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BS 금토 드라마 ‘오늘의 웹툰’이 지난 17일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마츠다 나오코의 만화 ‘중쇄를 찍자’를 원작 베이스로 삼아, 이를 드라마화한 동명의 일본 TBS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이 된 만화와 일본 드라마와 달라진 지점은 드라마의 배경을 국내 현실에 더 걸맞게 만화 잡지사에서 웹툰 회사로 옮겼다는 점이다.
매일 매일이 치열한 웹툰 업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늘의 웹툰’은 이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인 유도 선수 출신 새내기 웹툰 편집자 온마음(김세정 분)의 성장 드라마다. 웹툰 피디로서의 온마음의 성장사도 담고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다양한 웹툰 작가들의 인간군상을 통해 현재의 청춘들이 고민하고 있을 꿈과 재능,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서 흥미로웠다.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묘사된 드라마 속 에피소드 중 마음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에피소드는 7화에서 국내 만화계의 거장 백어진(김갑수 분) 작가의 10년 차 어시스턴트 임동희(백석광 분)가 꿈을 포기하는 과정을 그린 스토리였다. 스스로를 “10년 묵은 만화가 지망생”이라며 버릇처럼 자조하던 임동희는 “10년 동안의 성실성은 꼭 인정받을 것”이라며 작품 피드백을 해주겠다는 온마음의 응원에 다시 한번 웹툰 작가 등단의 꿈을 꿔보지만, 결국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공모전에 또다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그는 결국 웹툰 작가가 되는 꿈을 포기한다.
웹툰 작가를 포기하게 된 10년 차 어시스턴트 임동희의 꿈 포기를 앞당기게 만든 이는 함께 일하는 후배 어시스턴트 신대륙(김도훈 분)의 영향이 컸다. 마지막 희망이라 여겼던 공모전에서 떨어진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쓰라린 상처의 날, 그림 그리는 일은 매우 어리숙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대륙의 웹툰을 몰래 훔쳐보게 된다. 대륙의 천재적인 작품을 확인한 날, 동희는“작품을 그린다는 건 아무리 추악하고 한심해도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말하는 스승 백어진 작가의 말대로 처음으로 자기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본인이 처음 꿈꿨던 창작을 제대로 해내는 대륙을 보면서, 자신이 꿈을 핑계로 긴 시간 동안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진지하게 평가받고 부딪혀야 하는 프로가 되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원망만 해왔던 자신을 처음 돌아보게 되어서다. 깨달음 끝, 그는 언젠가는 프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최면을 걸면서 꿈을 이어왔던 자신의 커리어를 미련 없이 정리하게 된다.
흔한 드라마였다면 꿈을 포기하는 동희를 어쩌면 현실의 벽에 부딪힌 나약한 범인처럼 묘사할 수 있었겠으나 ‘오늘의 웹툰’은 그런 동희 캐릭터를 다른 관점에서 묘사한다. “10년 동안 꿈꿀 수 있어서 행복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낸 용기가 포기할 용기였다”고 온마음에게 말하는 동희를 측은하게 바라보기보다는 그의 용기 있는 포기에 “그간 정말 애썼다”고, “새로운 시작에 힘내라”고 박수를 친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인 온마음 피디 또한 그가 내보인 진심에 동희를 붙잡지 않는다. 모든 걸 쏟아부은 꿈을 내려놓는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지 자신의 경험으로 이미 체득한 그녀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작가님이 버텨온 시간은 어디서든, 무얼 하든 보일 것”이라며 그의 새로운 밝은 앞날을 응원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포기를 나약함의 상징이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현실은 그 반대다. 포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해서다. 실패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기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포기에 뒤따를 손해나 불이익이 두려워서일 게다. 그렇다면 그 손해와 불이익이 될 것이라는 공포는 어디에서 근원하는 것일까. 남들 앞에서 보란 듯이 잘 살고 싶다는 욕망, 그 욕망 때문에 우리는 때론 우리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포기하지 못해 인생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공공상담소’의 운영자이자 ‘포기하는 용기’의 저자 이승욱 원장은 “‘남의 욕망’을 포기하는 지혜만이 우리를 홀가분하게 하고, 진짜 자신을 만나게 한다”고 말한다.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 분별하는 지혜와 그것을 포기했을 때 뒤따를 수 있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포기가 가능”해서다.
그러니까 ‘포기하는 용기’는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고 ‘참다운 나’로 살아가게 하는 진심으로 멋진 삶의 결단이다. 그러니 포기할 용기를 가진 당신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다. 혹시 무언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무조건적인 열패감 대신 냉정하게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 것인지만 분별만 잘 할 수 있다면 당신의 ‘포기’는 값진 인생의 경험이 될 테니까.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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