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 이사회 의장이 1000억 원대 사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재판을 진행 중인 가운데, 최근 해외에서 비슷한 사안으로 진행된 재판의 결론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 전 의장 측에 유리한 결론이 내려지면서 국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전 의장은 2018년 10월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에게 빗썸 인수를 제안하면서 이른바 ‘빗썸코인’(BXA토큰)을 발행해 빗썸에 상장하겠다고 속여 계약금 명목으로 약 1억 달러(1340억 원)를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의 관건은 BXA토큰과 빗썸 혹은 빗썸의 실질적 대주주인 이 전 의장의 연관성이다. 검찰은 이 전 의장이 BXA토큰 발행과 판매 등에 관여했다고 보는 반면, 이 전 의장 측은 김 회장 측이 BXA토큰을 단독으로 판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4차 공판에는 빗썸코리아 법무팀장이었던 최 아무개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공판 내용에 따르면 최 씨는 이 전 의장 측에서 김 회장과의 빗썸 매매 계약 체결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이날 검찰은 증인 심문에서 최 씨에게 “BXA토큰은 코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당국 등 상황 상 문제로 어렵고, 금융당국이 가장 크게 보는 부분이 BTHMB(의 지배구조) 문제라고 김 회장 측에 전달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했다. 이에 최 씨는 “당국에서 (빗썸 인수) 자금 준비가 완료돼 경영권이 완전히 확보된 상태냐고 물어봤기에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또 “만약 김병건 회장이 잔금 지급을 완료했더라면 BXA토큰이 상장했을 가능성이 있었느냐”고 질문했다. 최 씨는 “BXA토큰은 국내 판매 및 불완전판매 등이 문제였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김 회장 측이 사전에 임의로 중간백서를 발행해 BXA토큰을 판매하지 않았더라면 BXA토큰이 상장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이다.
BTHMB는 이 전 의장과 김 회장이 각각 지분 49.997%, 49.991%를 보유한 싱가포르 법인이다. 당초 김 회장은 이를 통해 빗썸홀딩스 지분 51%를 인수할 계획이었다. 인수 과정에서 BTHMB는 BXA토큰을 발행했으나 잔금 납부 최종 기한이던 2019년 9월 30일까지 잔금을 납입하지 못하면서 김 회장의 빗썸 인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그 결과 300억 원 규모로 판매된 BXA토큰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여러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이날 공판에서 이 전 의장 측 변호인은 지난주 선고된 싱가포르 법원의 판결문을 새로운 증거로 제출했다. 변호인에 따르면 BTHMB는 국내에서 진행되는 재판과 별개로 2019년 6월 싱가포르 법원에 김 회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BTHMB 소유의 코인을 무단으로 판매하고 수령한 대금을 BTHMB에게 반환하라는 내용이다.
이에 싱가포르 법원은 지난 26일 김 회장에게 패소 판결을 내리고 “김 회장이 BTHMB 소유 코인의 판매 대금을 BTHMB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김 회장이 BTHMB의 코인을 무단으로 판매해 대금을 편취했다고 판단한 것. 이 재판에서 김 회장은 자신이 재무적 투자자 모집을 위한 코인 외에 별도로 전체 발행 코인 중 20%를 지급 받아 보유했고, 자신이 보유한 코인을 판매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싱가포르 법원의 판결로 이 의장은 국내에서 진행 중인 재판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재판에서 제기된 김 회장 측 주장을 뒤집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국내 재판에서 “이 전 의장이 BXA토큰을 상장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인수 대금 중 일부만 지급하면 나머지 대금은 코인을 발행·판매해 지급하면 된다’고 기망했다”며 자신은 본인에게 배정된 BXA토큰을 합법적으로 판매했다고 주장해왔다.
이 전 의장 측 변호인은 “싱가포르 재판에서 김 회장은 자신이 판매한 BXA토큰은 자신이 무상으로 배정 받은 것이므로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배척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의 증인 최 씨는 “김 회장은 본 사건(국내 재판)에 대해서는 대리인을 통해 신속한 심리와 선고를 재촉한 반면, 싱가포르 재판에서는 지속적으로 심리와 선고를 보류할 것을 요청해 모순되는 행동이라 생각됐다”고 증언했다.
여다정
기자
yeop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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