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SPC그룹 계열사인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SPL은 파리크라상이 100% 지분을 가진 업체로 냉동 생지 등 파리바게뜨에 납품하는 빵 재료를 제조한다. SPC의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 파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발생한 사망 사고에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경기도 평택의 SPL 공장에서 샌드위치 소스를 섞는 기계(교반기)에 20대 여성 노동자가 상반신이 끼어 숨진 사고가 일어났다. 교반기에 뚜껑이나 자동 멈춤 설비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었다는 점, 2인 1조 근무지만 사실상 혼자 일해 기계를 멈출 수 없었다는 점, 일주일 전에도 같은 공장에서 손 끼임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 등이 알려지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다.
사고 직후 사측의 대응은 소비자의 거센 공분을 샀다. 다음 날 사고가 발생한 기계만 멈추고,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직원까지 출근시켜 공장을 정상 가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리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사고 장소 주변에 있던 노동자를 대상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의뢰했다.
이에 사고 예방과 사후 대처에 관해 SPC를 규탄하는 시위가 20일 전국에서 열렸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은 20일 3차 파리바게뜨 매장 앞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서울, 경기, 인천, 세종, 청주, 대전, 대구 등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1인 시위가 진행됐다.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SPC 브랜드 가맹점주 등이 낸 영업방해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지만 시위는 진행됐다. 가처분 결정 내용은 점포 경계로부터 100m 이내에서 59개 문구를 사용한 시위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공동행동 측은 20일 오후 2시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의 SPC 본사 앞에서 ‘SPL 평택공장 중대재해산재 사망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를 개최했다. 공동행동 상임대표를 맡은 권영국 변호사는 “SPC가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아서 고인이 사망한 것”이라며 사측이 뒤늦게 안전장치를 달았다고 주장했다.
권 상임대표는 “현장에는 안전교육 자료도, 작업매뉴얼도 없다. 2인 1조 작업은 위험하다는 뜻이지만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일을 했다. 밤새 야간 근무를 하면 집중력이 떨어져 누구도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라며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후 다른 노동자가 쓰는 기계에 없었던 안전장치가 붙었다. 고인이 일한 기계에는 없었던 것이다. 사고가 난 후에 설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전에) 할 수 있는 걸 안 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측이 적은 인력으로 많은 물량을 단시간에 생산하도록 압박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평택 공장에서 근무했던 김규형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 지회장은 “생산 속도에 지장을 주는 건 다 제거한다. 안전장치가 있었다고 해도 속도가 느려질까 봐 없앴을 것”이라며 “속도만 강조하고 물량은 늘어나니까 작업자는 안전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속도를 조절하려면 생산 라인을 늘리고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2인 1조 근무라는 개념도 현장에선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상 배합 작업 같은 건 혼자서 하는 일이었다. 드물지만 바쁠 때는 한 명이 기계 두 개를 돌릴 때도 있었다. 상시로 2명이 한 배합기에서 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20대 노동자의 사망 사고에 대학가에서도 나섰다. 20일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서울대학교 내 SPC 농생명과학연구동, 허영인 세미나실, 학내 SPC 계열 매장에 “피 묻은 빵을 만들어온 죽음의 기계, 이제는 함께 멈춥시다”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에는 “SPC그룹의 겉과 속이 다른 태도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사회공헌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노동자의 고통을 가려왔다”라며 “SPC그룹이 사망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고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할 때까지 불매하겠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성공회대 노학연대모임 ‘가시’에서는 20일 “SPC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쓰인 대자보를 들고 SPC 본사 앞을 찾았다. 이들은 SPC그룹 로고가 새겨진 판석 위에 대자보를 붙이고 ‘파리바게뜨 문제를 허영인 회장이 책임져라’는 피켓을 들었다. 기민형 가시 대표는 “어제 성공회대 새천년관 앞에 대자보를 게시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중에 일찍 취업한 여성 노동자가 많아서 그런지 여학우들이 파리바게뜨 문제에 관심이 높다”라며 “여러 대학에서 대자보 부착 등 SPC 규탄에 동참할 것 같다. 성공회대, 서울대 외에 서강대 등에서도 준비한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시위에 참석한 한 성공회대 학생은 “제빵기사 불법파견과 처우 문제가 제기된 이후로 불매운동이 잠잠해졌다가, 이번 사건으로 다시 관심이 높아진 것을 느낀다”라며 “집회에 간다고 하니 주변 친구들이 언제 가는지 물어보거나 같이 참석하고 싶다고 말한다. SNS나 커뮤니티에도 이슈화가 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SPC와 파리바게뜨를 둘러싼 논란은 사망 사고만이 아니다. SPC는 2017년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제빵기사 불법 파견이 적발돼 이듬해 제빵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처우 개선을 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사회적 합의를 맺었다. 올해 SPC는 사회적 합의를 이행했다고 밝혔지만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 시민단체 등은 사실이 아니라며 반발했다. 지난 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합의 주체 간의 대립이 지적됐다. 같은 날 법원은 SPC가 제빵기사 직고용, 임금 수준 개선 등 사회적 합의를 일부 이행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회사를 보는 소비자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SPC 측의 대응을 두고 비판이 이어진다. SPC는 사고 발생 이틀 후인 17일 허영인 회장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SPC는 이를 그룹사 홈페이지나 SNS 등 소비자가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지 않고 기자에게만 배포하면서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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