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시 성북구에 거주하는 A 씨(26)는 지난달 잘 입지 않는 옷을 의류수거함에 버리려다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몇 년간 비치돼 있던 집 앞 의류수거함이 사라진 것이다. 동네에 다른 의류수거함이 있나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문제는 재활용 대상인 옷을 배출할 방법이 의류수거함 외에는 없다는 점이다. 서울시 ‘재활용품 분리수거 길라잡이’를 찾아봤지만, 의류수거함이 없을 때 처리할 방법은 나와있지 않았다. 일반쓰레기로 배출해야 하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관할 성북구 종암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최근 그곳의 의류수거함을 철거했다. 이불이나 다른 쓰레기는 투기하지 말라는 안내 문구가 있어도 투기하기 때문이다. 무단투기가 과도하게 증가한 지역은 철거하고 있다. 원래 종암동에 44개 의류수거함이 있었는데, 정비 후 현재는 35개 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동네 곳곳에 설치된 의류수거함이 지자체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무분별하게 설치된 탓에 관리가 어렵고, 배출이 불가능한 솜이불이나 다른 쓰레기를 투기하는 일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정비 나섰지만 관리 제각각, 어디 있는지도 알기 어려워
의류수거함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보훈단체 등에서 불우이웃돕기 차원으로 주택가 곳곳에 설치하면서 생겨났다. 그러나 개인사업자의 수거함이 난무하고 관리도 체계적이지 않아 ‘쓰레기투기장’으로 전락하자 2010년대부터 지자체들이 본격적으로 정비에 나섰다. 서울 성동구는 2013년 의류수거함 정비사업을 통해 수거함 디자인을 통일하고, 불법 점용된 의류수거함을 철거했다. 의류수거함에서 나오는 수익금 일부는 저소득 장애인 등에게 지원하기 시작했다. 영등포구는 2019년 도로 부근 의류수거함 3분의 1을 철거하고, 나머지는 디자인을 통일해 운영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도 2021년 의류수거함을 일제 정비했다. 제주시는 2022년부터 클린하우스 내 의류수거함을 일제 정비해 민간 대행 사업자를 선정했다. 한때 의류수거함을 개인이 소유하면서 수익을 영리목적으로 이용한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기초지방자치단체 시·군·구가 위탁업체를 통해 의류수거함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의류수거함 관리가 지역마다 제각각이고 면적과 인구 등 설치기준도 없어서, 의류수거함이 없는 지역은 헌 옷을 분리 배출하기 어렵다. 특히 앞서 A 씨 사례처럼 기존 의류수거함이 철거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서울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현재 서울시 의류수거함은 25개 자치구가 개별 관리하고 있다. 민간비영리단체나 자활센터 등과 협약이나 위탁계약을 맺기도 한다. 수거된 옷을 위탁업체에서 소독하고 수출·판매·폐기 처분 등을 진행한다. 자치구에서 관리하고 있어 서울시에서 일괄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지침을 내릴 수는 없는 문제다. 수익의 배분이나 기부 여부 등도 지자체마다 모두 다르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지자체는 의류수거함을 전부 없애고 의류의 분리 방식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도봉구는 2021년 4월부터 의류수거함을 전면 철거하고, 배출 봉투 기준을 정해 의류를 배출하도록 정했다. 수거된 의류는 장애근로 단체 굿윌스토어에서 관리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8월 기준 서울시의 의류수거함은 총 1만 2396개다. 수거함이 없는 지역은 재사용이 가능한 의류도 일반쓰레기로 배출해 폐기할 수밖에 없다. 또 의류수거함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기도 어렵다. 지도애플리케이션 등에 표시되지 않고 의류수거함 현황도 공개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광진구 등은 구청 홈페이지에 의류수거함 위치를 공개했지만, 이마저도 자치구별로 상황이 다르다. 결국 개인이 직접 찾아보거나, 주민자치센터에 문의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난 5월 서울시 시민제안에는 “서울시 의류수거함 위치를 편하고 쉽게 알 수 있게 데이터를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성북구의 한 주민센터 관계자는 “주민센터로 의류 폐기에 관해 문의하면 의류수거함 위치를 알려준다. 의류수거함이 없는 경우 일반 비닐에 옷을 넣고 내놓으면, 고물상 등을 하는 분들이 가져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의류수거함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을 계속 이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의류수거함 위치를 통합해 지도상에 표기하는 등 방안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의류 폐기 규정도 관리 방식도 불분명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의류수거함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옷을 재활용할 방안은 없다. 의류에 대한 폐기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 폐기물관리과 관계자는 “의류는 현재 재활용 의무 품목이 아니다. 이 품목에 해당하면 포장재에 재활용 종류를 표시해야 하는데, 의류는 생산자에도 재활용과 관련한 부담금이 붙는 항목이 아니다. 현재 지자체나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는 의류수거함은 재활용이라기보다는 재사용에 가깝다. 의류의 폐기와 재활용은 민간에 맡겨진 상황이다. 분리배출 지침에도 지자체나 민간수거업체가 운영하는 의류수거함에 배출하게 돼 있다. 의류를 재활용 의무 품목에 포함하면 생산자에 부담이 가기 때문에 장기간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환경통계포털에 따르면 종량제로 배출돼 폐기된 섬유류는 2018년에만 914여 톤에 달한다. 한국폐기물협회 폐기물 분야 전문가 박균성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의류 분리수거와 관련한 규정이 없으면 일반쓰레기로 배출할 수밖에 없다. 옷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재활용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플라스틱을 일반쓰레기로 버리다가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분리 수거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
[현장] "비닐, 플라스틱 사용 많은 배달은 빠지고…" 일회용품 금지 D-30, 자영업자들은 지금
·
[현장] "소각장 옆에 더 큰 소각장 짓는다고?" 마포구 반대를 '님비'라 하기 어려운 이유
·
[현장] 소비자는 환영, 음식점은 아직…배달앱 다회용기 서비스 '절반의 성공'
·
[유럽스타트업열전] '노 플라스틱, 노 레더, 노 그린워싱' 지속 가능 패션을 실험하다
·
음식물을 일반쓰레기봉투에? 지자체별 재활용 기준 제각각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