용하던 도로가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바뀌어 개인에게 매각된 셈이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이 땅 일부를 수년간 무단 점용했다. 조 회장이 2004년 지은 지하 1층~지상 2층(연면적 728.36㎡) 규모 단독주택은 이번에 거래된 토지 서쪽 9.5㎡를 침범하고 있다. 용산구는 2018년 11월 토지 측량 과정에서 무단 점유 사실을 확인하고 5년분 변상금 830만 원을 부과했다. 지방재정법에 따라 공유재산에 대한 권리와 의무는 5년까지 행사할 수 있다. 조 회장은 이듬해인 2019년 4월 토지 사용 허가를 받고 이후 사용료를 납부해 왔다. 용산구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일단 건물이 도로를 침범해 무단점유를 시작하면 철거가 어려워 이미 지어진 건물에 대해서는 사용 허가를 낸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 땅이 용도가 바뀌어 민간에 매각된 배경은 뭘까. 용산구는 이 땅이 그간 도로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향후에도 행정 목적으로 사용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자체는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따라 행정재산이 사실상 행정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경우 용도를 변경하거나 폐지할 수 있다. 행정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일반재산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민간 매각이 가능하다. 매각 방식은 일반입찰이 원칙이지만 재산의 위치, 형태, 용도와 계약의 목적, 성질을 고려해 수의로 계약할 수 있다.
용산구는 지난 9월 토지 매각에 대한 용산구의회 승인을 받으면서 “해당 토지는 매수신청인 소유의 건물이 부지 일부를 점용하고 있는 상태로, 일반인의 통행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위치하고 나무 등이 자라고 있어 현재 공지로 활용되고 있다. 또 토지 아래쪽은 옹벽으로 막혀 있고 15m 가량의 고저차가 있어 행정목적으로 활용 가능성이 없으므로 인접한 토지소유자에게 수의계약으로 매각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매각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용산구가 장부상 도로였던 이 땅을 실제 도로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의문이다. 비즈한국이 과거 사진과 현장을 확인한 결과 이 땅은 장기간 노면 관리가 되지 않아 수풀과 나무가 우거졌다. 도로 포장이나 노면 정리 등 사람이나 차가 오가도록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남동 단독주택 단지 주도로와 연결되는 남측면도 옹벽으로 고도가 높아져 낭떠러지 형태를 띠었는데, 굴착으로 두 도로를 연결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용산구 도시계획과는 ‘인접 도로와의 연결성 필요 여부’, ‘장래 도로 확장 활용 가능성 여부’ 등을 논하는 이 도로 용도 폐지 유관부서협의 공문에서 “별도 의견 없음”이라고 적었다.
용산구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토지주 측 용도 폐지 신청을 받아 유관부서인 도로과와 도시계획과 등에 현재 도로로 기능을 하는지, 향후 활용할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모두 별도 의견이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행정재산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유관부서 판단을 수렴해 도로를 용도 폐지했다”고 설명했다. 용산구 재무과 관계자도 “일반재산으로 바뀐 해당 토지가 미래 행정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낮아 보존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토지 매매 가격은 시가에 준하는 수준으로 파악된다. 용산구가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에게 매각한 땅의 제곱미터당 실거래가격은 1859만 원으로 개별공시지가(올해 7월 기준) 1217만 원, 9월에 거래된 인근 토지 매매가격 1835만 원보다 높다. 공유재산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일반재산을 처분할 때는 시가를 고려해 2인 이상의 감정평가 결과를 산술평균한 금액 이상으로 매도 가격을 정한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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