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 하반기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히는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 재개발사업 수주전에서 해묵은 위법 논란이 또 불거졌다. 대우건설과 함께 사업시공자 후보로 나선 롯데건설이 재개발사업지에 있는 노후주택을 고치는 비용으로 조합원당 7000만 원을 제공하겠다고 나서면서다. 국토교통부 행정규칙에 따라 시공사는 시공과 관련 없는 재산상 이익을 제공해서는 안되는 데,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제안이 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비업계와 비즈한국이 입수한 한남2구역 입찰제안서 등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한남2구역 노후주택 유지보수비 명목으로 조합원당 70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새 집을 짓는 건설사가 조합원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재개발사업지에 있는 기존 노후주택을 고치는 비용까지 대겠다는 취지다. 무상 지급인지, 대여 형태 지급인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노후주택 유지보수비는 정비사업에서 시공과 관련 없는 제안을 금지한 행정규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국토교통부 고시인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따라 건설업자는 입찰서를 작성할 때 이사비, 이주비, 이주촉진비, 재건축부담금이나 그 밖에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에 대해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제안을 해서는 안 된다. 입찰과열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해 조합원 부담이 늘거나 분쟁발생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기존 노후주택을 유지·보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정비사업 시공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조합원은 이주비와 이주비 대출이자 부담을 가장 크게 느끼지만, 원칙적으로 건설사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명목으로 이를 보전해주려는 건설사들의 시도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급시점을 볼 때 노후주택 유지·보수 목적이 달성될지도 의문이다. 롯데건설은 한남2구역 노후주택 유지보수비 지급 시점을 관리처분부터 이주까지로 잡았다. 관리처분이란 정비사업 전후 자산을 비교해 조합원이 낼 부담금이나 환급금을 확정하는 절차다. 이전에 살던 집과 새로 살 집에 대한 평가를 마치고 이주와 철거를 목전에 둔 시점이다. 통상 관리처분에서 이주까지는 3개월에서 6개월가량 걸리는 데 이때 노후주택 유지보수비가 지급되는 셈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관리처분을 했다는 것은 곧 헌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기 위해 이주가 개시된다는 말인데, 관리처분 이후에 헌 집에 대한 유지보수비를 지급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증여 형태로 유지보수비가 지급되면 세금 문제로 조합원 실수령액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추후 입주나 분담금 납부 시점까지 이자를 가산해 분담금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지급 방법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행정당국은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 기준을 위반한 건설사에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상위 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비사업 시행이 도정법이나 도정법에 따른 명령과 처분을 위반하면 사업시행자에게 입찰무효 등의 관리감독 조치를 내릴 수 있다. 한남2구역 시공자 선정 입찰공고도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나 서울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을 위반한 입찰 참여자의 입찰 자격을 박탈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주택정비과 관계자는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명확하게 금지하는 행위는 이주비나 이주촉진비, 이사비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한남2구역에 제안된 노후주택 유지보수비가 어떤 성격인지, 무상 지급인지 대출 형태인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장혁 서울시 재정비촉진사업과장도 “롯데건설 측이 제안한 노후주택 유지보수비와 층수 완화를 전제로 한 높이 변경 내용이 담긴 특화설계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최근 용산구에서 조합 측에 제안내용의 위법사항을 검토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조합에서, 미흡할 경우 구청과 시에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한남2구역에 제안한 노후주택 유지보수비는 사업비에 포함된 대여금”이라며 “타 사의 지급 사례도 있기 때문에 조합에서 다른 의견을 주지 않는 이상 제안서대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노후주택 유지보수비가 적법한 제안으로 판단될 여지는 있다. 앞서 부산고등법원은 올해 8월 포스코건설이 부산 남구 대연8구역 재개발사업에 제안한 민원처리비 지급 공약이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회사는 2020년 10월 시공사 선정 시 일주일 내로 주택유지보수와 세입자, 상가 영업권, 토지 분쟁 해결 등에 쓸 수 있도록 조합원당 3000만 원의 민원처리비를 대여 형태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산지방법원은 지난해 2월 이 약속을 시공과 관련없는 재산상 이익제공으로 보고 시공자 선정 총회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에 대해 부산고등법원 민사5부는 “포스코건설이 입찰 제안서에 기재한 민원처리비는 조합원에게 증여하는 것이 아니라 대여하는 것”이라며 “이는 시공과 관련 있는 제안으로,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등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한편 지난달 23일 마감된 한남2구역 재개발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에는 롯데건설과 대우건설(기호, 입찰제안서 제출순)이 참여했다. 두 건설사는 각각 자사 프리미엄 브랜드를 적용한 ‘르엘 팔리티노’와 ‘한남써밋’을 제안했다. 한남2구역 재개발조합은 이르면 11월 초 조합원 총회를 열고 재개발사업 시공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한남2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용산구 보광동 일대 노후 주택을 재개발해 지하 6층~지상 14층 아파트 30개동(1537가구)과 부대시설을 공급하는 정비사업이다. 한남뉴타운 4개 구역 중 면적이 가장 작지만 한남3구역에 이어 두 번째로 사업 속도가 빠른 데다 일반분양 비율도 45%에 달해 사업성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총 공사비는 7908억 6025만 원이다.
한남2구역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을 위한 합동설명회를 올해 1월 개최한 뒤 진행한 입찰에서 2개 건설사가 참여했다. 11월 초 시공자 선정을 위한 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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