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조용한 퇴사, 소극적 근무’. 최근 젊은 세대의 직장인들 사이에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일 문화에 관한 담론이다. 워라밸이 좋은 유럽도 스타트업의 업무강도는 일반 기업보다 센 편이다. 빠르게 성장해서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업무시간에만 근무하고 원하는 만큼 언제든 휴가를 쓰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혁신과 속도에 반해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어느 순간 자신이 일하는 환경을 돌아보기 마련이다. 내가 일하는 이 환경이 내가 원하는 환경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주변의 동료들이 나와 합이 잘 맞는가. 일하는 곳에 대한 기준은 모두 제각각일 것이다.
유럽의 스타트업 전문 취업 플랫폼 ‘오타(otta)’는 최근 일하기 좋은 유럽 스타트업 100곳 목록을 만들었다. 오타도 2019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현재 누적 투자 금액 2390만 달러(340억 원), 시리즈 A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많은 사람이 세계 최고 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평등한 기회를 준다’라는 모토 아래 서비스를 오픈했다.
“일자리 찾기는 영혼을 으스러뜨리는 일(Job search is soul-crushing)”이라는 오타 홈페이지의 문구가 흥미롭다. 구직자에게 잘 맞는 일을 찾기가 어려운 것처럼 대기업에 비해 다소 이름이 덜 알려진 스타트업에서는 채용이 그야말로 ‘큰일’이다. 스타트업과 구직자의 이런 니즈를 발견한 오타는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그 스타트업이 좋은 인재를 유치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개발했다.
그렇다면 오타가 뽑은 ‘일하기 좋은 유럽 스타트업’은 어디일까.
#핀테크 스타트업이 가장 많아
오타가 뽑은 ‘일하기 좋은 유럽 스타트업 100’ 리스트 가운데 38%는 핀테크 스타트업, 17%는 리걸테크 및 HR(인사) 관련 스타트업, 12%는 여행 및 운송 관련 스타트업이다. 최근 지속되는 경기 침체로 스타트업계에 해고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일하기 좋은 유럽 스타트업 100곳은 여전히 인력을 늘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은 B2B를 위한 BNPL(선구매 후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베를린의 핀테크 스타트업 몬두(Mondu)다. 몬두는 2021년 10월에 베를린에서 설립되었으며, B2B마켓 플레이스와 판매자가 유연하게 지불할 수 있도록 ‘선구매 후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먼저 성장하고, 나중에 더 잘 지불하라(Grow Now, pay better)’는 모토에 사업 내용이 명확하게 담겨 있다. 작은 기업들이나 이제 막 시작하는 신생 기업들이 늘 현금 흐름(cash flow)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막 핀테크계에서 유행하던 BNPL 서비스를 B2B로 확장했다. 몬두는 지난 12개월 동안 직원 채용 면에서 4500% 성장했다.
오타가 일하기 좋은 100개의 스타트업 목록을 만들면서 세운 기준은 △지난 12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투자를 유치했는지 △스타트업이 제시한 솔루션이 얼마나 파괴적(disruptive)인지 △2022년 평균 직원을 얼마나 많이 고용했는지다. 100개의 회사는 평균적으로 140억 달러(20조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는데, 이는 1년간 총 65%나 증가한 수준이다. 직원 고용률은 211%나 성장했다.
몬두에 이어 두 번째로 성장률이 큰 회사는 30분 안에 스마트폰, 장난감 등 소비재를 배달하는 뮌헨의 스타트업 어라이브(Arive)다. 어라이브는 2021년에 직원 수가 1033% 증가했다.
그동안 10분 식품 배송을 하는 스타트업 고릴라즈(Gorillas), 겟티어(Getir), 플링크(Flink)와 같은 회사들이 전면에서 관심을 받았으나 경기 침체가 시작되자 고릴라즈는 많은 직원을 해고했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자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어라이브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어라이브는 2021년 뮌헨에서 설립되었고 그해 9월부터 뮌헨,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등 독일 대도시 네 군데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러 지역에 소규모의 다크 창고를 여러 개 가진 식료품 초고속 배송 스타트업과 달리, 어라이브는 도시별로 1개의 창고를 보유하고, 그 창고에 약 1000개의 품목을 보관한다. 모든 제품은 전기 자전거 또는 화물 자전거로만 배송된다.
식료품을 파는 슈퍼마켓보다 브랜드 의류, 화장품, 전자 제품 등 마진률이 높은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폭발적인 주문량이 없더라도 매출이 안정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어라이브의 공동 창업자 막스 리커(Max Reeker)는 “30분 안에 맥북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경험이 바뀌고 있어서 더욱 빠르게 물건을 받고 싶어하는 소비자 습관 변화에 초점을 둔 것”이라고 사업 포인트를 강조했다.
#직원을 가장 많이 고용한 스타트업은?
오타의 리스트에서 직원을 가장 많이 고용한 스타트업은 글로벌 급여 관리 솔루션을 내놓은 스타트업 딜(Deel)이다. 딜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이지만 전 세계 80곳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서 세계 어디에서든 직원을 원활하게 고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유럽의 비중도 매우 높아 현재 데이터, 마케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운영, 제품, 전략, 재무, 법률 및 세일즈 분야 팀에서 유럽에서만 170여 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딜 다음으로 채용을 많이 하는 스타트업은 런던의 스타트업 빌더(Builder)이다. 빌더는 코딩 지식이 없어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한다. 런던에서 2016년에 창업했고, 현재 시리즈 C 단계로 1억 9500만 달러(278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거물 스타트업이다. 작은 규모의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도 개발자 고용 없이 빌더의 노코딩 플랫폼을 이용해 앱을 개발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세 번째로 고용이 많은 스타트업은 오픈 소스 클라우드 데이터 플랫폼 에이븐(Aiven)이다. 에이븐은 누구나 쉽게 클라우드 데이터베이스를 설정할 수 있게 도와준다. AWS, 구글 클라우드,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디지털 오션(DigitalOcean), 업클라우드(UpCloud) 등 다양한 클라우드를 한 플랫폼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직원을 가장 많이 고용하는 상위 3개 스타트업은 모두 B2B 비즈니스를 하는 소프트웨어 관련 스타트업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오타의 목록에 있는 스타트업 100개 중 약 70%는 런던에서 직원을 고용하고, 약 40%의 회사는 유럽 전역에서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오타가 런던 기반 회사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유럽에서 런던이 테크업계을 선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성장해 나가고 있는 회사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현재의 성장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인재들을 붙들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는지 그 내부의 목소리도 궁금하다. 일단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능성이 크고, 전망이 밝은 유럽의 스타트업을 추려보았다. 이들이 실제로 일하기 좋은 스타트업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유럽스타트업열전] 베를린 VC의 투자조건은 이렇습니다
·
[유럽스타트업열전] 베를린에서 두 번째 잘하는 VC는 누구?
·
[유럽스타트업열전] 베를린에서 제일 잘하는 VC는 누구?
·
[유럽스타트업열전] 아시아와 유럽 스타트업 연결하는 베를린의 '그들'
·
[유럽스타트업열전] "한국 스타트업의 비엔나 진출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