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건자재 가격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한 차례 타격을 입은 건설업계가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경색 사태로 위기를 맞았다. 호황을 거듭하던 부동산 개발사업 현장에서 보증을 섰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채무로 변질될 우려가 커지면서다.
한국기업평가(KR)에 따르면 KR 유효 등급을 보유한 우리나라 21개 주요 건설사의 올해 6월 말 기준 PF 우발채무 규모는 총 18조 4000억 원이다. A급 건설사(대우·롯데·SK에코플랜트·GS·태영·포스코·한화·HDC현대산업개발)가 16조 500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AA급 건설사(현대·현대엔지니어링·DL이앤씨)가 7조 6000억 원, BBB급 건설사가 4조 2000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우발채무는 기업이 우발적인 현상으로 떠안는 빚을 말한다. 장부상 채무는 아니지만 특정 상황이 일어나면 채무가 된다. PF 우발채무는 건설사가 PF 대출을 일으키는 사업시행자에게 책임준공, 지급보증, 채무인수, 자금보충 형태로 제공하는 신용보강을 의미한다. 통상 부동산 개발사업 시공사는 사업시행자가 프로젝트 실패로 PF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면 이를 대신 갚거나 상환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약정을 맺는다. 이 약정금이 곧 우발채무가 된다.
최근 건설 경기가 악화하면서 PF 우발채무 위험이 높아졌다. PF는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도나 담보 대신 특정 프로젝트의 수익성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부동산 개발사업 시행자는 아파트나 상가 등을 개발해 발생하는 미래 분양수익을 바탕으로 금융기관에서 부동산 PF 대출을 받는다. 분양 성과에 따라 PF 상환과 부실이 결정되는데, 최근 건자재 가격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다수 건설 사업장이 착공과 분양에 차질을 빚었다.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경색 사태로 PF 신규 대출도 어려워졌다. 강원도는 지난 9월 강원 춘천시 중도동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 시행자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는 당초 출자회사인 강원중도개발이 레고랜드 조성 자금을 조달하고자 발행한 2050억 원 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증권(ABCP)에 대한 지급 보증을 섰는데, 신용도가 높은 지자체 보증 채무의 불이행이 가시화되자 채권 시장이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사업시행자가 초기에 토지 감정평가액의 100%가 넘는 돈을 조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80%도 조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신용등급 최상위(A1등급)인 강원도가 보증을 선 채권마저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채권 투자심리가 완전히 얼어 붙었다. 신용물은 믿을 수 없으니 아예 사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 건설사 PF 우발채무 위험은 현실화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사업으로 불리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PF는 최근 차환 발행에 실패했다. 차환은 이미 발행된 채권을 새로 발행된 채권으로 상환하는 것을 말한다. 둔촌주공아파트조합은 오는 28일 만기가 돌아오는 기존 7000억 원 규모 단기 PF 유동화증권(ABSTB) 차환을 위해 증권사를 통해 8250억 원 규모 유동화증권(ABCP)을 발행하고자 했지만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다. 지급보증을 선 시공사업단이 7000억 원 규모 PF 대출을 대신 갚기로 했다. 부담금은 현대건설 1960억 원, HDC현대산업개발 1760억 원, 대우건설 1645억 원, 롯데건설 1645억 원이다.
현재 대형 건설사로는 롯데건설이 가장 많은 PF 우발채무를 안고 있다. 한국신용평가(KIS)에 따르면 롯데건설의 PF 우발채무는 21일 기준 약 6조 7000억 원(정비사업 1조 2000억 원)으로 KIS 유효등급 보유 업체 중 가장 많았다. 올해 말까지만 약 3조 1000억 원의 만기가 집중됐다. 롯데건설은 앞서 지난 18일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등 주주사를 대상으로 한 2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이틀 뒤인 20일 최대주주 롯데케미칼로부터 5000억 원의 단기차입을 결정했다. 이 밖에 은행권 일반대출과 담보차입으로 1조 원 이상의 자금조달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 및 부동산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위한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유상증자와 금전소비대차계약을 체결했다”며 “현재 재무구조 안정성을 위해 다양한 협의를 진행 중이며, 우수한 입지에 위치한 사업들이 착공 및 분양을 앞두고 있어 향후 더욱 안정적인 재무구조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중견 건설사로는 태영건설이 대표적인 PF 우발채무 모니터링 대상으로 꼽힌다. 태영건설 PF 우발채무 규모는 2조 3000억 원(6월 말, KR 기준)으로 롯데건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우발채무 78%가 만기 1년 이후로 장기화됐다. 하지만 기존 부채비율이 448.5%, PF 우발채무를 포함한 부채비율이 498.8%에 달해 우발채무 위험을 흡수하는 재무완충 능력이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개발사업을 적극적 추진함에 따라 PF 보증 규모가 증가하고 있으나, 대부분 만기구조가 장기화되어 우발채무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단기간에 만기가 도래하는 PF 대출은 보유현금과 한도대출 등 유동성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PF는 각 개발 사안의 미래 가치에 근거해 돈을 차입하는 구조다. 지금의 우려는 부동산 개발사업이 금리인상 등 외부요인으로 지연되거나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분양에 최종 실패해 투자금이 회수되지 않는 것”이라며 “건자재 가격 상승으로 건설사업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 채권시장까지 얼어 붙으면서 사업 시행자에게 신용공여를 한 건설사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태다. 신규사업과 인력 충원에 대해 보다 보수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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