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수년 전, 한 코스닥 상장기업에 대한 소개를 요청받은 적이 있다. 현재는 애머릿지, 예전 사명으로는 ‘뉴프라이드’다. 상장 당시만 해도 미국 기업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한다며 주목받았다. 말 그대로 투자자의 관심을 끌 법한 전도유망한 기업이었다.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해외 기업은 주로 중국 기업이었으니 더더욱 눈에 띄었다. 당시 청약 경쟁률만 300 대 1을 넘어섰고, 사업 자금도 쉽게 유치했다.
하지만 이후 행적은 상장 때 기대감과는 다르게 전개됐다. 복합운송 서비스와 타이어 제조이던 본연의 사업은 뒷전이 되고, 의류나 중국 면세점, 엔터테인먼트, 대마 등 주목을 끌 만한 테마들로 주력 사업이 전환됐다. 7500원의 공모가는 반토막이 난 지 오래다. 2020년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에 오른 뒤 2년 6개월 만인 올 9월에 상장 유지 결정이 내려져 거래되고 있다. 이후 대마초 대장주로 꼽히며 주가는 급등락을 반복하는 중이다.
담배, 술, 대마, 카지노, 대부업 등 이른바 몸과 정신에 해악을 끼치는 분야의 주식을 ‘죄악주’라고 부른다. 애머릿지는 처음부터 죄악주는 아니었지만, 흔히 죄악주는 시장이 어려울수록 주목받는다. 대표적인 죄악주로 분류되는 KT&G는 올해 코스피가 26% 이상 하락하는 동안 9% 수익률을 냈으니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증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죄악주인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은 올해 S&P500 지수가 24% 넘게 하락하는 동안 양호한 실적을 바탕으로 11% 하락에 그쳤다. 삶이 팍팍할수록 관련 분야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늘어나듯이, 힘든 시장에서 수익을 내주는 것이 죄악주인 것이다. 수익을 창출하고 배당 호재도 있어 경기 둔화기에 효자 종목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단기로 투자하기 좋은 종목임에도 장기로 안정적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종목이다. 앞서 밝혔듯이 에너지 안보 시대로 돌입하면서 환경과 사회적 책임은 더 중요한 가치가 됐다(관련기사 [가장 보통의 투자] 국민연금도 마이너스 내는 요즘, 'ESG' 중장기 투자는 어떨까). 물론 ESG에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기준이 모호하고 ESG 가면만 쓴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수익을 내려는 투자에 사회적 책임을 씌우는 것은 ‘허황된 꿈’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해외 기후단체들이 한국전력이 발행하는 채권을 사지 말라는 불매운동에 나서 주목받고 있다. 해외 기후단체들이 결성한 ‘톡식 본드 이니셔티브’는 지난 달 74개 글로벌 금융사와 기관투자자에게 한전 발행 채권을 매입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목표는 글로벌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화석연료 기반 기업의 채권을 사들이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들은 서한에서 “한전은 역대 최악의 재정 위기를 겪으며, 손실 대부분은 한전이 화석연료인 석탄과 가스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데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죄악주에 대한 투자를 막는 경우는 있었지만, 화석연료 기업이라는 이유로 채권 투자를 막아선 것은 처음이다. 에너지기업을 죄악주로 분류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환경과 기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한전은 지난 상반기에 역대 최대인 14조 3000억 원의 적자를 냈고, 하반기까지는 적자 규모가 3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한전의 실적 부진은 전력 생산단가의 급격한 상승분을 전력요금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요금인상 제약 등 실적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을 고려할 때 단기적으로 한전채 발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전의 경우에는 비상상황이긴 하지만,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력 공기업이라는 관점에서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밑바탕에 둔 투자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국정감사가 열리면 국회의원들은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종목을 분석해 죄악주에 투자한다고 비판했다. 죄악주 투자가 죄악시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죄악주 투자로 수익률이 양호하다면 어떨까. 수익을 적게 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과 수익만 많이 내는 기업 가운데 당신은 어느 곳을 선택하겠는가.
유엔은 지난 2006년 출범한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을 통해 ESG를 고려한 사회책임투자를 권장한다. 사회에서 법과 원칙을 자꾸 만들어내는 이유는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는 지인이 한 유명 기업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갑질 없이 매너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1등 기업답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인 자신의 이미지가 기업의 이미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매너가 굉장히 좋은 것 같았다”며 “이런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괜찮은 사람이 괜찮은 경영을 하는 곳에 투자하고 싶은 게 인간심리다.
김세아 금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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