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상장에 자신감을 내비쳤던 국내 게임사들이 중도 하차하거나 시기를 관망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코스닥 시장 기업공개(IPO) 대어로 떠올랐던 라이온하트 스튜디오는 최근 상장을 연기했다. 라이온하트는 카카오게임즈의 자회사이자 카카오 손자회사로 ‘오딘: 발할라라이징’ 흥행에 힘입어 상장에 도전했다.
하지만 주주 반대와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이 계속된 상황에서 시장 침체와 카카오 주가 하락 등이 맞물리자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라이온하트는 IPO 포기가 아니라 자본시장 상황을 고려해 일정을 다시 짜겠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상장 기대감에 들썩였던 게임업계가 조용해진 것을 두고 다른 진단도 나온다. 단일 매출원에 의존하는 게임사의 체질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모 절차 2주 만에 철회 “포기 아닌 연기”
라이온하트는 10월 13일 상장 철회 사실을 공시했다. 9월 29일 코스닥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하고 이튿날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공모 절차에 돌입한 지 13일 만이다. 사측은 철회신고서를 통해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 받기 어려운 국내외 상황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협의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갈수록 침체되는 증시에 기업가치가 낮게 책정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취지다. 최근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며 업계 구분 없이 다수 기업이 상장 의사를 거둬들이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라이온하트 관계자는 “내년 3월까지 유효기간이 남았다.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추후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철회 신고가 ‘상장 포기’는 아니며 상장을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라이온하트의 공모 예정 금액은 4105억~6042억 원, 희망 공모가 범위는 3만 6000~5만 3000원으로 기업 가치는 약 3조~4조 5000억 원에 달한다. 10월 초까지 약 3조 3000억 원 선이었던 모회사 카카오게임즈의 시가총액을 뛰어넘는 수치다. 지난해 6월 국내에서 출시한 북유럽 신화 세계관 모바일 게임 ‘오딘’의 성공이 높은 평가를 이끌었다. 라이온하트는 지난해 매출 2326억 원, 영업이익 2135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92.6%에 달한다.
#캐시카우 떼내면 어쩌나, 주주들은 우려
하지만 사측이 자본시장 흐름 외에도 상장 반대 여론이나 고평가 논란 등을 의식했다는 시각도 있다. ‘캐시카우’인 라이온하트를 떼어내려는 시도는 카카오게임즈 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라이온하트는 카카오게임즈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카카오게임즈는 산하 유럽 법인과 함께 라이온하트 지분 54.9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라이온하트와 별도법인이기 때문에 물적분할이 적용되지는 않아 LG화학의 쪼개기 상장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일부 주주들은 카카오게임즈의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물적분할 반대 주주연합’에 가입하는 등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는 주가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연초 9만 3000원을 찍었던 카카오게임즈의 주가는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상장 철회 발표 다음날 소폭 반등했지만 10월 24일 기준 여전히 3만 8000원 대에 머물고 있다.
라이온하트에 따르면 내년 출시되는 오딘 글로벌 서비스의 경우에도 현재처럼 카카오게임즈를 통해 제공된다. 재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영업이익이 30%만 나와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출시돼 영업이익에 크게 반영됐음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수준의 영업이익률”이라며 “물적분할이 아니기 때문에 주주가치 훼손은 간접적으로 이뤄지는 수준이지만 알짜배기 사업을 상장하는 것 자체가 기존 주주들을 흔들 수 있다. 카카오게임즈를 통해 서비스 되고 상장 후에도 실적이 카카오게임즈에 잡히더라도 주주로서는 가치가 더 높은 주식 대신 모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온하트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한 게임 산업의 특성상 스타트업이나 스튜디오가 게임을 개발하면 대형사가 배급을 하는 구조다. 성공을 거둘 경우 대형사가 지분 인수 방식으로 자회사로 만드는 방식”이라며 “카카오게임즈와 라이온하트는 2018년 이미 독립법인으로 나눠져 있던 상태라 쪼개기 상장, 물적분할 등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력한 한방…‘효자’일까 ‘리스크’일까
라이온하트는 ‘원 히트 상장’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오딘이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외의 매출원이 없다는 게 불안 요소다.
오딘은 2023년 일본을 시작으로 북미와 유럽에서도 서비스할 예정이다. 하지만 북미와 유럽에서는 모바일 MMORPG(Massive Multi-user Online Role Playing Game·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가 비교적 인기가 낮다. 증권업계는 오딘의 3분기 예상 매출액이 전 분기 대비 30%가량 하락한 1100억 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임희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해외 출시를 두고 “장르 특성상 제한적인 매출이 발생할 것”이라며 “20배 이상의 고멀티플을 인정받으며 상장을 재추진하기 위해서는 신규 IP 대작의 성공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임사는 주력 게임의 매출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력 게임이 언제까지 인기를 끌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히트작이 곧 리스크가 될 위험이 있다. 대표 지식재산권(IP)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국내 게임사가 대부분 가진 문제다.
지난해 상장한 크래프톤도 배틀그라운드 외에 히트작이 없어 고전하고 있다.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는 흥행 게임 단 하나를 가진 회사를 일컫는다. 신생·중소형 기업에게는 꿈의 단어지만 리스크로 변모할 가능성도 크다. 크래프톤은 상장 이후 다양한 신작을 내놨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매출 80%가량을 여전히 배틀그라운드에 기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인도 현지 구글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등 양대 앱마켓에서 서비스가 퇴출돼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했다. 지난 2분기 크래프톤은 전 분기보다 영업이익이 48% 감소한 1623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60%에서 38%로 급감했다.
상장을 성공으로 이끌고 상장 후에도 경영 안정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단일 주력작으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할 필요가 있다. 라이온하트 측은 “상장을 준비하는 시점에 세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본부를 만들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일 IP 문제가 게임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만큼 이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최근 국내 시장에서 게임사들이 정체돼 있고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례도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상장 후 주력 후속작이 나오지 않으면 경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코스닥 상장 게임사들도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며 “배틀그라운드도 고전하고 있지만 대형 게임을 가지고 있어 그나마 버티는 것이다. 개발력, 주주에 대한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상장을 연기하거나 대형사 계열사로 남아 역량을 쌓는 방향이 적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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