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마녀사냥’이 돌아온다고 할 때 정확히 반가움 반, 우려 반이었다. 2013년 8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123부작에 걸쳐 방영된 JTBC ‘마녀사냥’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뒤흔드는 마성의 여자들을 파헤치는 본격 여심 토크 버라이어티’를 표방했다. 연애와 성(性)에 관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당시 방영되는 방송 중 가장 아슬아슬한 수위를 자랑했다. 나름 발칙한 이야기가 많았음에도 눈살 찌푸려지기는커녕 신선하고 발랄했다.
종영 이후 7년이나 지난 뒤인 지금에도 ‘그 재미와 신선함이 유효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건 당연하다. 마녀사냥은 ‘그린라이트’ ‘낮져밤이’ ‘탑게이’ 등 여러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MC를 맡았던 신동엽, 성시경, 허지웅, 유세윤의 결합은 찰떡궁합처럼 단단한 결속을 보여줬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반복이라면 굳이 마녀사냥이 돌아올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유교걸’과 ‘유교보이’가 많지만 그래도 7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으니까.
돌아온 ‘마녀사냥 2022’는 기존의 MC 신동엽 외에 출연진을 전원 교체했다. 성시경, 허지웅, 유세윤을 대신하는 건 작사가 김이나, 프로듀서 코드 쿤스트, 가수 비비. 기존의 마녀사냥이 ‘마성의 여자들을 파헤친다’는 콘셉트로 비슷한 연령대의 남자들끼리 낄낄거리며 대놓고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모습을 (약간의 한심스러운 시선도 담아) 재미나게 지켜보는 경향이 강했다면, 돌아온 마녀사냥은 균형 잡힌 남녀의 성비는 물론 20, 30, 40, 50대라는 연령의 균형까지 잡혀 다양한 이야기와 시선을 강조하는 형국이다. 물론 기존 마녀사냥도 남자 MC들 외에 곽정은, 서인영 등 여성 출연자와 ‘탑게이’ 포지션의 홍석천, 그리고 게스트 출연진이 참가하는 후반부 코너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남성 MC들의 존재감이 확연히 강했다. 그에 비해 지금 ‘마녀사냥’의 김이나와 비비는 기존의 성시경이나 허지웅 못지않은 강렬함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티빙이라는 OTT 플랫폼에서 방영되는 덕분인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법정 제재를 받는 JTBC 때와 달리 수위 또한 높다. 프로그램의 특성과 이를 진행하는 MC들의 역량 덕분에 수위가 높아도 말초적인 자극성과는 거리가 멀다.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차마 방송이라 쉬쉬하던 이야기’를 확 터트려주어 시원한 ‘사이다 맛’에 가깝다고 할까.
사귀기 전에 관계를 맺는다는 ‘선섹후사’라는 연애 트렌드가 나오며 기존의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자만추(자고 나서 만남 추구)란 뜻이 되었다는 시대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 10대들도 돌기형을 제외하곤 콘돔을 구입할 수 있다는 매우 공익적(?)인 정보까지 다루는 범위도 광범위하다. 고수위는 물론 일상에서 쓰는 욕설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게 딱 거슬리지 않는 상황에 시의적절하게 쓰이는 편. 누가 봐도 확실한 그린라이트(호감 표시)를 알아채지 못하고 사연을 보낸 이에게 “아니, 이걸 처묻네?”라고 지르고, 남자친구의 립밤만을 빼앗아 쓰는 ‘여사친’에게 “아이, 썅X이네”라고 지르는 식이다. 물론 욕은 자제하는 게 좋지만 이런 정도의 상황이라면 그 어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확 와 닿는 느낌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능해진 웃음도 있다. 이를테면 기존 마녀사냥에서 사연자의 상황을 재연할 때 “자기야, 왜 그래?”라는 말과 함께 45도 각도로 뒤를 돌아보며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섹드립의 대가’ 신동엽이 돌아온 ‘마녀사냥’에선 MZ세대를 대표하는 비비, 코드 쿤스트에 밀려 ‘19금 고인물’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그렇다. 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자유분방하지만 그만큼 적당히 주책맞은 느낌을 주는 신동엽을 여기저기서 놀리는 모습이나 50대인 신동엽과 40대인 김이나가 요즘 청춘들의 연애 트렌드에 새삼 놀라는 모습 등 세대 간의 신선한 충돌이 빚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이가 든 시청자들도 여러 모로 신선한 느낌이 드는 건 마찬가지일 것. 기존의 마녀사냥을 열심히 보며 키득거리던 30대의 나도 지금 40대가 되어 보는 마녀사냥은 또 다른 느낌이니까.
MC들과 게스트 출연자 외에 실제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마녀부스’에서 만나는 ‘현역들’의 이야기도 쏠쏠하다. 신동엽은 물론 ‘여자 신동엽’이라 불리는 김이나, ‘노빠꾸’ 막내인 비비도 감탄하게 만드는 청춘들의 생생한 멘트를 듣다 보면 7년 전의 청춘들과는 또 많이 달라졌구나 놀라게 된다. 여러모로 세대 간의 간극을 줄이는 간접 경험이 가능한 ‘마녀사냥’. 이 정도면 시대 흐름을 잘 파악하고 현명하게 안착한 듯 싶다. 곧 “자기야, 왜 그래?” 같은 홈런 장면도 나올 수 있을 듯.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정수진의 계정공유]
'신병', 군대 드라마가 이렇게 재밌고 쫀쫀하다고?!
· [정수진의 계정공유]
'메리 퀴어'와 '남의 연애',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어요
· [정수진의 계정공유]
궁금증이 계속 치솟는 독특한 드라마 '환혼'
· [정수진의 계정공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당연하지만 귀한 보편적 가치들
· [정수진의 계정공유]
뭐지, 이 신박한 '돌아이' 청춘물은? '최종병기 앨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