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채권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금융당국은 최근 5개 주요 은행과 회의를 열고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채권시장 자금을 빨아들이던 은행채를 관리하기 시작한 것인데, 특히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는 산금채 등 특수채(공공 부문 발행 채권) 발행을 대폭 줄여 달라고 요청했다.
일단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요청에 응하는 모양새다. 올해 이미 계획했던 채권도 신중하게 발행 시점을 조정하고,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발행해 스와프(교환) 하는 모델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은행채 통제해 경색된 시장 분위기 풀 수 있을까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은행채 발행 축소를 위해 사전신고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한다고 28일 밝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이 사전 신고한 발행 예정 금액대로 은행채를 발행하지 않더라도 제재를 면제한다고 밝혔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은행들은 당국에 사전 신고한 발행예정금액의 20% 한도 내에서만 발행 물량을 감액할 수 있는데, 이를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대상은 이미 제출된 일괄신고서상 오는 12월 31일까지 발행이 예정된 은행채로, 이번 조치를 통해 채권시장 안정화를 도모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계획이다.
은행들도 일단 정부 요청에 발맞춰 움직이겠다는 의견을 냈지만, 고민에 빠졌다. 채권 발행을 통한 직접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모두 은행으로 달려오면서, 5대 은행에서만 최근 한 달 새 대출이 9조 원 가까이 늘어날 정도로 은행도 ‘돈’이 귀해졌기 때문이다.
한 은행 채권업무 담당자는 “기업들이 대거 은행으로 달려와 돈을 빌리면서 이미 올해 안 발행을 계획했던 채권들의 경우 소폭 조정은 가능하겠지만 발행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다”며 “은행들도 공식·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금융당국에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고, 그래서 금융당국도 이를 권고하는 선으로 발표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금융당국이 은행 기준 예대율 규제를 6개월 한시적으로 100%에서 105%로 완화하고, 은행들이 예수금을 더 채우지 않더라도 대출을 늘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도 이 같은 은행의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일단 정부의 대책은 시장 안정에 기여하는 모양새다. 3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7~21일 6조 7500억 원에 달하던 은행채 발행액은 24~28일 3조 4300억 원으로 50% 가까이 줄어들었다. 전체 채권 발행액 대비 은행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47.9%에서 24.3%로 떨어졌다. 금융당국이 내놓은 은행채 발행 자제 권고와 ‘50조 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대책이 시장에 먹혀든 셈이다.
국책은행의 관련 업무 담당자는 “정부가 특별히 국책은행에는 강한 톤으로 발행 자제를 요청했고, 이에 국책은행들도 국내 시장을 교란하지 않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실제 국책은행들은 발행 계획이 잡힌 한도 안에서는 채권을 발행하되, 발행 시점은 최대한 시장이 안정된 때로 미루고 발행 대상도 국내자금이 아니라 해외를 상대로 발행해 이를 원화로 스와프 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은행보다 좀 더 복잡한 한전채 고민
문제는 한전채다. 금리가 연 6%에 육박하는 등 조건도 좋아 시중 자금을 모조리 빨아들여 채권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거론된다. 한전채를 비롯한 특수채는 은행채와 달리 지난주에도 발행액이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특수채 발행액은 이달 둘째 주 8000억 원에서 셋째 주 1조 2104억 원으로, 넷째 주엔 2조 43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신용등급이 AAA급인 한전은 올해에만 23조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 발행액(10조 3200억 원)의 두 배가 넘는다.
금융당국은 일단 은행채 발행 자제를 통한 시장 안정화가 한전으로도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앞선 국책은행 관계자는 “은행채와 함께 한전채까지 잡아야 시장의 혼란이 사그라든다”며 “한전이 채권 발행 규모를 줄이고 이를 은행이 대출해주는 방법도 있지만 통상 한전에 비용 부담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된다. 금융당국과 한전이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으니 은행으로부터 저리 대출로 자금 조달을 도모하고, 동시에 은행채와 비슷하게 해외 상대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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