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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침수 피해 옥탑방으로? 여름엔 폭염, 겨울엔 한파 시달려"

대부분 불법건물에 치안도 불안…전문가 "'지옥고' 정책 없어, 취약계층 위한 공공임대 필요"

2022.09.05(Mon) 12:26:49

[비즈한국] “가건물이라 가격이 저렴해요. 관리비도 따로 없고요. 대신 난방은 전기장판으로 해야 해요. 가스가 없거든요.” 서울 용산구 부동산중개사 A 씨가 옥탑방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10㎡(약 3평)가 채 안 되는 ​넓이에 보증금 200만 원, 월세 32만 원. 서울 어디서도 보기 힘든 가격이다. 집값이 높기로 악명 높은 서울이지만, 옥탑방은 월 30만~50만 원 수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보증금도 200만~1000만 원 선으로 저렴하다. 방은 좁지만, 옥상 공간을 쓸 수 있어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부동산 중계 애플리케이션 ‘직방’에 올라온 서울시 서대문구 인근 반지하 매물 목록. 반지하와 동일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는 방은 옥탑, 고시원 등이다. 사진=직방 캡처


그러나 이런 옥탑방은 대부분 ‘불법 건물’이다. 기존 건물 옥상에 불법으로 증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출도 어렵고, 가스보일러가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당연히 더위와 추위에도 취약하다. 영등포구 옥탑방에서 2년간 거주했다는 B 씨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엔 추워요. 한파가 오면 아무리 난방을 틀어도 옷을 껴입고 자야 했어요. 큰 장점은 낮은 가격과 옥상 공간이 있다는 거죠. 서울에서 이런 공간을 누리기 쉽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서울시 종로구 한 옥탑방의 계단 모습. 옥탑방까지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사진=전다현 기자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한 건물에는 옥탑방이 4개로 나뉘어 있다. 역시 불법으로 개조했는데, 이 때문에 1개의 난방 보일러를 4개 가구가 공유한다. 난방 온도를 높이고 내리는 것도 눈치싸움을 해야 한다. 영등포구 공인중개사 C 씨는 “아주 저렴하게 집을 구하는 분들이 온다. 그래도 옥탑을 추천하진 않는다. 치안도 좋지 않아 여성이 살기에 적합치 않고, 웬만하면 조금 더 돈을 보태서 일반 원룸으로 가는 게 낫다”라고 설명했다. 

 

한 개의 옥탑방을 네 개로 불법 개조한 탓에 하나의 보일러를 4개 가구가 공유하면서 주민들끼리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사진=전다현 기자

 

지난 8월, 폭우로 반지하 침수 사고가 잇따르면서 ‘취약 주거’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정부와 지자체는 앞다퉈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사고가 발생한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거주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는데, 열악한 주거 형태를 순차적으로 없애고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문제만큼은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게 평소 문제의식이다. 지옥고 중 제일 먼저 줄여나갈 게 있다면 반지하다. 이를 반영해 침수지역을 중심으로 반지하 주거 형태를 위로 올리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이례적인 폭우였다고는 하지만, 사실 ‘반지하’ 재난은 처음이 아니다. 일명 지옥고라 불리는 지하, 옥탑, 고시원 등 취약주거에서 화재, 폭염 등의 재난은 계속됐다. 옥탑방에서 폭염이나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도 비일비재했다. 정부는 2005년부터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거주층 문항을 포함해 지하와 옥탑방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영화 ‘기생충’이 화제가 되자 지하 거주 가구에 대한 전수 조사도 실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사가 대책 마련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한국도시연구소는 8월 17일 발간한 ‘지옥고 실태와 대응 방안’에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 정책 당국은 고시원에서 화재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고시원 대책을 발표하고, 지하에서 수재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지하 대책을 발표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지만 지옥고에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참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옥탑 거주 늘어나는데 대책은 안 보여…

 

지옥고 거주민은 계속 늘고 있다.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지하, 옥상,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는 2005년 69만 4854가구에서 2020년 85만 5553가구로 약 23% 늘었다. 지하 거주는 2005년 58만 6649가구에서 2020년 32만 7320가구로 약 44% 감소했지만, 옥상 거주는 5만 1139가구에서 2020년 6만 5603가구로 약 28% 증가했다. 주택 이외의 거처에서 거주하는 가구는 2005년 5만 7066가구에서 2020년 46만 2630가구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게다가 옥탑방 등은 불법 개조 건물이 많아 전입신고를 별도로 하지 않으면 주거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불법 증축된 옥탑 건물은 ​최소 주거 환경조차 안 되어도 주택법 등 관련 법을 피해간다. 정부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종로구 공인중개사 D 씨는 “침수 때문에 반지하보다는 비슷한 가격인 옥탑이나 고시원을 알아보는 분들이 늘었다. 근데 옥탑도 살기가 쉽지 않다. 반지하가 침수 때문에 문제라면, 옥탑방은 ​겨울 ​한파가 큰 문제다. 건물 대부분이 1990년대에 지어져 낡고, 임대인들은 (불법 증축에 대한) 벌금만 내고 계속 세를 준다. 정부에서도 함부로 철거하거나 막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9일 발달장애 가족이 침수로 고립돼 사망한 관악구 신림동 수해 현장을 ​오세훈 서울시장이 ​점검하고 있다. 사진=서울특별시 제공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무슨 일이 생기면 정부가 말만 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 조사만 한다. 핵심은 예산 투입인데, 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2018년 고시원에 화재가 났을 때는 반지하를 배제하고 고시원만 대책을 논의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같은 취약 주거인 옥탑이나 고시원은 보이지 않는다. 겨울 한파로 옥탑방 문제가 대두되면 또 옥탑만 가지고 논의할 거다. 제대로 된 정책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옥탑방은 ​대부분 ​불법으로 지어져 문제 해결도 쉽지 않다. 현재 정부 기조가 자가 촉진에 맞춰 있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옥탑방, 고시원, 반지하 등에 살고 있는 취약계층에게는 공공임대가 꼭 필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공공임대 예산 축소는 많이 아쉽다. 우리나라는 프랑스 파리 등에 비해 공공임대 비율이 낮은 편이다. 취약주거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전체 주택 수를 늘려야 하고, 이 중에서도 저렴한 주택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저렴한 게 공공임대다”라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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