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한국마사회 등 공공기관이 보유한 알짜 부동산이 대거 시장에 풀린다.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라는 정부 지침에 따른 조치다. 매각 예정 자산에는 서울 강남·서초·용산 등 핵심 입지에 위치한 토지와 건물이 포함됐다. 350개 공공기관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혁신계획에 따르면 ‘공공기관 자산 효율화’ 작업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최대 총 22조 5850억 원 규모 자산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공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고 경영 혁신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부동산 매각을 수단으로 하는 공공기관 혁신의 한계도 거론된다. 수천억 원의 매각 대금으로 재무지표가 개선되는 듯 보여도 사실상 실효성이 크지 않은 ‘조삼모사’식 대응이라는 평가다.
#경영평가 낙제점 기관, 부동산 대거 매각한다
국회와 공공기관에 따르면 정부와 각 기관은 기재부의 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산 효율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고용진 의원이 10월 21일 공개한 공공기관 자체 혁신 계획 분석을 보면, 이들 기관은 2027년까지 5년간 22조 5850억 원 규모의 자산을 처분할 계획을 정부에 제출했다.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E등급(아주 미흡)을 받은 코레일은 용산·서울역북부·광운대·수색 역세권 등 총 7조 9976억 원 상당(예정가 기준)의 부동산 매각 방안을 정부에 보고했다. 용산역세권 부지는 매각 예정가가 6조 3146억 원에 달한다. 서울역북부(5326억 원)와 광운대 역세권(4978억 원)은 올해 하반기, 수색역세권(9724억 원) 부동산은 2026년 하반기에 매각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도 옛 포항역, 금천구청역, 가야역 외방 대전역 인근 등 전국의 역세권 부지가 매각 예정지로 고려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나란히 D등급(미흡)을 받은 한국마사회도 용산구 소재 사옥을 2025년 하반기에 매물로 내놓기로 했다. 용산 사옥이 마사회의 고유 기능과 연관성이 작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 마사회가 고층부만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매각 예정가가 981억 원에 달한다. 장외발매소를 지으려다 2011년 사업이 취소되면서 유휴 부지로 남아 있던 서초구 부지도 매각이 추진된다.
LH는 약 4600억 원 가치의 성남시 분당구 소재 경기지역본부 사옥을 2025년 하반기 중에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의 경우 서울 수서 인근 열원 부지를, IBK기업은행도 서울 장위동·쌍문역·수유동, 경기 수지·성남IT 지점 등 지점 자산 6곳을 파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토지와 건물이 매각 대상이 될지는 11월 중순경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윤 정부 ‘공공기관 개혁’의 신호탄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공공기관 평가를 엄격히 하고, 방만하게 운영돼 온 부분은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며 청사 매각, 구조개혁 등을 주문했다. 기재부는 이를 반영해 ‘비핵심자산 매각’ 등을 핵심으로 한 재정건전화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기관의 고유 기능과 무관한 자산, 과도한 복리후생을 위한 자산 등을 매각하게 하고 동시에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이행 실적을 반영토록 했다.
#재무개선 착시효과…알짜 땅은 리츠 손에?
하지만 이번 공공기관 자산 효율화 조치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혁신은 자산이 아닌 설립 목적의 수행 여부로 평가해야지, 보유 자산의 변동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규모 자산 매각의 파급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산을 팔면 큰 금액의 매각 대금이 들어와 재무적으로 회복돼 보여도 기관의 사업 추진과 내부 구조 등 실질적으로는 개선되는 측면이 미미하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은 공기업의 유동성을 늘리려는 시도다. 수익성이 낮은 기관에 대해 정부가 고려할 수 있는 조치”라면서도 “유동성보다 안정성이 필요한 공기업이 많다.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매각하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경제공기업 등의 경우 담보성 자산을 이렇게 매각해도 타격이 없는지 면밀히 따져보고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불필요한 자산 매각을 강조하고 있지만 경영평가가 공공기관에 대한 강력한 통제 수단인 만큼 낙제점을 받은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매각 계획을 내놓았다는 평가가 있다. 경영평가는 성과급부터 기관장 해임 등 임원 인사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48조에 따라 공공기관은 매년 정부의 경영평가 결과를 반영해 성과급을 지급한다. 코레일은 지난해 평가에서 공기업 중 유일하게 최하 등급을 받았고 D등급인 LH와 마사회는 2년 연속 기관장 해임 건의 대상에 올라 있는 상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이뤄진 자산 측면의 공공부문 혁신으로 불필요한 부동산을 과도하게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본다. 차후에 활용할 목적을 가지고 남겨둔 부지가 다수”라면서 “정부의 압박으로 급하게 매각을 추진하고 난 후 임대료를 수백억 원씩 내고 건물을 이용하는 기관들의 사례가 있다. 단순히 ‘놀고 있는 땅은 팔아야 한다’ 식의 논리는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2017년 사옥을 임대조건부로 매각한 한국석유공사는 매각 5년 만인 올해 재매입을 시도할 계획이었지만 임차료 부담으로 가중된 부채 때문에 매입을 포기, 임차 기간을 5년 더 연장했다. 2018년 감사원 감사에 따라 경영진이 아닌 실무자에 책임을 물었지만 자산 매각으로 유일하게 이익을 본 주체는 부동산 리츠회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역세권에 위치한 대규모 부지가 시장에 나온다면 펀딩 혹은 컨소시엄 형태로 팔릴 가능성이 크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천억 원 단위의 부지는) 단일 기업이 나서기 어려운 규모다. 단순 상업 형태로 개발하기에는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복합 개발 형태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매각 시 개발에 대한 가능성, 지분 참여 형태 등이 함께 검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세은 교수는 “공공기관의 부동산 자산을 정부 주도로 대거 매각할 경우 사모펀드 등 민간자본에 큰 차익을 주는 등 특혜를 초래할 수 있다. 공공기관 혁신은 업무 프로세스, 인력의 비효율 등을 재검토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시장을 견제하는 측면에서 국가가 활용 가능한 국유지격의 여유 부동산을 소유할 필요성도 있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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