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거래소가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기술평가 모델 개발 과정에서 막바지 의견 수렴에 나섰다. 코스닥 시장에 부실 경영, 불공정 거래 등으로 상장폐지 대상이 된 기술특례 상장 기업이 끊이지 않아 상장 추진 시 투자자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가 이르면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 도입을 목표로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새 기술평가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는 “27일 새로운 기술평가 모델의 가이드라인에 관해 기술평가기관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연다. 일부 평가기관은 새 모델에 따라 시스템을 변경해야 하는 곳도 있어 상용화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번 설명회가 끝나고 기관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모델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8월 13일 혁신기업의 기술평가 및 상장지원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새 기술평가 모델의 초안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날 홍순욱 한국거래소 부이사장은 “최근 기술특례 신청 업종이 다각화하고, 기술특례 기업의 상장 이후 성과에 대한 시장의 기대 수준에 맞추기 위해 책임과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새로운 기술평가 모델로 기술특례제도 신뢰도를 높이고 기업 성장을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코스닥 시장의 기술특례 상장 제도는 영업 실적은 부진하지만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의 상장을 허용하는 제도다. 기술평가 특례 기업일 경우 기업평가 업무 수행기관, 정부 산하 연구·평가기관 24개로부터 일정 수준의 등급을 얻거나, 성장성 추천인 경우 상장주선인의 추천을 받으면 상장 청구를 할 수 있다.
2005년 제도 도입 이후 바이오 기업을 중심으로 기술특례 기업의 수는 꾸준히 늘었다. 2015년 12개로 급증해 2019년 22개, 2020년 25개, 2021년 31개를 기록하고 올해는 현재까지 19개로 집계됐다. 거래소 관계자는 “10월 이후 증시 상황을 지켜봐야 하지만 올해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 수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약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전했다.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새 기술평가 모델은 평가기관마다 제각각인 기술평가 기준을 통일하기 위해 개발됐다. 평가 과정에서 중복된 기준을 제거하고 융복합·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다양한 업종에 적용하는 것이 목적이다. 8월 거래소가 발표한 초안 따르면 △세부 평가항목 35개에서 18개로 감소 △신종 업종 평가를 위한 업종별·모듈식 평가지표 마련 △공통 평가지표 △상세 가이드라인 등이 포함된다.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새 기술평가 모델 도입을 앞두고 시각은 나뉜다. 업계에선 “바이오기업 등의 상장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코스닥시장본부 측은 “기관 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기준을 표준화하는 것일 뿐 상장 조건을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당국이 기술평가 기준을 손보는 등 기술특례 상장 활성화에 적극적이지만 이들 기업의 문제가 이어지면서 투자자 보호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선 평가기관이 평가 시 사업성도 본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평가모델에선 이 같은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술평가를 할 때는 파산 수준이 아니라면 재무 요건은 덜 본다. 취약한 재무를 기술력으로 보완하는 제도”라며 “그나마 기술 유출 여부 등의 항목이 불공정 거래 예방에 가까워 보인다. 재무 요건 등은 평가 다음인 심사 단계에서 본다”라고 설명했다.
거래소는 새 기술평가 모델 공개 당시 “특례상장 기업의 평균적인 장기주가 성과는 시장지수나 일반 상장기업보다 좋다. 특례상장 기업의 주가는 재무 성과보다 기술력으로 결정된다”라며 기술특례 상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기술특례 기업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한 것과 달리 실제 코스닥 시장에서는 기술특례 기업이 부실 경영과 불공정 행위 등으로 거래가 정지되거나 상장 폐지 위기에 놓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주가가 폭등 직후 폭락해 주주를 울리는 경우도 흔하다.
철도·환경 업체 유네코(옛 에코마이스터)는 지난 21일 회계 처리기준 위반 행위로 증권선물위원회에 고발당하면서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전 임원의 4억 원대 횡령·배임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는 부실 경영의 조짐이 횡령·고발 사건 전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유네코는 2018년 3월 기술특례 상장 당시 철도 검사설비 국산화와 슬래그 재활용 기술력으로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상장 이후 대규모 투자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실적이 크게 악화한 데다, 지난해부터 존속 능력 불확실 등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이에 일부 소액주주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당장 10월에도 내부 문제나 실적 악화로 거래가 정지된 기술특례 기업인 큐리언트, 신라젠, 코오롱티슈진의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모두 제약·바이오 업체로, 소액주주 비중이 커 거래 재개 여부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투자자가 많다.
큐리언트는 2016년 기술특례로 상장했지만 5년 이상 기준에 맞는 매출을 내지 못해 2021년 5월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2021년 12월 말 기준 큐리언트 소액주주는 9904명으로 전체 비중의 99.9%에 달한다. 소액주주 수가 16만 5000명에 달하는 신라젠도 전 대표의 350억 원대 횡령으로 인해 거래 정지돼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오랜 기간 투자금이 묶인 큐리언트, 신라젠 등의 소액주주들은 거래 재개 후 주가 폭등을 기대하며 금융당국의 결정을 기다리는 상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도 기술특례 상장 시 금융당국과 거래소의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소 특례상장 증가와 투자자 보호 방안’ 리포트를 통해 “해외에서 성장성을 갖춘 바이오 기업의 상장이 추세이더라도, 국내 코스닥 시장은 개인 투자자가 주도하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라며 “기업 부실화에 대한 모니터링과 불공정행위 적발을 위한 감독 당국과 거래소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라젠 등 일부 기업의 문제로 기술특례 상장 기업을 향한 우려가 크다. 기술 성과는 재무와 달리 금방 판단하기 어렵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지만 건전한 기업도 있다. 기술성 평가와 투자자 보호를 강화한다면 특례상장은 중요한 상장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특례상장 기업의 주가는 기술개발 성공 여부에 따라 크게 등락할 수 있다. 일부 기업이 기술 개발에 실패하는 과정에서 공시 위반이나 불공정거래가 증가할 수 있다. 거래소와 금융당국은 기술 성과에 관한 공시제도를 발전시키고, 공시 위반이나 불공정거래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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