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긴 팬데믹 이후 각국의 방역 규제가 풀리면서 최근 베를린으로 출장, 연수, 교육, 각종 박람회 참여 등으로 방문하는 한국인이 많이 늘었다. 스타트업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연히 만날 일도 많고, ‘유럽스타트업열전’을 통해 연락이 닿아 일부러 약속을 잡고 만나는 일도 잦아졌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내게 몇 가지 공통적인 질문을 하곤 하는데, 대부분의 질문이 이미 기존 칼럼에서 다루어졌던 것이라 간단히 소개 후 칼럼 링크를 보내드리곤 한다. 하지만 그 질문 중 아직 한 번도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꽤 자주 나오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베를린에서 제일 유명한’ 또는 ‘제일 잘하는 VC(벤처캐피털)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이다.
그동안 스타트업 그 자체의 흥망성쇠, 그리고 국가와 공공기관에서 스타트업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VC는 스타트업 투자자로서 이름만을 열거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VC는 상당히 중요한 퍼즐 중 하나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창업자들이 자본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베를린의 주요 VC들을 소개한다.
#독일 주요 VC 소개
벤처캐피털, 사모펀드 및 M&A 거래를 포함한 사모 시장을 포괄하는 데이터를 다루는 회사 피치북(PitchBook Inc.)에 따르면, 독일의 주요 VC들은 베를린에 있다.
투자 건수가 가장 많은 VC를 1위부터 10위까지 순서대로 살펴보자면, 하이-테크 그륀더퍼(High-Tech Gründerfonds, 본, 964건), 글로벌 파운더스 캐피털(Global Founders Capital, 베를린, 600건), HV 캐피털(HV Capital, 뮌헨, 377건), 얼리버드 벤처 캐피털(Earlybird Venture Capital, 베를린, 321건), 웰링턴 파트너스(Wellington Partners, 뮌헨, 273건), IBB 벤처스(IBB Ventures, 베를린, 267건), 바이에른 카피탈(Bayern Kapital, 란츠후트, 266건), 로켓 인터넷(Rocket Internet, 베를린, 256건), 포인트나인 캐피털(PointNine Capital, 베를린, 255건), 타깃 글로벌(Target Global, 베를린 182건) 이다.
압도적인 투자 건수로 1위를 달리고 있는 하이-테크 그륀더퍼는 독일 본에 본사가 있고, 독일 연방 경제기후부와 국책 은행인 KfW그룹 산하의 VC다. 2005년에 설립되어 이름처럼 하이테크 기반의 스타트업에 시드 단계 투자를 주로 진행하며, IPO(기업공개)를 포함한 150개 이상의 엑시트(Exit)를 달성했다. 하이-테크 그륀더퍼의 LP는 주로 가족 기업의 전통이 있는 독일의 중소중견기업, SAP, PwC 등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하이-테크 그륀더퍼의 포트폴리오 기업으로는 독일 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온라인 주문 안경 브랜드 ‘미스터 스펙스(Mister Spex)’가 있다. 본에 본사가 있지만, 스타트업의 중심인 베를린에도 지사를 두고 있어서 독일에서 가장 가장 활발하고 영향력 있는 VC라고 볼 수 있다.
10위권 안의 VC는 세 지역에 집중되는데, 본이 위치한 NRW(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뮌헨과 란츠후트가 있는 바이에른주, 그리고 베를린이다. 그 중에서도 베를린에 있는 VC만 6개로 독일에서 베를린이 명실상부 스타트업의 중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베를린을 주름잡는 VC는?
독일 투자 건수 2위에 베를린 VC 중에서 가장 투자가 활발한 글로벌 파운더스 캐피털은 3위 이하의 VC와 비교했을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투자 건수가 많다. 1위인 하이-테크 그륀더퍼는 국책은행과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형성된 VC여서 절대적으로 비교가 어려운 점을 감안한다면, 민간 VC 중에는 가장 뛰어난 실적을 자랑한다.
글로벌 파운더스 캐피털은 2013년 베를린에서 설립되었다. 로켓 인터넷 설립자로 유명한 올리버 삼베르(Oliver Samwer)의 투자로 시작되었으며, 베를린에 있지만 글로벌 스타트업의 초기 투자를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에서 유명한 스타트업은 모두 스쳐갔을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글로벌 파운더스 캐피털의 포트폴리오에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 봤을 만한 스타트업들이 있다. 한국의 ‘배달의민족’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Delivery Hero), 밀키트 유니콘이 된 헬로 프레시(Hello Fresh), 유럽에서 HR 관리 서비스의의 대명사가 된 페르소니오(Personio) 등이 그 예다.
투자 건수 4위에 오른 얼리버드 벤처 캐피털은 1997년 베를린에서 설립되었다. 현재 활발한 VC 중 가장 형님 격인 셈이다. 모든 단계의 스타트업을 지원하며 국제 네트워크에 강하다.
독일어권, 북유럽, 영국, 베네룩스, 프랑스 및 남부 유럽의 초기 단계 디지털 기술 회사를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디지털 웨스트 펀드(Digital West Fund), 동유럽과 튀르키예(터키)의 초기 단계 ICT 투자에 집중하는 디지털 이스트 펀드(Digital East Fund), 유럽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 생명 공학 부분의 초기와 후기 단계 투자에 집중하는 헬스 펀드(Health Fund), 초기 단계의 로봇 공학, AI, 모빌리티를 대학 및 연구소와 연계하여 지원하는 얼리버드 유니 엑스(Earlybird UNI-X) 등 총 네 가지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약 20억 유로(2조 7000억 원)의 기금을 굴리고, 현재까지 8개 기업의 IPO를 진행했으며, 30개의 기업을 M&A한 경력을 자랑한다.
6위에 오른 IBB 벤처스는 베를린 투자은행(Investitionsbank Berlin)과 베를린시가 전액 출자한 자회사로 1997년에 설립되었다. ‘메이드 인 베를린(Made in Berlin)’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베를린에서 혁신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총 1억 2200만 유로(1700억 원)의 기금을 투자했으며, 일부는 EU의 유럽지역개발기금(ERDF)으로부터 지원받아 형성되었다. 지금까지 8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매년 10개 이상의 투자 라운드가 진행되며, 초기 투자 이후 후속 자금 조달도 활발하다. 지금까지 50여 개의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엑시트 했다. 투자 분야도 다양한데, 소비자 및 디지털 부문에서 B2C 사업을 하고 있는 포트폴리오에 언어 학습 앱 바벨(Babbel), 도서 요약 서비스 블링키스트(Blinkist), 여성 위생 용품 스타트업 피메일 컴퍼니(The Femail Company)가 있다.
그 밖에 보건 의료 분야, 산업 기술분야, 소프트웨어 및 IT분야의 스타트업을 지원해왔으며, 최근에는 타 VC와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임팩트 VC펀드 분야를 강화했다. 임팩트 분야는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일컬으며, 생태 친화적, 지속 가능한 임팩트 스타트업에 3000만 유로(415억 원)를 투자하는 프로그램이다. UN에서 정의한 17개의 글로벌 지속 가능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빈곤 감소, 건강, 교육, 클린 에너지, 혁신 및 인프라, 지속 가능한 도시 및 지역 사회, 기후 보호 등에 대한 주제가 포함된다.
IBB벤처스의 투자효과는 베를린을 스타트업의 도시로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연간 33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5억 6000만 유로(77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창출하는 베를린 회사 85개의 주식을 IBB벤처스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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