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물가 시대에 나타난 홈플러스 ‘당당치킨’은 한 통에 6990원이라는 초저가로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기본 2만 원을 호가하는 마당에 나타난 초저가 치킨에 소비자들은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당당치킨 열풍이 거셀수록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있다. 바로 홈플러스의 조리 노동자들이다.
8월 31일 오전 10시 홈플러스 본사가 있는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강서점 앞에 노란 조끼를 입은 이들이 모였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는 ‘조리 노동자 인력 충원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당당치킨 매출 대박은 살인적인 노동의 결과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출이 10배 가까이 늘어날 만큼 당당치킨이 팔리는 동안 조리 노동자 수는 그대로라는 것.
홈플러스가 지난 6월 30일 출시한 당당치킨은 출시한 지 두 달이 넘었음에도 하루 1만 마리꼴로 팔릴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프랜차이즈 치킨업체의 반발은 오히려 당당치킨의 유명세로 이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이 열리는 와중에도 매장으로 달려가는 소비자를 볼 수 있었다. 홈플러스 강서점에선 당당치킨을 오전 11시, 오후 1시·3시·5시·7시에 한정 판매하는데, 11시 20분쯤 매장을 찾았을 땐 이미 품절된 상태였다.
홈플러스 금천점의 조리 노동자인 신순자 홈플러스 금천지회장은 이날 “하루 평균 30~40마리 치킨을 만들어왔는데 당당치킨 출시 후 8월 중 주말 하루에 닭 12마리가 담긴 박스를 22박스씩, 260마리가량 튀긴 적도 있다. 한 달 반 넘게 이렇게 일하다 보니 어깨가 너무 아파 병가를 낸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핫델리(조리식품) 코너에서 만드는 품목이 50여 가지다. 당당치킨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당당양념치킨, 당당매콤새우치킨, 퀴노아치킨 등 유사 제품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온라인 주문까지 있으니 소화하기가 너무 힘들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화장실도 참다가 뛰어간다”라고 말했다.
노조가 당당치킨으로 인해 조리 노동자가 극심한 노동에 시달린다고 항의하자 홈플러스 측은 “당당치킨의 경우 현장 여건에 따라 점포당 적정 생산량을 정해 판매한다”라며 “조리시설에 한계가 있어 하루 생산 물량을 제한한다”라고 대책을 밝혔다. 8월 17일에는 노조에 공문을 보내 점포 규모별 당당치킨 생산 수량을 전달했다. 공문에 따르면 매출 규모가 가장 큰 매장은 하루 평균 120~150마리를 생산한다. 본사가 있는 강서점도 당당치킨을 하루에 120마리씩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이 같은 수량 제한 대책을 두고 ‘눈속임’이라고 비판했다. 노조에 따르면 조리 노동자는 매장 규모에 따라 3~8명씩 배치되며, 일일 근무자는 이보다 적다. 일주일 교대 근무로 1~3명씩 돌아가며 휴무일을 정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실제 근무하는 인력은 전체 인력보다 적다는 것.
노조는 기존 하루 생산량 30~40마리에서 3~4배로 늘어난 양을 인력 충원 없이 만들기엔 여전히 과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제한 수량이 프라이드 치킨에만 해당해, 양념 등 다른 당당치킨 제품의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홈플러스 조리 노동자들은 당당치킨 생산 물량도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에 본사가 신제품 출시에 열을 올린다는 점 또한 문제로 꼽았다. 노조 관계자는 “조리 제품 50여 가지를 만들면서 당당치킨을 추가로 만들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당당치킨이 미끼 역할을 하므로 다른 제품도 계속 판매해야 한다”라며 “이 와중에 최근 조리 제안에서 2주 단위로 신제품을 낸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인원 충원은 안 하는데 신제품을 출시하면 어떻게 감당하나”라고 반문했다. 홈플러스 사측은 “신제품은 일정한 주기로 출시하는 게 아니라 출시 후에 수요를 보고 지속적인 판매 여부를 정한다”라고 응답했다.
노조는 당당치킨 판매 기간 동안 상시적인 초과근무와 조기 출근이 이어진다는 점도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는 “오전 조는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한다. 치킨은 당일에 생산해야 하니 오전 판매량을 소화하기 위해 오전에 출근하는 조리 노동자를 6~7시에 조기 출근시킨다. 조기 출근한 만큼 빨리 퇴근하는 것도 아니다. 물량을 맞추기 위해 5시에 퇴근하지 못하고 강도 높은 초과근무를 한다. 이때 30~40분씩 일하는 경우에는 초과 수당을 받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신순자 금천지회장은 “조리만 하는 게 아니라 닭 12마리가 든 박스, 18kg에 육박하는 기름통 등 식자재도 조리 노동자가 직접 옮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깨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 병가를 내고 병원에 다니고 있다. 회사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물어봤지만 인정받기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라며 “당당치킨이 뭔지, 너무 서럽다. 매일 쫓기듯이 일하는 데다 초과근무까지 한다. 숨 돌릴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게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한정영 홈플러스 간석지회장은 “현장에선 곡소리 나게 일하고 있다. 관리자들도 신규 채용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회사에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인력 충원으로 정당한 휴식권을 보장하고 적당한 업무 강도로 일하게 해달라”고 외쳤다.
홈플러스 사측은 여러 차례 이어진 노조의 인원 충원 요구에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조리 노동자를 단시간에 채용하기 어렵고, 고용 시 장기계약을 해야 하는 만큼 당당치킨의 화제성이 이어지는 상황을 보고 추가 채용을 결정하겠다는 것. 회사는 입장문을 통해 “당사 직원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근무한다”라며 “인력 충원은 고용 유지가 필수적이므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당당치킨이 인기가 있다고 근시안적으로 충원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심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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