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배우 김혜수의 20년 만의 사극 복귀작으로 주목을 모은 tvN의 드라마 ‘슈룹’이 화제다. 조선 로열패밀리의 교육법을 소재로 모든 궁중 엄마들의 멈출 수 없는 자식 사랑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네 아들의 목숨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 화령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를 그린다.
첫 화 시청률 7.6%(닐슨코리아 전국)를 기록하는 순항으로 시작해 10화가 방영된 지난주 일요일은 전국 가구 기준 최고 13.5%의 시청률을 기록한 ‘슈룹’은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 시간대 1위를 차지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조선시대 왕족판 버전 ‘스카이 캐슬’이라는 평가와 함께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이 드라마는 현재 궁중 암투로 세자가 죽은 뒤, 혈통과 상관없이 후궁의 서자까지 세자가 될 기회를 주는 왕자들의 ‘택현’ 경합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 서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신하들의 야욕을 방지하려는 임금은 택현의 경합 과제로 왕자들을 어사로 파견해 왕이 세자에서 임금이 되었을 때 관직을 거절한 이들을 불러들이는 어려운 미션을 왕자들에게 부과한다.
이 미션 도중 타 후궁의 방해 작업으로 가진 모든 것을 잃은 고 귀인의 아들 심소군이 만신창이가 되어 궁궐 앞에 도착하는 일이 벌어진다. 신분증이 없어 신분을 밝히지 못해 궁궐 안에 들어가지 못한 심소군은 어렵게 고 귀인을 궐문 밖으로 불러내지만, 남루한 아들의 행색을 본 고 귀인은 몸도 마음도 지친 자식의 상태보다는 경합을 중도 포기하고 온 사실에 기함하며 바로 아들을 궁 밖으로 내친다. 모든 기력을 다 빼앗긴 심소군은 궐문 밖 길에 버려지고, 그런 그를 중전의 상궁이 발견해 궐 안으로 들어와 중전의 보호를 받게 된다.
중전으로 인해 아들의 택현이 중단되었다고 생각한 고 귀인은 다시 궁으로 돌아온 아들 심소군에게 가문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며 “차라리 죽지 그랬냐”, “널 낳은 것이 후회된다”는 모진 말을 내뱉는다. 그런 어미의 말에 상처을 입은 심소군은 목을 매는 자살 시도를 하나, 숨이 넘어가기 직전, 중전 화령의 발견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심소군이 몸을 회복하고 눈을 뜨자 중전은 “술을 마셔본 적이 있느냐”며 심소군에게 술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화령은 7할 이상 술을 채우면 밑으로 흘러버리는 ‘계영배(戒盈杯)’에 술을 따라주며 “술을 7할 이하로 따르면 그대로 있지만, 7할 넘게 따르면 작은 구멍으로 술이 새어나가는 ‘계양배’처럼 어쩌면 사람에게도 이런 작은 구멍이 뚫려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만족한다면 꽉 채우지 않아도 잘 사는 것”이라며 심소군을 위로한다. 그런 중전의 말에 심소군이 늘 뛰어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다는 말을 한다. 그러자 중전은 그에게 “너도 왕세자가 되고 싶었으냐?”고 묻는다. 이에 심소군은 “원치 않는다”고 하니, 그 말을 들은 중전은 다음과 같은 말을 그에게 전한다.
“그럼, 넌 국본이 못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뭐가 한심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한심한 짓이지. 사람들은 이 ‘계영배’의 넘침을 경계하지만, 난 말이다. 이리 숭숭 뚫려있는 구멍이 좋다. 비울 건 비우고 필요 없는 건 다 새어나가니까. 그러니 너도 하고 싶은 건 해보고, 맘에 안 들면 확 들이받아 보기도 하고, 고집도 좀 부리거라. 그래야 숨통이 트이지.”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의 잔인 ‘계영배’를 두고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해내는 그녀의 혜안에 놀랐다. 그리고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할 줄 아는 화령의 태도에 드라마를 보는 내 숨통도 뻥 뚫리는 것 같은 감동이 왔다. 때론 삶에 있어 치열한 노력과 절제도 중요하지만, 그 일이 나에게 정말 맞는지 고찰해 보고, 내 의지로 내려놓고 비울 건 비울 줄 아는 태도를 갖는 것. ‘계영배’를 두고 이렇게 다른 해석을 할 줄 아는 발상의 전환이 참으로 짜릿했다.
지금 무언가 숨통이 조이게 힘든 일을 겪고 있는가? 혹은 그 일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면, ‘슈룹’의 중전 화령이 따라주는 ‘계영배’가 당신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 보시길. 지금 직면한 상황이 당신한테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고 중요한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계영배’를 통해 흘러내리는 술처럼 그것을 내려놓고 흘려보내는 것도 고려해 보길 바란다. 그래야 당신 숨통도 트일 테니까. 중전 화령의 말처럼 “꽉 채우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한다면 잘 사는 것”이니 말이다.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라떼 부장에 고함]
'우리들의 차차차' 속 1분 눈 마주보기의 비밀
· [라떼 부장에 고함]
'한 우물' 파고 싶다면? 배우 박은빈처럼 나를 돌아보는 게 먼저
· [라떼 부장에 고함]
권위적이지 않은 따뜻한, 배우 유해진의 '넉넉한 리더십'
· [라떼 부장에 고함]
'포기하는 용기'를 가르쳐주는 드라마 '오늘의 웹툰'
· [라떼 부장에 고함]
드라마 '환혼' 속 기세와 허세, 그 한 끗 차이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