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 중소형 로펌 대표 A 변호사는 매력적인 제안을 받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작품을 매각하는데, 이를 구매하고 싶은 이들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매각 가격만 수천만 달러, 한화로 600억 원이 넘는 큰 거래인데 매각에 성공하면 수수료로 매각 금액의 4~5% 이상을 주는 구조라고 한다. 한국 시장에서 개인 거래로 매각하는 게 조건이었다.
#2.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발이 넓은 전문가 B 씨도 최근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 낙서 화가로 유명한 미국 화가의 작품 매각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작품 가격이 100억 원이 넘는데, 이 작품 역시 국내에서 프라이빗(개인 간 거래) 거래를 최우선으로 진행 중이다.
한국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미술품 투자시장도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적게는 수백만 원부터, 많게는 수십억~수백억 원에 달하는 작품도 매수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A 변호사는 “잭슨 폴록과 함께 유명한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작품도 엄청난 가격에 국내에서 거래가 됐다”며 “기업이나 재벌가를 중심으로 진품이라고 하면 매수하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더라”고 귀띔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발표 기준, 국내 미술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거래액 기준 9223억 원으로 추산된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역대급 호황을 기대하고 있는데 이는 2018년을 기점으로 미술시장에서 새로운 동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MZ세대 컬렉터다. 부동산·주식·암호화폐로 부를 축적한 MZ세대 일부가 새로운 고객이 됐고 이들을 필두로 미술작품에 고액을 ‘가치투자’ 하는 바람이 불었다는 설명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오픈런(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현상)도 벌어졌다.
하지만 국내 최대 미술 경매업체인 서울옥션 인수전은 지지부진하다. 관심을 보였던 신세계는 인수 결정을 코앞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 모양새다. 지난 14일에도 “서울옥션 인수를 검토한 적이 있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바는 없다”고 다시 공시했다. 4개월 전이었던 6월과 같은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신세계는 당초 서울옥션 창립자 이호재 회장과 장남 이정용 가나아트센터 대표, 차남 이정봉 서울옥션블루 대표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556만 666주(지분율 31.28%)를 주당 4만 원 수준에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과 함께 환율이 동반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수천억 원 규모의 인수전 진행이 부담스러워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현재 서울옥션의 주가는 2만 원 이하로 떨어졌다. 14일 종가는 전날보다 1%가량 내린 1만 9600원이다. 지난 9월 30일에는 1만 7700원까지 떨어져 거래됐다. 주당 4만 원 수준에 인수한다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100% 이상 쳐주는 셈이다.
신세계가 최근 인수를 주저하는 것은 “미술계 사업 진출에는 관심이 있지만, 서울옥션의 현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나온다. 앞선 B 씨는 “서울옥션이 국내 경매업체 중에서는 단연 1위지만 수수료가 다른 곳에 비해 높다 보니 개인 간 거래를 원하는 이들도 많다”며 “체계적인 시스템보다는 창업주 이호재 회장을 중심으로 한 개인 역량에 기대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신세계가 인수를 주저하는 대목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수수료도 거론된다. 서울옥션은 온라인에서 판매할 경우 15% 수준, 오프라인에서 판매할 경우 18%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부가가치세는 별도다. 오프라인의 경우 판매하는 측에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20% 수준에 달한다. 이는 일반 갤러리나 개인 간 거래 때 수수료에 비해 높은 편이다. 개인 간 거래나, 별도의 에이전시를 통해 매각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이유다.
앞선 A 변호사는 “개인 간 거래가 구매 희망자를 찾기는 더 힘들지만, 시간만 넉넉하다면 수수료를 적게 내고 거래할 수 있다 보니 ‘프라이빗 거래(개인 간 거래)’만 조건으로 내걸고 대신 이 과정에서 문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변호사를 끼고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미술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매각 방법들이 등장하는 것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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