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 자재 공급 부족, 국내외 자재 수요 증가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건설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철근 등 일부 자재의 품귀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도급계약 체결 이후 자잿값이 인상됐다면 적정 공사원가를 보장하기 위해 공사대금을 조정할 필요성과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고, 실제로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국가계약법(관급공사), 민간 건설공사 표준 도급계약(민간공사) 등은 모두 물가 변동을 공사대금 조정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물가 변동에 의한 공사대금 조정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기본적으로 시공사는 발주자가 물가 변동을 반영한 절대 원가 보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부실 공사를 조장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반면 발주자는 발주자대로 시공사가 공사 수주할 때는 상대적으로 낮은 금액을 약속하더니, 막상 도급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는 공사를 볼모로 공사대금을 반복적으로 인상하려 든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이렇다 보니 시공사가 일방적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현장에서 철수하거나 발주자가 도급계약을 해제하고 공사대금 조정을 거절하는 등 극단적인 대립이 일어난 사례도 있다.
만일 공사대금 조정이 결렬된다면 소송을 제기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승소하더라도 승소로 얻는 금액이 실제 받아야 할 금액을 하회하고, 소송이 장기화하면 발주자와 시공사 모두가 손해를 보면서 승자 없는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급적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극단적인 대립을 예방하고 신속한 조정에 이르기 위해 발주자와 시공사 모두 물가 변동 이슈에 관한 법령의 규정과 판례의 입장을 파악해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물가 변동에 의한 공사대금 조정 이슈에서 실무상 가장 큰 쟁점은 물가 변동을 공사대금 조정 사유에서 배제하는 특약이 유효한지 여부다. 이에 관해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는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로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 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 금액의 변경을 타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에 해당 계약 부분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조항을 근거로 특약 조항의 무효를 주장할 여지가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2. 4. 5. 질의 회신에서 ‘계약서상에 물가 변동으로 인한 계약 금액 조정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는 경우, 물가 변동으로 인한 계약 금액 조정을 인정하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가 없다면 그 부분에 한정해 도급계약의 내용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또한 국토부는 2022. 3. 28.자 업무처리 지침에서 공공 계약과 관련해 원자재 수급 불안 및 가격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에서 물가 변동에 따른 계약 금액 조정을 적극적으로 행하도록 하는 업무 지침을 시달했다.
수원고등법원이 ‘총 공사대금 5억 1000만 원에 인테리어 공사를 포함해 진행하고, 건축공사와 인테리어 공사 일체를 공사 금액의 증감 없이 시행한다’는 규정을 둔 사안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위 규정을 도급인의 요구에 따른 변경·추가공사의 경우에도 공사대금을 일절 증액하지 않기로 한 특약으로 해석한다면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에서 규정하는 ‘계약체결 이후 경제 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 금액의 변경을 타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에 해당해 무효로 볼 여지가 많다는 이유로, 수급인은 도급인에게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변경인 추가공사로 인한 공사대금 증액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도 있다.
이와 반대로 배제 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인 대법원 2012다74076 판결은 ‘물가 변동으로 인한 계약 금액 조정을 금지하는 특수조건은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조에서 규정하는 부당특약에 해당하지 않아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위 대법원판결이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의 유효성을 일반적으로 인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판결은 부당특약 여부에 대해서 그 특약에 의해 계약상대자에게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불이익 발생의 가능성, 전체 계약에 미치는 영향, 당사자들 사이의 계약체결 과정, 관련 법령의 규정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고 판시했고, 이에 따르면 당해 사건의 특수한 사정을 따져보아 개별적으로 배제 특약의 유효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결국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의 유효성은 물가 변동을 공사대금 조정 사유에서 배제할 경우 도급계약의 내용이 현저하게 불공정해지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물가 변동에 의한 조정을 불허할 경우 절대 원가를 확보하지 못해 부실 공사를 초래한다면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은 효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의 부당성 또는 도급계약의 불공정성 등을 고려하는 기준으로는 아래와 같은 예시가 있다.
① 계약상대자인 시공사에 지속적으로 손실이 발생했는지?
② 타 공종(공사 종류)의 하도급업체 파업, 글로벌 수급 불안 등 시공사에 귀책 사유 없는 사정으로 원가가 증가한 것인지?
③ 철골 콘크리트 공종 등과 같이 자잿값 비중이 높은 공종에서 자잿값이 인상된 것인지?
결론적으로 물가 변동에 의한 공사대금 조정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당사자 간의 약정으로 금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정 여부는 당해 공사 현장의 특수한 사정, 그 당시 경제 상황, 자재비의 비중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해 결정하며, 이 같은 개별 사정은 결국 사전에 준비한 증거에 의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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