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게임 선정성 판단 논란이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의 비리 의혹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자신이 이용하던 게임이 출시 1년 만에 ‘19금’으로 바뀌자 이용자들이 게임위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따져 물으면서다.
게임위는 최근 넥슨의 모바일 게임 ‘블루 아카이브’의 이용 등급을 ‘청소년 이용 불가’로 상향했다. 이용자들은 지나치게 보수적인 기준이 적용됐다며 심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 논란은 게임위에 대한 방만 경영 의혹으로 확대되며 파장이 일었다. 자체등급분류 게임물 사후관리를 위해 예산 38억 원을 투입한 시스템 구축 사업은 전산망을 납품 받은 지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미완성 상태다. 게임위 측은 “내년 초까지 평가 시스템을 추가로 오픈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현재까지는 개발 외주를 맡았던 업체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게임위는 최근 넥슨의 모바일 게임 ‘블루 아카이브(위)’의 이용 등급을 ‘청소년 이용 불가’로 상향했다. 또 넷마블 ‘페이트 그랜드 오더’ 등의 등급 상향을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용자들의 집단 민원이 시작됐다. 사진=넥슨, 넷마블
#1년 만에 ‘청불’ 게임으로…민원 폭주
사건의 발단은 넥슨게임즈가 개발한 블루 아카이브에서 시작됐다. 작년 11월 당시 청소년 이용가 게임으로 출시한 블루 아카이브는 지난 9월 말 약 1년 만에 게임위로부터 등급상향 권고 조치를 받았다. 10월 4일 김용하 블루 아카이브 총괄PD는 “게임위로부터 게임의 리소스를 수정하거나 연령 등급을 올리라는 권고를 받았다”며 “기존 게임의 등급을 올려 이용자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즐기는 데 지장이 없게 조치하고 수정된 리소스가 담긴 틴(청소년) 버전의 앱을 하나 더 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음날 게임위 홈페이지에는 이례적으로 “원활한 민원 처리를 위해 중복·반복성 민원 접수 자제를 요청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게임위가 블루 아카이브 외에도 넷마블 ‘페이트 그랜드 오더’ 등의 등급 상향을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용자들의 집단 민원이 시작된 것이다.
블루아카이브는 가상 세계관 속 미소녀 학생 캐릭터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의 지도를 받아 전투를 펼치는 게임이다. 주로 남성 게이머가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5세 이용가와 달리 18세 이용가 게임은 마케팅 자체가 불가하고 여러 제한이 걸린다. 이미 타 국가 대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상황에서 추가 규제가 나오자 이용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 게임은 현재 일본 등에서는 12세 이용가로 서비스 중이다.
청소년용 별도 앱 개발로 인해 개발 리소스 및 역량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발을 키웠다. 한 전문가는 “레벨을 키우는 게임이 아니라 콘텐츠로 승부를 보는 일명 서브컬처(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그래픽·캐릭터 기반 수집·스토리 게임) 장르다 보니 이용자들의 애착심이 굉장히 높다. 자신이 즐기고 있는 게임에 갑자기 규제가 적용되는 것 자체에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게임위는 선정성 기준을 적용한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모니터링·심의 인력의 전문성과 절차상 투명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논란은 확대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시 떠오르는 ‘자체등급분류 제도’ 실효성 논란
게임위는 캐릭터의 노출도 및 다양한 요소를 검토했고 선정성 관련 등급 상향 요소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게임위 관계자는 “자체 사업자가 게임을 등급에 맞게 유통하고 있는지 등 사후관리 측면에서 확인한다. 문제가 발견될 경우 등급 재조정을 하고 있다”며 “모니터링 결과 캐릭터 의상 노출, 묘사 수준, 빈도나 이용자 조작 등을 종합 검토했을 때 선정성 기준에 부합해 청소년 이용 불가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게임위 결정에 대해 넥슨 측은 “공개한 개발자 편지 외에 현재로서는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만 답했다.
자체등급분류 제도는 청소년이용불가 게임과 아케이드 게임을 제외한 게임 등급을 구글, 애플 등의 민간 사업자가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게임위가 사후에 관리하는 제도다. 자체 사업자는 원칙상 전체 연령부터 15세 등급까지만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정성 판단이 모호한 게임에 청소년 등급으로 우회 가능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게임위의 등급 상향 조치가 적절했다고 보더라도 문제가 된 넥슨과 넷마블의 게임이 각각 1년, 5년 동안 하향 연령에게 서비스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제도가 가진 허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등급 선정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파급력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논란이 반복되는 상황을 개선할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과 교수 “조율과 해결이 가능했던 문제”라면서 “사후 모니터링과 심의를 하는 의사결정권자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영향력이 큰 대형 게임사의 유력 게임은 출시 직후부터 자체 사업자로부터 받은 등급이 적합한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짚었다.
등급분류가 늦어지면서 이용자들과의 갈등이 반복되는 만큼 게임위의전문성을 키우고 주요 게임은 신속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방만 경영도 도마에…국민감사 통해 검증
게임위의 전문성과 등급분류 전반의 투명성은 국민감사를 통해 검증될 전망이다. 게임위 ‘등급분류 시스템 구축 사업 비리 의혹’에 대한 국민감사를 촉구하는 약 5500명의 연대서명이 10월 31일 감사원에 접수됐다.
본격적인 감사가 시작되면 감사원은 자체등급분류 제도의 사후 관리 시스템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보인다. 게임위는 2017년 38억 8000억 원을 들여 자체등급분류 게임물 통합 사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등급분류 게임물을 국제등급분류연합(IARC) 기준에 연동하는 것이 골자다. 게임위는 2019년 A 업체가 납품한 시스템에 합격 판정을 내리고 전산망을 납품 받았지만 이 시스템은 현재 5개 서브시스템 중 3개만 정상 작동하는 미완성 상태다. 그러나 게임위는 A 업체에 개발 지연 책임을 묻지 않고 담당 직원은 감봉 조치 끝에 게임위를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경찰 수사까지 이뤄졌지만 게임위 측이 피해를 본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게임위 관계자는 사후관리 시스템과 관련해 “내년 초까지 평가 시스템을 추가로 오픈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감사 청구를 주도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접수된 감사청구는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에서 최종 실시 여부를 결정한다. 이미 여러 차례 감사원에 확인 작업을 거쳤다”며 “감사 개시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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