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45년간 사업을 이어온 중견기업 푸르밀의 갑작스런 폐업 소식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가나초코우유, 검은콩 우유, 비피더스 등 소비자에게 인지도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의 폐업 소식에 중소기업·스타트업 직원들 사이에서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7일 유가공 전문기업 푸르밀에서 전 임직원에게 ‘사업 종료와 정리해고’를 통지하는 사내 이메일을 발송했다. 푸르밀 노조에 따르면 정리해고 통지를 받은 임직원은 370여 명이지만 500여 개 대리점 직원, 배송기사 100여 명, 협력업체 직원 50여 명 등을 포함하면 대상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신동환 대표이사는 메일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되어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해고 시점은 다음 달인 11월 30일이다.
#줄줄이 폐업? 전문가 “나비효과 일으킬 수 있어”
이번 푸르밀 사태가 향후 줄줄이 폐업의 예고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가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한계기업, 돈은 버는데 대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30%가량 된다고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가장 망가진 상황인데, 이번 폐업으로 400명 이상의 실직자가 나온다는 것은 버티고 있는 다른 기업들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준다. 이게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적자를 내는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스타트업 등에서는 ‘남 일이 아니다’는 불안감이 흘러나온다. SNS 등 온라인에서는 “제품도 많이 알려져 있고, 푸르밀 정도 되는 기업에서 이렇게 한순간에 전 직원을 해고하는데, 우리 회사도 불안하다”는 등 우려가 이어졌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A 씨는 “푸르밀 사태를 보고 이게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몇 년간 회사 영업이익이 적자였는데, 심난하다”고 한탄했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B 씨는 “우리 회사는 영업이익이 난 적이 없는데 무서워졌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19일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고조됨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연속적으로 금리를 상향하는 추세다. 국내 9월 CPI(소비자물가지수)는 108.93로 전년 대비 5.6% 상승했으며, 시장금리(국고채, 5년)는 3.940%로 전년 대비 2.154%p 상승했다. 코스피(유가증권시장) 공매도 역시 2년 8개월 만에 최고치다. 계속된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로 증시 부진도 계속되고 있다. 18일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200 종목에 대한 공매도 비율은 지난주(10월 11~14일) 10%를 상회했는데, 이는 2020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전문경영인 물러나자마자 적자…LG생활건강 인수도 무산
범롯데가로 분류되는 푸르밀은 1978년 롯데그룹의 롯데햄·우유에서 시작했다. 2007년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롯데그룹으로부터 분사 후 푸르밀로 사명을 바꿨다.
푸르밀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비피더스, 검은콩이 들어있는 우유, 가나초코우유 등을 유행시키면서 연 매출 300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신동환 대표이사가 취임한 2018년부터 적자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2018년 15억 원의 영업손실을 시작으로 2019년 88억 원, 2020년 113억 원, 2021년 123억 원으로 매년 적자 폭이 증가했다. 2021년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푸르밀의 자본총계는 143억 원으로, 자본잠식 수준에 이르렀다. 영업손실은 2019년 89억 원, 2020년 113억 원, 2021년 124억 원이다.
푸르밀의 계속된 적자는 오너 경영의 실패로 지목된다. 전문경영인 남우식 전 대표 체제에서는 꾸준히 영업이익을 냈지만, 2018년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아들 신동환 대표이사가 취임한 후 적자가 지속된 탓이다. 이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올해 5월에는 LG생활건강에서 음료 사업 다각화를 위해 푸르밀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설비 노후, 사업 부진 등을 이유로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내부 사전 고지 없어…“위로금도 못 받아”
푸르밀 내부에선 적자 상황에 대한 위기감은 있었지만, 급작스런 정리해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푸르밀은 작년 11월까지 신입·경력 사원을 모집했다. 근무 중 언론 보도를 통해 해고 사실을 인지한 직원도 있었다. 아직 대리점주 등에게는 폐업 사실이 통보조차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푸르밀 관계자는 “저를 포함해 모든 직원이 보도되기 한 시간 전 메일로 통보 받은 게 끝이다. 사전에 공유되거나 전달 받은 내용이 전혀 없다. 위로금 등 협의하고 있는 것도 없다. 직원들이 굉장히 당황스럽고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푸르밀 직원들은 정리해고가 통보된 이후에도 평소와 같이 근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임직원 수가 35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대리점, 낙농가 등에도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다.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은 거래처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정상적으로 출근 중이다”고 전했다. 실제로 폐업 통보 메일이 전달된 이후에도 푸르밀 SNS 계정에는 여전히 제품 홍보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처럼 사업 종료·정리해고 결정이 내부 논의나 사전 공유 없이 갑작스럽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계속되는 적자로 인한 폐업이 불가피했다 치더라도 내부 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곤 푸르밀 노조위원장은 “신동환 대표가 취임한 이후 회사가 위기에 빠졌다. 신 대표가 독선적이고 이기적으로 어떤 조언도 귀담아듣지 않으며 무능력한 경영을 해 적자 구조로 바뀐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오너 일가가 의도적으로 폐업 전 퇴직금을 챙기는 등 도의적인 책임을 회피했다고 주장한다. 올해 초 신준호 회장이 푸르밀에서 퇴사하면서 약 30억 원의 퇴직금을 챙겼는데, 퇴사 후에도 출퇴근을 하며 업무지시를 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노조 등 직원 반발이 있더라도 폐업 결정이 철회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서용구 교수는 “미국 등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있는데, 한국 정서상 충격적인 일이다. 전 직원 해고라는 조치는 IMF 때와 비슷하다. 출구전략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해고하는 것은 이기적인 조치다. 그러나 사주가 폐업을 결정한 것이라면 노조 등이 반발하더라도 철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정부 기조를 봤을 때 중재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다만 연착륙을 위해 위로금 지급 등 직원들과 협의를 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2022년 4월 7일 기준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푸르밀 주식 지분의 60%(60만 주)는 신준호 전 회장이 소유하고 있다. 아들 신동환 대표이사가 10%(10만 주), 딸 신경아 씨가 12.6%(12만 6000주)를 소유했다. 또 신 전 회장의 두 손자가 각 4.8%(4만 8000주), 2.6%(2만 6000주)를 소유해 총 90%를 가족이 소유하고 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
정권 코드 맞추나…장애인 지원사업 중단에 서울시 공공돌봄 축소 논란
·
국감 소환 최태원 SK 회장, '카톡 먹통 사태' 불똥 속사정
·
'집값이 시세의 70%' 윤석열표 청년원가주택 실효성 점검
·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대산업개발, 지체보상금 두고 입주자들과 갈등
·
'절치부심' 롯데 vs '관록' 신세계, 크리스마스 장식 경쟁 막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