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자 정부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지원’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위반건축물 등으로 ‘보증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해 피해 예방이 어려운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 소속 홍기원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한 건수는 총 1만 765건, 월평균 약 220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거절 건수 월평균 166건 대비 40%가량 증가한 셈이다.
건물 보증한도·선순위채권 기준이 초과하거나 위반건축물 등인 경우에는 전세사기 방지 대책 중 하나로 꼽히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위반건축물은 매년 증가할 뿐 아니라 해소하기도 쉽지 않다. 국토위 소속 한주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위반건축물로 시정명령이 내려진 건수는 총 11만 4520건이며, 2022년 1~7월 총 4만 3109건이다. 이 중 다세대나 다가구 주택 내부를 불법으로 수선하는 ‘불법 방 쪼개기’ 사례도 날로 늘고 있다. 국토위 소속 심상정 의원(정의당)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불법 방 쪼개기’로 이행강제금이 부관된 건수는 총 2239건으로 전년도 1974건에 비해 13.4%가량 증가했다.
시정명령 미이행으로 이행강제금이 부과되더라도 납부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1년 서울시에서 위반건축물로 시정명령이 내려진 건수는 6만 8352건이며 이 중 이행강제금 부과 건수는 총 6만 2343건이었지만, 납부 건수는 5만 2016건이었다. 약 17%가 이행강제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황이다. 위반건축물 해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임차인에게 자세히 설명해주는 공인중개사 드물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매물로 위반건축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중개플랫폼에서 ‘위반건축물’을 중개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부동산 중개 현장에선 전세사기 위험이 높은 부동산 전세매물이 계속 거래되고 있었다.
비즈한국은 9월부터 10월까지 약 한 달간 유명 부동산 중개플랫폼(직방·다방·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네이버 부동산 등)에 전세 매물을 구한다고 의뢰해 공인중개사와 함께 집을 보러 다녔다.
“전세 대출이 안 되는데, 집주인이 절차가 귀찮아서 지원 안 해주고 있어요.” 공인중개사 A 씨가 서울시 용산구의 1억 원대 전세빌라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소유주 B 씨 역시 “(망가진 부분은) 고쳐주겠다. 서울에 이만 한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전세 대출이 되지 않는 이유를 재차 물어봤지만, 공인중개사와 소유주 모두 “절차가 복잡하다”고만 할 뿐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부동산중개플랫폼에도 위반건축물 여부는 기재돼 있지 않았다.
비즈한국이 부동산 등기부와 건축물대장 등을 확인한 결과, 이 건물은 ‘위반건축물’이었다. 또 건물에 있는 모든 세대가 구청에 압류된 상황이었다.
공인중개사가 위반건축물을 중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이에 대한 설명과 불이익을 계약 전에 임차인에게 충분히 알려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경우는 ‘운’이 좋아야 들을 수 있었다. 예상되는 불이익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거나 위반건축물임을 알리지 않는 공인중개사도 있었다. 중개플랫폼에서도 대출 가능 여부나 위반건축물 여부를 기재하는 것은 자율적으로 이뤄져 정보를 알기 어려웠다. 대부분 중개플랫폼은 허위매물만 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중개플랫폼에 ‘대출 불가’라고 명시된 매물도 이유는 명확히 기재하지 않았다. 위반건축물임을 알려도 위험성을 축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동산 중개플랫폼에 ‘대출 불가’라고 적힌 서울시 용산구의 빌라 전셋집을 보여준 공인중개사는 “위반건축물이기는 하지만, 전세 가격이 낮고 매매 시세가 높아 (전세사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중개플랫폼을 통해 소개 받은 서울시 종로구의 원룸 전세 매물 역시 ‘위반건축물’이었지만, 공인중개사 C 씨는 “집에 걸린 담보는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대출은 잘 안 된다”고 설명할 뿐이었다.
부동산 중개플랫폼을 통해 전세계약을 맺었다가 이 같은 내용을 정확한 고지 받지 못해 ‘전세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까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골머리를 앓았다는 30대 D 씨는 “부동산 중개플랫폼을 통해 집을 알아보고 전세로 들어갔는데, 계약기간 종료 후 보증금을 못 받아서 소송까지 갈 뻔했다”고 밝혔다. 30대 E 씨는 “계약 당시 위반건축물임을 알려주지 않아서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가 없다. 계약 파기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중개플랫폼도 ‘전세사기 주의보’…결국 임차인 몫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중개플랫폼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다방 관계자는 “5일 서울시와 전·월세 정보 제공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지역 전세가나 임차 물량 등 자세한 정보를 애플리케이션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세사기 위험이 높은 지역에서는 리스크에 유의할 수 있는 장치 등을 마련하려 한다. 다만 적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전 안전장치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는 “현행 법상으로 공인중개사가 불법 건축물을 중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플랫폼 업체에서 전세사기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에 한계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에스크로 제도 등 사전 안전장치를 도입·확대하고, 관련 정보를 행정적으로 정확히 공개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스크로 제도는 부동산 거래계약 체결 후 권리 이전과 대금 지불을 제3자인 에스크로 회사가 대행하는 제도다. 임차인 보호를 위해 부동산 전세권·임대권 이전 등 모든 절차가 완료된 후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전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임차인 스스로 전세사기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인중개사를 통해 부동산 거래를 하는 게 위험을 줄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만 의지하면 안 된다. 실제 공인중개사가 월세를 전세로 받아 나머지 금액을 빼돌린 사례도 있다. 임차인이 처음부터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전입세대 열람 등을 통해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 전세금 비율이 주변 시세와 얼마나 차이 나는지도 중요하다. 불가피하게 위반건축물에 거주하게 될 때는 전세가 아닌 월세로 계약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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