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자금경색으로 롯데그룹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롯데건설 유동성 위기설에 따라 롯데케미칼의 재무 부담 확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재무구조가 탄탄한 롯데케미칼은 최근 배터리 투자 등 신성장 동력 확보에 열중했으나, 이달 중순 본격적으로 채권시장에 한파가 몰아치면서 발 빠르게 롯데건설 지원에 나섰다. 이에 시장에서는 롯데건설에 대한 지원 부담이 롯데케미칼의 재무 부담 가중을 넘어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의 아니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자금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과 오해가 초래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24일 김진태 강원지사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최근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위기에 대해 언급했다. 김 지사는 지난 9월 28일 갑작스럽게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 자금시장에 혼란을 야기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강원도는 지난 21일 예산을 편성해 내년 1월 말까지 채무 전액을 상환한다고 약속했다.
금융당국도 사태 수습에 나섰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강원도 외 다른 지자체, 업권에 대해 부동산 PF 대출 규모와 익스포저(위험노출액) 등 현황 점검에 나섰다. 또 지난 24일에는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재가동했다. 채안펀드는 자금시장 경색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회사채와 CP(기업어음) 등을 매입하기 위해 금융기관 등이 출자해 만든 펀드다.
그러나 한번 위축된 자금시장의 불안 심리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금융투자협회의 채권거래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9월 447조 1634억 원이던 채권 거래량은 10월 271조 6736억 원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지방채와 회사채의 거래량은 전월 대비 반토막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또 최근 회사채 수요 예측을 진행한 기업들이 줄줄이 미매각 상황을 맞으면서 다수 기업들이 발행 계획을 철회했다.
이 같은 시장 상황에서 롯데케미칼은 고군분투 중이다. 25일 김교현 부회장을 비롯한 롯데케미칼 경영진 16명은 총 4억 4000만 원 규모(2760주)의 자사주를 취득했다. 김교현 부회장은 “국제유가 상승 등의 원가 부담과 석유화학 제품 수요 둔화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배터리 소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수소시장 선점을 통한 미래 성장 기반 구축, 고부가 소재사업 적극 진출로 주주 및 이해관계자에게 굳건한 신뢰 회복과 기업가치를 향상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 경영진이 이번에 자사주를 취득하며 밝힌 목적은 책임경영 강화 및 주주가치 향상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최근 연일 이어진 주가 하락이 있다. 롯데케미칼 주가는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13.87% 빠졌다. 롯데건설의 유상증자 결정이 공시된 바로 다음날부터 주가 하락이 시작됐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 지분 43.7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호텔롯데와 롯데알미늄 또한 각각 43.07%, 9.95%의 롯데건설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주 롯데건설은 시장에 나돈 ‘지라시(정보지)’로 몸살을 앓았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에 따른 채권시장 상황을 설명한 이 지라시는 롯데건설을 비롯한 일부 건설사와 증권사의 부도 및 매각을 언급했다. 이에 지라시에 등장한 한 중소형 증권사가 이를 금감원에 신고했고, 금감원은 시장 불안을 조성하는 악성 루머에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여의도 증권가에 널리 퍼진 지라시는 롯데건설은 물론 재무구조가 탄탄한 롯데케미칼까지 흔들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롯데건설 위기설에 ‘과장된 풍문’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투심 악화로 일부 중소형 증권사와 건설사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각이나 흑자도산 등의 우려는 크게 과장된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최악의 업황에 직면한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 지원에 나서면서 재무부담이 가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남는다. 지난 18일 롯데건설이 공시한 2000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롯데케미칼은 최대주주로서 약 875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더불어 지난 20일에는 롯데건설에 5000억 원의 금전대여를 결정했다.
더욱이 롯데케미칼은 사업구조 다변화를 위해 최근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5월 2030년까지 수소‧배터리 사업에 총 10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일에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를 생산하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위해 2조 7000억 원의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배터리 소재 사업 포트폴리오 비중 확대를 위한 롯데케미칼의 중장기 투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인수 공시 다음날인 12일 롯데케미칼 주가는 6.21%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레고랜드발 공포감으로 채권시장이 요동치자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 지원에 나서게 됐다. 가뜩이나 대형 M&A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자회사 지원 부담까지 짊어지게 된 셈이다. 이에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조정을 검토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때에 기존과 다른 방식의 자금 투입이 이뤄지다 보니 시장에서 여러 해석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면서도 “기본적으로 롯데케미칼 재무구조가 안정적인 상황이며, M&A의 경우 계획을 갖고 성장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롯데건설에 대한 자금 대여는 단기자금 대여로 할 수 있는 부분을 한 것”이라며 “예상했던 것보다 시장 환경이 얼어붙은 부분은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eop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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