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독과점 시장 폐해 문제가 일파만파 번지면서 정부 정책 기조가 자율에서 개입과 규제 강화로 선회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 플랫폼 마비가 국가적 혼란으로 이어지면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종합 국정감사에는 카카오그륩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홍은택 카카오 대표, 최수연 네이버 대표,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성하 SK C&C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해 카카오 먹통 사태에 대해 연신 고개 숙여 사과했다.
특히 지난해 국감에서 골목상권 침해로 집중 질타를 받은 바 있는 김범수 센터장이 먹통 사태로 집중 추궁을 당했다. 이번 사태로 플랫폼 산업에 대한 정책 기조 변경이 어디로까지 향할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인 올 6월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역량 강화를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하되 자율규제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에 힘쓰겠다는 정책 기조를 천명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4차 산업 혁명의 중심축 중 하나로 내세운 플랫폼 산업 육성 기조를 새 정부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카카오 먹통 사태로 정부 기조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지나친 독과점으로 시장이 왜곡된다면 국민 이익을 위해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며 규제 의지를 천명했다.
대통령의 선언으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를 중심으로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한 감시와 조사 강화에 힘이 실리게 됐다. 공정위는 그간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해 엄격한 공정거래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공정위는 연말까지 플랫폼 독과점 규제를 위한 심사 지침을 확정하기로 했다.
오프라인 재벌 기업들과 달리 느슨한 규제를 받아 왔던 플랫폼 사업자들의 과도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카카오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골목상권 침해로 집중 질타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문어발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올 8월 기준 국내 계열사 수만 무려 134개에 달한다. 모기업인 카카오의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 등으로 분사시키고 카카오게임즈, 카아오뱅크, 카카오페이 등의 상장을 통해 그 수혜를 대주주가 누리는 꼼수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사업자의 입점업체에 대한 갑질 규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제정도 탄력을 받게 됐다. 온플법 제정에 대한 여야 공감대가 형성돼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 법 제정과 국회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온플법 제정을 촉구하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소공인엽합회(소공연) 조사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카카오 먹통 사태로 톡채널(48.24%), 카카오T(33.82%), 카카오페이(34.38%), 카카오맵(13.04%), 기프티콘결제(12.15%)에 의존해 온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소공연은 지난 25일 입장문을 내고 “전 국민이 사용하는 메신저를 운영하는 플랫폼 대기업 카카오가 사태 발생 후 소상공인 피해에 대해 뚜렷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사용자 데이터를 활용해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며 카카오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했다.
이어 소공연은 “거대 플랫폼의 횡포에서 소상공인을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온플법 제정을 국회와 정부에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간데이터센터(IDC)에 대한 정부 개입을 확대해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도 재점화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자체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기 보다는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IDC를 빌려 쓰면서 서비스 장애 시 안일한 대응으로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사건을 계기로 정부 차원의 관리 필요성이 대두된 바 있다. 2020년에는 IDC를 방송통신기본발전법에 따른 국가재난관리시설로 지정하려 했지만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라는 지적에 무산됐었다. 하지만 이번 카카오 사태로 IDC에 대한 국가재난관리시설 지정 여부에 대한 재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IDC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직접 이행명령 등 강력한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주 내용이다.
지난 24일 국감장에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그는 “전 국민이 사용하는 서비스에 대해 이용자들께 서비스 불편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관련 투자 의사 결정을 2018년부터 했고 그 기간이 4~5년 걸려 미처 준비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 보상과 관련 김 센터장은 “무료 서비스는 전 세계적으로 선례가 없어 피해 사례를 접수하는 대로 피해 받은 이용자나 이용자 대표 단체를 포함한 협의체를 만들어 피해 보상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일괄지급 등을 포함해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피해 회복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감 현장에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은 “직원들이 매뉴얼대로 복구했지만 여러 불편이 있었다. 송구스럽다”며 사과했다. 다만 네이버의 경우 카카오에 비해 서비스 장애 정도가 낮아 의원들의 질타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박성하 SK C&C 대표는 “보상에 대해선 사고원인 규명이 이뤄지기 전이라도 적극적으로 협의에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국감 당일 늦게 출석해 “이번 사태와 관련해 많은 책임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드린다. SK 그룹 전체에서 이 사태를 최대한 잘 수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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