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 가구 관련 온라인 커머스 기업인 A 사. 매출도 꾸준하고 영업이익도 100억 원 이상 나오는 곳이다. 코로나19로 ‘집콕’이 늘어나면서 시장에서 3000억 원이 넘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완전 바뀌었다. 시장의 반응이 냉랭하다. 코로나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과 함께 투자 시장이 위축되면서 기업 평가금액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매각을 위해 여러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PE)와 접촉했지만 긍정적인 반응은 없다는 후문이다.
#2. 대형 은행에서 VC(벤처캐피털) 심사역을 맡은 적이 있는 30대 은행원 김 아무개 씨. 최근 주목받는 중고거래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연봉 2억 원가량을 주겠다는 이직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지난 2년과는 다른 분위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것 자체에 대해 냉정한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자칫 하면 커리어가 꼬일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 김 씨는 “향후 기업 매각에 성공하면 매각액의 일정 비율을 받는 조건도 제안받았지만 매각이 성공할 수 있을지 답이 보이지 않아 이직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을 필두로 각국 중앙은행이 시장에 풀린 돈을 회수하면서 투자업계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자산운용사와 PE의 기업 인수는 물론 VC 투자 시장도 보수적인 흐름이 지배적이다. 최근 수년 동안 돈이 넘쳐났다면, 이제는 옥석 가리기를 하는 때가 왔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시중 유동성이 넘치던 시절에는 VC나 PE 등 투자가들이 적자여도 플랫폼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지만, 고금리로 투자 혹한기가 된 지금은 기업 순익을 철저히 따지고 있다.
앞선 김 씨는 “2년 전만 해도 신선한 아이디어가 있고 플랫폼 기업이라고 하면 묻지 마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지금은 이익을 내는 구조를 확실하게 확보했는지, 그 시장에서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독점적인 경쟁력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국내 스타트업 25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10곳 가운데 6곳(59.2%)이 지난해보다 경영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말하며 이유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를 꼽았다. 84%는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 등의 대내외 경제 불안으로 지난해에 비해 투자가 감소했거나 비슷하다고 응답했다.
실제 투자액도 크게 줄어들었다. 국내 스타트업 민관협력 네트워크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 8월에 국내 스타트업이 유치한 전체 투자금은 8628억 원으로, 지난해 8월 1조668억 원과 비교하면 19.1% 줄었다. 지난 7월의 투자금은 8368억 원에 불과했는데, 이는 지난해 7월 3조659억 원보다 무려 72.7%나 감소한 수치다.
올해 초 8000억 원의 기업가치로 PE 투자를 받으려 했던 명품 플랫폼 발란은 현재 기업가치를 조금 낮췄다. 신규 투자자 없이 기존 투자자들끼리 5000억 원 안팎의 기업가치를 기점으로 추가 실탄 투입을 검토하고 있다. 트렌비도 최근 3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중 200억 원은 지난해와 올해 초 발행한 전환사채(CB)가 우선주로 바뀐 것이다. 신규 투자는 100억 원 안팎에 그칠 정도다. 지난해 기업가치 4조 원으로 투자를 유치한 컬리는 당시 7조 원의 기업가치로 상장을 전망했지만 현재 예상되는 상장 후 시가총액은 2조 원 안팎으로 급감했다.
이처럼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던 스타트업들조차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정도라, 규모가 더 작은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M&A 등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로 핀테크 기업 ‘핀다’는 빅데이터 상권분석 스타트업 ‘오픈업’을,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 ‘엑스와이지’는 자율주행 로봇 스타트업 ‘코봇’을 인수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자금력이 있는 기업들은 투자를 받지 못했지만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하기 좋은 적기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겨울’을 지나면서 살아남는 기업들은 그 경쟁력을 더 높게 인정받는 때가 또 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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