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최대 담배회사 KT&G가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자회사 KGC인삼공사를 분리하라는 압박을 잇달아 받았다. 담배와 인삼 사업의 성격이 다른데 두 회사가 모회사·자회사 관계를 유지할 경우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우니 인삼공사를 별도 상장하라는 논리다.
처음 인삼공사 분리를 띄운 사모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는 15년 전보다 낮은 KT&G의 주가 정상화를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주주 제안서를 10월 26일 공개했다. 이어 국내 투자사 한 곳도 인적 분할 상장을 제안하고 나섰다. 두 투자사들은 KT&G의 만성적인 저평가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며 청사진을 그렸지만, 양측이 보유한 지분율이 1% 안팎으로 낮은 만큼 사측이 느끼는 압박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KT&G가 국내외 투자사로부터 KGC인삼공사를 분리 상장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FCP가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주주 제안 설명 영상. 사진=FCP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투자사 “인적 분할 후 잠재력 키워야” 발표 직후 주가 상승
싱가포르 행동주의 펀드 FCP가 KT&G에 전달한 5대 주주 제안에는 △궐련형 전자담배 ‘릴’의 글로벌 전략 수립 △100% 자회사인 KGC인삼공사 분리 상장 △비핵심 사업 정리 △잉여현금 주주 환원 △사외이사 선임 등이 담겼다. 궐련형 전자담배 릴의 글로벌 유통을 경쟁사인 필립모리스에 위탁하지 말고 독자 진행해야 하며, 인삼공사 분리 상장을 통해 정관장의 해외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이어 안다자산운용은 10월 31일 KT&G 이사회에 주주 제안을 보내 인적분할 상장과 함께 약 70조 원에 달하는 에너지 드링크 사업으로의 도약 가능성을 강조했다. 현재 KT&G의 시총은 12조 원 수준이다. 두 투자사는 담배사업의 가치만으로도 최소 10조 원의 평가가 가능하다며 비정상적인 주가를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헌 FCP 대표는 “현금성 자산과 인삼공사 가치만 해도 시총을 넘어서기 때문에 본업인 담배사업은 주가에 마이너스로 반영돼 있다”며 “KT&G가 아직도 국영기업인 듯한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투자사의 제안 내용이 밝혀지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FCP가 제안서를 공개한 당일 KT&G 주가는 전날보다 3.8%(3400원) 오른 9만 2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KT&G 주가가 9만 원선을 회복한 것은 1329거래일 만이다. 두 번째 주주 제안이 알려진 지난 2일에는 전날 대비 2100원(2.27%) 오른 9만 4500원에 마감했다. 담배와 인삼 시장에서 각각 부동의 1위를 지키는 두 기업의 새로운 미래 전략 외에도 주주 환원 확대를 강조하면서 시장 기대감이 커졌다는 평가다.
#실적은 나아졌는데…장기적으로는 체질 변화 요구
KGC인삼공사는 2002년 민영화된 KT&G의 전신인 담배인삼공사가 1999년 인삼사업부를 분리해 세운 100% 자회사다. KT&G와 인삼공사 모두 민간기업이지만, 공사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공사는 ‘회사’를 가리키는데 KT&G 측은 해외 소비자의 상표 인식에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해당 사명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장 두 기업의 실적은 긍정적이다. 국내외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대외적 악재로 고전하는 가운데 KT&G는 경기 영향이 적은 담배업 특성상 고환율 기조와 면세 회복으로 하반기 실적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심은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원화 약세 효과와 해외 수출 회복 배경을 꼽으며 “3분기 수출한 담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찬가지로 올 상반기까지 고전했던 인삼공사도 추석 연휴, 면세 재개 등의 요인으로 반등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영업이익이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343억 원, 30억 원이었던 인삼공사는 3분기 74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질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시각이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경쟁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삼공사의 경우에도 국내 홍삼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지만 국내 홍삼 시장의 성장세가 정체된 데다 해외 법인에서도 계획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수익성 개선의 필요성이 떠오르고 있다.
#‘인삼’ 떼내면 ‘담배’ 날개 달 수 있을까
하지만 사업 분리가 KT&G의 저평가 고리를 끊고 양 사의 경쟁력 확보에 묘수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두 투자사의 지분율은 각각 1% 안팎으로 알려졌다. 1·3대 주주가 정부기관인 국민연금(7.55%)과 기업은행(6.93%)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측이 받는 압박감은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
한때는 KT&G가 인삼공사를 활용해 부실사업을 개편했지만 최근에는 증권사에서 “인삼공사 부진이 옥에 티지만 국내외 담배 호조가 이를 상쇄하고 있다”고 평가할 만큼 KT&G와 인삼공사의 구도가 바뀌었다. 이 때문에 투자사들이 강조한 인삼·담배 양 사 ‘날개 달기’는 주주 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청사진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삼공사의 한 직원은 “해외 시장에서 기존 거래 라인을 정리하고 비홍삼 부문 등 신규 사업 모델을 만들어 정착시키는 것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며 “분리 상장 이야기가 거론된 후 직원들 사이에서는 분리되면 현상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재계 관계자는 “지분율이 낮아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투자사들이 KT&G가 순현금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며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잉여현금을 주주에게 환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담배사업 뿌리에 공공성이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긍정적인 방향”이라며 “인삼공사에 대한 KT&G의 점유를 견제하고 주주 쪽으로 이익을 분산하려는 시도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사측은 주주 제안을 성실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KT&G 관계자는 “주주들과 소통하며 합리적인 의견 제시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며 “주주 의견의 내용을 확인하고 검토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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