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배경에는 앞서 국회에 발의된 7개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있다. 2020년 12월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스타트를 끊은 후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의 발의가 이어지며 이 법안은 국회의 주요 안건이 됐다. 법제화가 이뤄질 경우 한국은 세계 최초로 빅테크 기업에 망 이용료를 도입한 나라가 된다. 이에 ‘망 무임승차’ 방지 논의를 시작한 유럽연합(EU)과 미국도 한국의 입법 경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제공자(CP)가 급성장하며 유발한 막대한 트래픽은 세계 각국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의 공통 난제다. 해외 CP사와 국내 ISP의 유례 없는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까.
#이중과금인가, 무임승차인가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맞붙는 쟁점은 ‘망 이용료 지불이 ISP의 이중과금인가’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은 CP가 콘텐츠를 통신 서버에 두면, 이용자들이 그 콘텐츠를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대가를 지불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영상을 시청하는 이용자들이 이미 통신사에 요금을 냈으니 ‘전송’에 해당하는 서비스는 오롯이 ISP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
이 같은 문제의식은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이 9월 20일 유튜브코리아 공식 블로그에 밝힌 입장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거텀 아난드 부사장은 “플랫폼 기업들에 소위 ‘통행료’를 내게 하는 것은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한국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건설업체에 돈을 내도록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한국 시청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위치한 ISP의 네트워크로 콘텐츠를 가져오기 위해 이미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2012년 ‘오픈 커넥트’를 구축, 각국 ISP의 네트워크에 서버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 서버를 통해 넷플릭스 회원과 가까운 곳에 저장해둔 콘텐츠를 스트리밍해 트래픽을 현저히 낮추고 데이터 전송 비용을 절감한다.
하지만 반박 논리도 명확하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큰 몸집으로 ‘도로를 점령한 트럭’이라는 반박이다. 조대근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에 따르면 ISP가 트래픽을 빨리 처리해줄테니 웃돈을 달라고 요구하면 망 중립성 위반이지만, 인터넷망 접속을 위해 처음 지불하는 돈은 망 중립성과 무관하다. 조 겸임교수는 ‘인터넷 망 이용의 유상성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피어링(Peering)을 하는 ISP들은 자사가 관장하는 망 자원 이외의 연결성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며 최종이용자, 부가통신사업자 모두 약관 또는 개별 계약에 따라 인터넷망을 이용할 권리를 얻고 이와 동시에 요금 납부 의무를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어링은 ISP끼리 서로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트래픽을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칙적으로 제3자에게 전달할 의무가 없다.
망 중립성은 ISP가 데이터 트래픽을 처리할 때 콘텐츠나 단말기, 이용자 등에 대한 차별 없이 데이터를 처리한다는 개념이다. 웃돈을 받고 특정 트래픽을 우선 처리한다면 망 중립성에 위배된다. 전문가들은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의 소송에서 망 중립성을 근거로 내세운 논리에는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권오상 미디어미래연구소 박사는 “망 중립성 개념은 이용 대가를 지불하느냐 마느냐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망을 이용하는 데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망 중립성이 확보된 상태에서도 정당한 이용 대가는 지불해야 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국내 동영상 공유 생태계 붕괴” 우려도
올해 초 유럽에서 ‘빅테크 기업이 200억 유로의 망 사용료를 내게 되면 EU 경제에 700억 유로 상당의 파급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며 미국과 유럽도 관련 논의에 돌입했다. 유럽통신사업자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구글(유튜브 운영사)과 넷플릭스, 메타(페이스북 운영사) 등이 차지하는 트래픽은 전체의 55% 이상을 차지해 연간 50조 원 내외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망 이용료가 적용될 경우 ISP사는 큰 이익이 보전된다. 하지만 망 이용 대가를 묻는 제도가 결국에는 ‘디지털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망 이용 주체, 접속량 등에 차별 없이 고정돼 있던 것을 방문자가 많다는 이유로 트래픽에 비례한 추가 비용을 요구하면 국내 동영상 공유 생태계가 붕괴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심사를 위해 개최한 공청회에서 CP 측 진술인으로 참석한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는 “해외에서 데이터를 가져오는 비용은 생각하지 않고 국내 망을 지난다고 돈을 받겠다는 것은 망 사업자 독점의 폐해”라며 “인터넷 이용 비용도 늘어나고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 확산이 저해되는 등 국내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용 상승으로 중소 CP와 크리에이터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면 콘텐츠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시각이다.
유튜브는 약 9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업 유튜버를 대상으로 망 사용료 법 입법 반대 서명 운동을 띄우며 여론전에 들어갔다. 거텀 아난드 부사장은 “추가 비용은 결과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업과 크리에이터들에게 불이익을 주게 될 것”이라며 “법이 개정될 경우 한국에서의 사업 운영 방식을 변경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이에 ISP 업계는 “과도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해외 CP사가 최종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망 부담은 ISP에 전가됐다.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되길 기대하고 있다”며 “다만 제도화 과정에서 망 이용료가 크리에이터나 소비자에게 떠넘겨지지 않도록 장치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동안 중단됐던 망 이용료 관련 논의가 재개됨에 따라 법안 처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됐지만 국내 CP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반기를 들면서 업계의 관심은 다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소송전을 향하고 있다. 이 소송을 계기로 해외 CP와 국내 ISP의 갈등이 표면화된 만큼 망 이용료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관련 입법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논의를 통해 두 주체가 망 구축과 데이터 이용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권오상 박사는 “CP사와 ISP 업계는 같은 생태계에 있는 사업자다. 망 투자는 ISP가, 데이터 사용 비용은 CP가 나눠 부담하며 함께 발전을 꾀해야 한다”며 “소비자 부담 가중 문제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트래픽 이용량이 많은 대형 CP가 중소 CP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망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콘텐츠 시장의 생태계 흐름을 바꿀 정도의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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