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트업의 큰 관문 중 하나는 ‘투자’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투자자를 설득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투입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설득되었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투자자와 투자 유치 계약의 주요 조건을 논의해야 한다. 투자를 결정한 이후 어떤 식으로 투자를 진행할지 그 개요를 담은 문서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이 문서가 ‘텀 시트(Term Sheet)’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의 대가로 지분을 얼마나 어떻게 제공할지’에 관한 내용이다. 텀 시트를 바탕으로 1차 협의가 끝나면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다. 텀 시트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계약서에 ‘반영’하기 위한 사전 합의서인 만큼 추후 계약서를 통해 법적 구속력이 발생하게 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베를린의 대표 VC(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체리 벤처스는 지난 10월 6일 자사의 텀 시트를 공개했다. 주로 초기 단계의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체리 벤처스의 텀 시트를 살펴봄으로써 베를린 VC의 투자 과정을 간접 체험해볼 수 있다.
#개요: 회사명, 설립자명, 투자자명, 투자 규모, 가치평가, 우리사주신탁, 소유권
이번에 공개한 체리 벤처스의 텀 시트는 올해 초 오픈한 체리 벤처스의 네 번째 펀딩 프로그램 ‘체리 4(Cherry IV)’에서 제공되는 내용이다. 체리 4에서는 3억 유로(41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해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첫 번째 부분인 개요(Overview)에는 회사명, 설립자명, 투자자명, 투자 규모, 가치평가(valutation), 우리사주신탁제도(ESOP), 소유권(Ownership)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번 펀딩에서 체리 벤처스는 공동 투자자(co-investors)가 참여하는 것을 선호한다. 투자 규모는 신규 자본으로 최대 200만 유로(28억 원)의 상한선을 두고, 이 중 체리 벤처스는 150만 유로(20억 원) 규모로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신규 자본(fresh capital)이란 신주 발행으로 회사 재정을 강화하는 1차 자금 조달만을 의미한다. 기존 투자자의 구주 매수는 해당하지 않는다.
가치평가는 완전 희석(fully diluted basis) 기준으로 800만 유로(111억 원)이고, 이는 ESOP와 모든 증권을 다 포함한다. ESOP는 고용인이 근무하는 회사의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이다. 체리 벤처스에서 투자받는 스타트업은 미배정 옵션(특정 기초 자산을 당사자가 미리 정한 가격에 특정한 시점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을 자금 납입 이후 회사의 완전 희석 주식 자본의 10%가 되도록 옵션 풀(ESOP)을 만들어야 한다. 미배정 옵션은 새로운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방법이다. 소유권(ownership)을 보면 체리 벤처스는 라운드 이후 완전 희석 주식의 15%를 소유하게 된다.
#법적 영역: 클로징, 보장, 이사회, 계약서, 경비
두 번째는 법적(legal) 영역으로 클로징, 보장(Security), 이사회, 계약서, 경비(Expenses)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먼저 클로징 시점은 2022년 11월 4일로 펀드 계획이 발표된 2022년 1월 20일 후로 설정되어 최대 투자 절차에 약 10개월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별도의 주석에서 체리 벤처스는 최종 계약서 서명 후 1개월 이내에 클로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타트업별로 논의 시작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타임라인도 개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는 투자자에게 우선주를 발행해야 하고, 투자자의 우선주는 모든 보통주보다 순위가 높지만, 배당 및 청산 시 투자자보다는 창업자에게 더 유리한 비참가적 우선주(1x non participating) 원칙으로 처리한다. 전환, 희석 방지 보호(광의적 가중평균 Broad-Based Weighted Average)에 대해서는 관례에 따른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체리 벤처스는 주석을 통해 아래와 같은 내용을 밝혔다. “우리는 설립자들에게 우선주주는 모든 단계에서 동일 서열을 가지고, 보통주에 비해서만 우선권을 가지는 구조를 구현하는 것, 즉 파리 파수(pari passu) 방식을 추천한다. 현재 글로벌 금융업계에서 65% 이상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며, 특히 미국은 70% 이상이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파리 파수 방식이 아닌 역순차적 방식 (standard seniority stack)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는 후기 투자자들을 위한 방식이지, 창업자들을 위한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창업자와 우리(초기 투자자)를 모두 고려하는 방법으로 이를 채택했다.”
이사회 항목에서는 투자 클로징 이후 회사는 이사회(board of directors)를 설립하고, 체리 벤처스가 지명하는 1인을 이사회의 일원으로 임명해야 한다. 특정 경영진의 행동은 체리 벤처스를 포함한 이사회 및 우선 주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계약서에는 48개월간의 창업자 록업(lock-up), 베스팅(vesting)과 1년의 클리프(cliff) 기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즉 48개월 동안 창업자가 주식을 매매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 또한 48개월 동안 금지한 것이다. 최초로 베스팅이 진행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클리프라고 하는데, 이를 1년으로 설정했다. 그 밖에 겸업 금지, 경쟁 서비스 운영 금지 등 비경쟁 관련 조항, 우선매수, 공동매도, 동반매도요구권, 프로라타(비례적) 권리, 창업자 이탈 시 관련 추가 조항, IP 이전, 회사 보증에 관한 조항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비용에 대해서 회사는 투자 클로징과 동시에 체리 벤처스에 거래 관련 자문 비용을 최대 2만 유로(2800만 원, 부가세 제외)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사회적 영향력: 다양성, ESG 경영, 보고
체리 벤처스는 투자 스타트업이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항목을 텀 시트에 담았다. 첫 번째로 다양성과 포용(D&I, Diversity & Inclusion)에 관한 내용이다. 체리 벤처스는 자사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 회사도 다양성과 포용에 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특히 채용, 유지(retention), 승진 등 실무 상황에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다양성과 포용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 ESG 경영에 관한 부분이다. 클로징 이후 체리 벤처스에서 투자를 받는 회사는 6개월 이내에 ESG 전문 보고 도구를 채택하고, ESG 관련 모범 사례를 수립해야 한다. 특히 시리즈 A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ESG 목표에 대해 체리 벤처스와 상호 합의해야 한다.
세 번째로 보고에 관한 부분이다. 회사는 6개월마다 위에 언급된 사항에 대해 이사회에 최종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기타: 기밀 보호, 배타성, 준거법
먼저, 기밀 보호에 관한 내용이다. 회사는 본 계약서와 그에 관한 논의를 기밀로 유지해야 하며 사전 동의 없이 회사의 설립자, 대표자, 기존 투자자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공개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배타성&노 숍(No shop) 조항이다. 회사와 설립자는 경쟁 관계에 있는 제3자를 접촉하고 협상하거나, 이러한 제한을 수락할 수 없으며 2022년 11월 4일 중부유럽시 기준 오후 11시 59분까지 그러한 제한을 요청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 이는 클로징 시점이다.
세 번째는 준거법과 법원이다. 이 텀 시트와 계약서에 관한 모든 내용은 독일법의 적용을 받는다. 특히 당사자들은 독일 베를린법원의 비독점적 관할권을 따른다.
마지막으로 텀 시트의 효력이 사라지는 시점을 명시했는데, 이를 2022년 10월 9일 중부유럽시 기준 11시 59분으로 두었다. 최종 투자 라운드 클로징 약 1개월 전의 시점이다.
체리 벤처스의 텀 시트를 보면서 유럽에서 보통 초기 투자 라운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타임라인과 쟁점을 자세히 살펴봤다. 이런 문서를 살펴보며 창업했을 유니콘 기업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절로 눈에 선했다. 10분 배송 기업 플링크(Flink), 스마트팜의 시초 인팜(infarm), 유럽 전역을 오가는 저가 버스 브랜드 플릭스 버스(Flixbus). 이들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트업 출신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체리 벤처스와 텀 시트를 살펴보면서 사업을 가늠하고 준비한 햇병아리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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