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백조자리 한가운데 5000광년 거리에는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이상한 별이 존재한다. 볼프-레예 140(WR 140, Wolf-Rayet 140)이라는 별인데, 최근 제임스 웹을 통해 관측한 모습은 더욱 놀라웠다. 밝게 빛나는 별 주변을 동심원의 형태로 둥글게 감싼 빛의 고리가 드러났다.
사실 기존의 지상 관측에선 많아야 두 개 정도의 희미한 고리만 겨우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웹은 중심 별에서 더 멀리까지 퍼진 채 어둡고 미지근하게 달궈진 먼지 고리까지 볼 수 있어 최소 17개가 넘는 놀라운 모습의 고리를 담았다. 사진에 보이는 고리는 망원경 광학 기기 때문에 퍼진 잔상이 아니다. 실제로 별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우주에 찍힌 거인의 지문처럼 느껴진다.
제임스 웹으로 관측한 WR140 사진을 보면 흔히 먼지 고리 자체에만 주목하곤 한다. 그런데 이 별이 특별한 건 17겹의 먼지층 때문만이 아니다. 오래전 우리 태양계가 바로 이러한 별 곁에서 탄생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천문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우주에서 가장 이상한 별일지 모르는 이 놀라운 곳의 진짜 비밀을 소개한다.
우주에서 가장 이상한 별로 손꼽히는 볼프-레예 별과 태양계 탄생의 흥미로운 연결 고리를 소개한다.
볼프-레예 140. 이곳은 진화 막바지에 접어든 죽음을 앞둔 무거운 별 두 개가 함께 서로의 곁을 돌고 있는 쌍성이다. 둘 중 하나는 태양 질량의 20배가 넘는 아주 뜨겁고 푸른 O형 별이다. 그리고 이 별과 함께 태양 질량의 8배 수준의 죽음을 앞둔 또 다른 별이 함께 돌고 있다. 거대 지문 패턴을 남긴 주인공이 바로 이 두 번째 별이다.
원래 이 별은 지금보다 훨씬 무거웠다. 태양 질량의 25배가 넘는 아주 육중한 별이었다. 이런 무거운 별은 아주 매서운 속도로 빠르게 중심의 수소를 태우며 밝게 빛난다. 수소 핵융합이 벌어지면서 별 중심에는 수소 연료가 빠르게 고갈되고, 그 결과 만들어진 헬륨 찌꺼기만 쌓인다. 이후 수소 연료가 모두 고갈되면 별은 뒤이어 헬륨 찌꺼기를 재활용해 다시 밝게 빛난다. 다시 헬륨을 융합해서 그 다음 탄소 찌꺼기를 쌓아둔다. 헬륨 핵융합은 수소 핵융합에 비해 훨씬 난폭한 과정이다. 그래서 별은 훨씬 더 격렬하게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요동친다.
이 과정에서 별은 자신의 물질 상당 부분을 우주 공간으로 토해내기 시작한다. 특히 이때 분출되는 물질 대부분은 높은 온도로 이온화된 헬륨, 그리고 헬륨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 탄소다.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면서 아주 높은 헬륨, 탄소 함량을 보여주는 별을 볼프-레예 별이라고 한다. (참고로 볼프-레예 별은 꼭 쌍성일 필요는 없다. 무거운 별 혼자서 진화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막대한 질량 손실을 겪고 있다면 그 별 역시 볼프-레예 별에 해당한다.)
WR 140의 볼프-레예 별 역시 원래는 태양 질량의 25배가 넘는 아주 육중한 별이었지만,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물질을 전부 우주 공간으로 토해내면서 지금은 태양 질량의 8배 수준만 남게 된 것이다. 이번 제임스 웹에 포착된 먼지 껍질 층이 바로 이 격렬한 물질 분출의 흔적이다.
그런데 이곳은 볼프-레예 별이 또 다른 육중한 별과 함께 쌍성을 이루고 있다. 두 별은 약 7.93년을 주기로 함께 서로의 곁을 맴돈다. 궤도를 맴돌면서 두 별은 모두 사방으로 많은 물질을 분출한다. 두 별에서 분출된 물질이 빠른 속도로 맞부딪히면서 반죽된다. 특히 볼프-레예 별은 많은 양의 탄소를 분출한다. 그런데 이 탄소 성분은 별 바깥으로 분출되자마자 온도가 빠르게 식어, 뜨겁게 달궈진 성간 가스 구름을 식히는 일종의 냉각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두 별 사이에서 각자의 물질 분출이 빠르게 맞부딪히는 현장에서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린 많은 양의 먼지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게다가 두 별이 함께 맴돌면서 먼지 덩어리는 사방으로 나선 형태로 퍼져나간다. 두 별이 궤도를 돌면서 가장 가까이 접근할 때마다 한 번씩 먼지 껍질이 퍼져 나왔다. 즉 WR140 별 주변에서 발견된 17겹의 먼지 껍질은 8년마다 한 번씩 퍼져 나오는 별의 나이테인 셈이다.
특히 두 별은 아주 극단적으로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린다. 궤도를 도는 동안 두 별의 거리는 최소 2억 km에서 최대 40억 km까지 크게 변한다. 두 별 사이 거리가 태양-화성 거리에서 태양-해왕성 거리까지 변하는 셈이다. 이렇게 길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면서 서로의 곁을 맴돌기 때문에, 사방으로 퍼져나간 먼지 껍질의 모습도 단순히 둥근 동심원의 형태가 아닌 살짝 찌그러진 직사각형의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방으로 분출된 먼지 껍질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재현했다. 흥미롭게도, 별에서 뿜어 나온 물질이 단순히 같은 속도로 쭉 퍼져나간다고만 가정하면 제임스 웹이 관측한 실제 17겹 먼지 껍질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었다. 먼지 껍질이 같은 속도가 아니라 더 빠른 가속을 받으며 퍼져나간다고 해야 실제 관측 결과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별에서 분출된 먼지 껍질층이 그 별의 강력한 별빛으로 인해 복사 압력을 받으면서 더 빠르게 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태양빛의 복사 압력을 활용해 속도를 높여 우주를 여행할 것이라 이야기하는 스타샷과 같은 원리다. 강렬한 별빛의 압력으로 인해 가스 먼지가 가속될 수 있다는 기존의 가설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역사적 발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볼프-레예 별이 특별한 이유는 별이 남긴 나이테의 흔적만이 아니다. 바로 이곳이 어쩌면 오래전 우리 태양계가 태어난 현장과 가장 흡사한 곳일 수 있다.
태양계 외곽을 떠도는 소행성을 분석하면 50억 년 전 태양계가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 어떤 재료가 얼마나 쓰였는지 초기 재료를 파악할 수 있다. 태양계 소행성들은 우리 은하 평균에 비해 7배나 더 높은 알루미늄 26의 함량을 갖고 있다. (정확하게는 동위원소 알루미늄 27 대비 알루미늄 26의 비율을 의미한다.) 알루미늄은 초신성 폭발 과정에서 주변에 퍼질 수 있는 대표적인 성분 중 하나다. 그래서 한동안 많은 천문학자들은 50억 년 전 이름 모를 초신성 하나가 폭발했고 그 충격파로 인해 밀려나간 먼지 구름이 다시 높은 밀도로 반죽되면서 태양계가 형성되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더 많은 소행성을 탐사하면서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태양계의 알루미늄 26 함량이 우리 은하 평균에 비해 훨씬 높은 반면, 철 60의 함량은 굉장히 적다. (정확하게는 동위원소 철 56 대비 철 60의 비율을 의미한다.) 우리 은하 평균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된다. 문제는 철 역시 초신성 폭발 과정에서 많이 만들어지는 성분이란 점이다.
만약 수십억 년 전 벌어진 초신성 폭발로 인해 그 주변에서 태양계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는 기존 가설이 맞다면, 알루미늄 26뿐 아니라 철 60 성분 역시 태양계에 높은 함량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철 60은 오히려 주변 우주 공간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알루미늄은 많이 남기면서도 철은 거의 남기지 않는 다른 메커니즘이 벌어졌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2017년 천문학자들은 초신성 대신 볼프-레예 별을 가정한다면 이 문제가 더 쉽게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당시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태양 질량의 40배나 되는 아주 육중한 볼프-레예 별의 진화를 시뮬레이션 했다. 표면온도 3만 도를 넘는 난폭한 별은 쉬지 않고 사방으로 많은 물질과 에너지를 토해내며 질량 손실을 겪는다. 마지막에는 별 전체 질량의 절반 가까이가 우주 공간으로 날아갈 정도로 질량이 줄어든다.
이 엄청난 다이어트 과정에서 볼프-레예 별이 사방으로 빠르게 불어낸 물질은 약 400만 년 안에 빠른 속도로 성간 구름과 부딪히면서 높은 밀도로 반죽된다. 주변에서 새롭게 반죽된 가스 구름은 또 다시 새로운 아기 별을 만들어낸다. 이는 기존의 초신성 기원 가설보다 태양계 속의 어긋난 알루미늄 26과 철 60의 함량을 더 잘 설명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볼프-레예 별도 태양과 같은 평범한 별과 행성계를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 은하 안에만 수천 개가 넘는 많은 볼프-레예 별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관측을 통해 실제 확인된 볼프-레예 별의 수는 겨우 600개 남짓이다. 이렇게 적은 수만 발견된 건 볼프-레예 별로 존재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짧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태양과 같은 별 중 최대 16%가 짧은 삶을 살다 사라지는 볼프-레예 별 곁에서 탄생했을 거라 추정한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오래전 우리 태양계 역시 한때 사방으로 빠르게 물질을 토해내며 죽어가고 있던 별이 남긴 거대한 먼지 구름 나이테 한편에서 빚어진 존재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우리 태양계가 반죽되도록 한 첫 계기가 초신성 폭발이었는지, 볼프-레예 별의 막대한 물질 분출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둘 중 무엇이 벌어졌든 간에 딱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오래전 이름 모를 거대한 별의 파괴가 있었기에 지금의 태양계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참고
https://www.mpifr-bonn.mpg.de/pressreleases/2022/13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2-01812-x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2-05155-5
https://earthsky.org/space/ringed-star-wr140-shows-light-can-push-matter/
https://www.nasa.gov/feature/jpl/star-duo-forms-fingerprint-in-space-nasa-s-webb-finds/
https://astrobiology.nasa.gov/news/a-wolf-rayet-bubble-and-the-early-solar-system/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a992e/meta
https://aasnova.org/2020/08/28/a-stellar-pinwheel-at-a-new-wavelength/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dazzling-new-jwst-image-shows-dusty-stellar-spirals/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baab8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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