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벌써 입동이 지나 최저기온이 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가 됐지만, 매일 오전 7시부터 사람들이 줄 서는 곳이 있다. 런던의 분위기를 물씬 담아 ‘서울시 종로구 런던동’이라 불리는 한 베이글 가게 이야기다. 안국에 위치한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작년 9월 오픈한 베이글 전문점이다. 개점 당시부터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오픈런’ 행렬이 줄을 이었다.
#1년 넘었는데 아직도 ‘오픈런’…직접 줄 서보니 재방문 고객 다수
런던베이글은 오픈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열풍이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2~3시간 기다리면 구매할 수 있었던 초창기와 달리 현재는 5시간 이상 기다려야 겨우 구매 가능한 수준이다. 지난 주말과 평일, 소문난 베이글을 먹기 위해 ‘웨이팅’ 해봤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10월 28일 금요일 오전 11시경, 직접 줄을 서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는 ‘테이블링’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원격줄서기’를 신청했다. ‘이게 Z세대지’ 하는 나름 뿌듯한 마음도 잠시, 대기번호는 770번으로 이미 대기 인원이 500명이 넘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 상황.
3시간 정도 지난 오후 2시가 지나자 대기 인원이 300명으로 줄었다. 인원이 빠지는 간격이 일정하지 않아 언제 차례가 올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계속 알림을 확인했다. 결국 베이글집 인근에 있는 카페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직접 줄 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기분이었다.
인근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지도 앱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몰려있는 군중들로 인해 본능적으로 ‘여기’임을 알 수 있었다. 4시가 훌쩍 지나서야 대기인원이 50명으로 줄었다. 가게 앞에서 만난 20대 A 씨는 “지난 주에 한 번 기다렸다가 구매에 실패했다.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번호가 불린 줄 모르고 있다가 대기가 취소됐다.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라고 말했다. 대기를 안내하는 직원은 연신 “대기 마감됐습니다. 앞으로 입장하시는 분들은 베이글 소진될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대기한 지 5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4시 30분경, 입장 알림이 왔다. 취소될 수 있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휴대폰 알림을 직원에게 보여줬다. 입장하자마자 눈앞에 보인 것은 수많은 ‘Sold Out(품절)’ 안내판. 대부분의 베이글은 품절된 상태다. 남아 있는 베이글은 단 세 종류뿐. “감자치즈베이글 꼭 사 와”라고 한 지인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감자도 치즈도 찾을 수 없었다.
선택지는 없었다. 남아있는 참깨베이글 몇 개를 집어 계산대에 올렸다. 곁들여 먹는 크림치즈 몇 종류는 추가 구매가 가능했다. 구매줄과 달리 내부 테이블은 한산했다. 샌드위치처럼 잔뜩 무언가가 들어있는 베이글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밀려 드는 인파에 런던을 옮겨 놓은 것 같다는 내부를 감상할 여유도 없었다. 메뉴판이 영어로 된 터라 천천히 읽기도 힘들었다. 테이크아웃 백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젊었을 적 사진과 주문서 등을 함께 넣어줬다.
두 번째 도전은 일요일. 주말 늦잠을 즐길 새도 없이 오전 9시가 되자마자 앱으로 ‘원격줄서기’를 신청했다. 9시 전부터 200여 명의 사람이 대기해 있었다. 9시 2분에 받은 대기번호는 325번.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오전 8시에 오픈해 현장 대기는 8시부터, 앱을 통한 원격줄서기는 9시부터 가능하다.
앞 사람이 150명쯤 남은 오전 11시부터 가게 앞에 서서 기다렸다. 쌀쌀한 날씨 덕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머리를 채웠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까웠다. 런던베이글을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20~30대로 보였지만, 간혹 노년층도 볼 수 있었다. 이곳을 찾은 60대 부부는 “워낙 유명하다고 해서 예약해서 와봤다”고 전했다. 인근 주민이라는 50대 B 씨는 “매일 사람들이 여기서 기다리길래 궁금해서 들렸다. 대기인원이 많아서 그냥 돌아간다”고 말했다.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다리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재방문 고객이 많았다. 50대 C 씨는 “딸이 데려와줘서 와봤었는데, 너무 좋아서 친구들 데리고 또 왔다”고 말했다. 20대 D 씨는 “여기서 처음 베이글을 먹어본 뒤 계속 생각나서 또 먹으러 왔다”고 말했다.
가게 앞 직원들은 무릎 아래까지 오는 패딩을 입은 채로 웨이팅 안내를 하고 있었다. 11시 30분까지는 “지금 웨이팅 하시면 5시간 이상 기다리셔야 돼요” 하던 외침이, 12시가 되자 “대기 인원 마감됐습니다”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매장까지 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대기한 지 3시간 30분이 지난 12시 30분경 드디어 입장!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니 왜 ‘런던동’이라고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나무로 인테리어된 내부와 디스플레이는 영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매장 안쪽은 생각보다 널찍했다. 모든 베이글이 한데 놓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었다.
베이글 종류는 다양했다. 플레인 베이글에서부터 블루베리 베이글, 바질페스토 베이글, 블랙 올리브 베이글, 어니언 베이글 등 가지각색이었다. 안에 버터나 새우 등 각종 재료가 들어간 샌드위치 베이글도 맛볼 수 있었다. 가격도 다양했다. 종류에 따라 4700원부터 1만 4800원까지 일반 베이글보다는 다소 비싼 편이었다. 수프와 음료, 크림 치즈 등도 곁들일 수 있었다. 점심 대용으로 베이글을 먹는 사람도 많았다.
#전문가 “음식 아닌 문화를 소비하는 것”
런던베이글뮤지엄 대표 이 아무개 씨는 올해 2월 ‘주식회사 엘비엠’이라는 법인을 세우고, 9월에는 도산점을 새로 열었다. 식지 않는 베이글 열풍은 최근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 전문가들은 인기의 비결이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는 “유명세로 잠깐 반짝하는 것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소비자들이 소비했을 때 만족도가 정말 높은 경우다. 이곳의 소비자들을 분석해봤을 때 기대감보다 만족도가 더 높았다. 단순히 맛이 원인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곳에 가는 것은 라이프스타일을 사는 거다. 이런 점에서 다른 가게와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재방문 고객이 많은 것은 빵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가 런던에 있는 어떤 빵집을 방문하는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고객의 여정’ 또는 ‘경험 소비’라고도 표현하는데, 마치 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최근 소비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경주에는 일본을 방문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어느 호텔이 인기고, 일본이나 태국 등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주는 음식점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로 해외 여행이 어려워진 시점에서, 이미 해외여행을 경험해 그 것을 그리워하는 소비자들이 이런 경험 소비를 주로 한다”고 분석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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