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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 부장에 고함] 권위적이지 않은 따뜻한, 배우 유해진의 '넉넉한 리더십'

경험이나 결정을 강요하지 않는 여유…권위 대신 유머 한 스푼 끼얹기

2022.10.05(Wed) 10:45:21

[비즈한국]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 무드로 돌아오면서 다시 돌아온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이 있다. 해외여행을 소재로 해외에서 촬영하는 예능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해진, 진선규, 박지환, 윤균상이 출연했던 tvN의 ‘텐트 밖은 유럽’은 그간 중단됐던 해외 촬영 예능의 재시작을 알리는 프로그램이어서 눈길이 갔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기차 대신 렌터카, 호텔 대신 캠핑장, 식당 대신 현지 로컬 마트를 찾아다니며 해외여행의 이면을 보여준 프로그램. 색다른 재미가 있어 흥미로운 여행 예능이었다. 

 

사진=tvN ‘텐트 밖은 유럽’ 화면 캡처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보니 애초에 이 프로그램은 유해진이 평소에 하던 유럽 여행 루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직접 가보니 좋았던 곳을 제작진에게 추천하고, 그 스폿들을 중심으로 유럽 현지인처럼 캠핑한다는 설정이란다. 그래서 프로그램 속에서 등장하는 여행지는 일반적으로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이 다니는 뻔한 관광 코스가 아니다. 동선을 따라가면 배우 유해진의 취향과 감성이 흐른다. 캠핑장에서 자연스럽게 자고 일어나 아침에 주위를 달리고, 더우면 강에 뛰어들어 자유로운 망중한을 즐기는 자연인 유해진의 모습을 실컷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 설정 덕에 여느 해외여행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텐트 밖은 유럽’에서는 자극적이거나 화려한 볼거리보다 유럽 시골의 자연 풍광이 휴식처럼 펼쳐진다. 여기에 둥글둥글 성격 좋은 네 명의 출연진들이 보여주는 아재 개그가 별미인데, 이게 참 심심하지만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슴슴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프로그램에는 말로 표현 못 할 특유의 정서가 있다. ‘텐트 밖은 유럽’을 보다가 문득 그 독특한 정서의 근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중심에는 유해진이 있었다. 

 

프로그램은 유해진이 미리 경험한 유럽 여행 루트를 따라가는 형식이기에 프로그램은 사실 유해진의 “라떼는 말이야”를 축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여행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유해진의 ‘라떼’는 요즘 MZ 세대들이 진저리 친다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의 ‘라떼’가 아니다. 자기가 먼저 경험해 본 것을 자랑하는 대신, 직접 후배들에게 경험하게 해주는 유해진식 넉넉한 ‘라떼’다.

 

그는 함께 여행하는 후배들이 스위스 인터라켄 정상에서 맥주 한 잔을 맛보게 하고, 스위스의 멋진 산악 풍광을 배경으로 패러글라이딩하도록 권한다.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스위스의 빙하 호수인 툰 호수에서 현지인들처럼 수영해 보자고 말하는 대신, 자신이 먼저 그 강물에 뛰어들어 분위기를 만드는 유해진이다. 유해진의 소탈한 분위기 몰이 덕에 여행을 함께 한 후배들은 옷을 입은 채로 호수에 뛰어드는 일상의 일탈을 만끽한다. 

 

사진=tvN ‘텐트 밖은 유럽’ 화면 캡처


자랑 같은 ‘라떼’ 대신 그 자랑할 만한 추억을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리더, 유해진. 자신이 먼저 겪은 정말 좋았던 인생의 순간을 후배에게 선사하기 위해 그는 프로그램 내내 솔선수범한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토스카나 캠핑장에서는 후배들과 함께 즐길 수구 게임을 위해 캠핑장 내 수영장의 깊이를 미리 측정해 보고, 공 대신 빈 페트병을 챙긴다. 

 

후배에게 경험하라고 자꾸 권하는 것도 권위적이지 않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유해진은 후배들에게 경험이나 기회의 결정 또한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좋으니 경험해 보라고 지시하는 대신 선택할 수 있게 늘 먼저 묻고, 때로는 후배들의 마음을 먼저 읽고 조용히 그것을 준비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모든 여정 속에서 유해진은 아재 개그로 권위 대신 유머 한 스푼을 추가해, 일행의 여행에 활력을 더한다. 

 

만일 내가 속한 조직에 유해진과 같은 넉넉한 ‘라떼’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있다면 싫어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권위와 꼰대를 상징하는 ‘라떼’는 유해진이라는 사람 안에서는 신기하게 전혀 다른 뉘앙스의 단어로 변모한다. 

 

“‘라떼’여도 저 선배는 좀 멋지네!”라는 평가를 후배들에게 당신도 들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도 유해진처럼 따뜻하고 여유 있는 넉넉한 ‘라떼’와 같은 리더십을 가져보는 건 어떤가. ‘라떼’는 우유에 진한 에스프레소 샷을 넣은 음료다. 맛있는 '라떼'를 마시면, 고소한 우유와 씁쓸한 에스프레소 샷이 어우러지는 그 맛이 아주 일품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커피를 잘하는 집인지 알고 싶으면 아메리카노 대신 라떼를 주문하라고 말한다. 그만큼 맛의 조화가 중요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나의 옛 경험을 후배들에게 조화롭게 말할 줄 아는 ‘라떼’ 같은 당신의 여유. 그 멋진 맛에 후배들은 중독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다. 이 가을엔 ‘라떼’ 한 잔의 여유를 부리는 멋진 당신이 되어보는 건 어떤가.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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