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배달은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땡겨요 등 4대 배달플랫폼이 다회용기 사용 활성화에 나섰다. 시범 운영지였던 강남권을 시작으로 1인 가구가 많은 대학가 광진구와 관악구, 서대문구에서도 앞으로는 스테인리스 용기에 담긴 음식을 받아볼 수 있다. 나무젓가락, 일회용 수저 안 받기에 머무르던 ‘배달 일회용품 줄이기’가 한층 진화한 형태다. 다회용기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편의성 확보와 더불어 점주들에게 설득력을 얻는 것이 관건이다. 현장에서는 플라스틱 없는 배달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강남권에서 다회용기 배달 서비스가 본격 시행된 첫날,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8월 29일 서울 강남구 역삼역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 씨는 다회용기 서비스를 두고 “시장이 분명 보인다. 친환경 가치 같은 의미를 떠나 소비자가 편하다. 다회용기의 숨은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식당에서는 7월부터 배달·포장 손님에게 다회용기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기본 값인 플라스틱 용기를 다회용기로 바꿔 주문하는 손님은 아직 많지 않지 않지만 설거지나 분리수거의 번거로움을 줄인 다회용 그릇 서비스에 예상치 못한 호응이 나오고 있다.
#“식사 후 수거해갑니다”…친환경·편의 잡았다
배달 앱 요기요를 통해 인접한 두 식당의 음식을 포장해봤다. 주문 시 ‘용기 선택’ 란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대신 ‘다회용기(식사 후 수거해갑니다)’를 선택했다. 베트남 음식점에서 주문한 볶음면은 스테인리스 밀폐용기에 담겼다. 인근 터키 음식점에서 미리 주문해둔 샐러드도 동일한 다회용기에 포장됐다. 곁들여 먹을 국물과 단무지, 소스 등은 작은 사이즈의 용기에 담겼는데 동그란 그릇은 고무 소재의 뚜껑으로 밀폐됐다. 보온가방이 비닐봉투를 대체했고, 수저와 젓가락도 일회용품이 아닌 식당이나 가정에서 볼 법한 재사용 소재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별도로 세척할 필요 없이 가방 겉면이나 안내 책자에 담긴 QR코드를 찍어 수거 신청을 하면 된다. 이후 다회용기 리턴 서비스를 운영하는 ‘잇그린’이 12시간 이내에 기입된 주소로 방문해 그릇을 수거한다.
현재 다회용기 포장 서비스는 요기요에서도 일부 업체에서만 운영한다. 요기요는 지난해 10월 민간 앱 최초로 다회용기 옵션을 도입해 비교적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배달의민족 등 다른 배달 앱은 다회용기 선택 서비스 개발을 완료하고 8월 29일부터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이는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배달 앱과 서울시가 체결한 업무협약의 일환이다. 현재 서울시와 환경부에서 예산을 지원해 다회용기로 주문할 때 소비자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없다.
배달업계가 다회용기를 도입한 배경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수요가 폭증하면서 덩달아 늘어난 일회용품 사용량이 있다. 2018년부터 시행됐던 식당·카페 등 접객매장 내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2월을 기점으로 한시 중단된 가운데,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 사용이 보편화돼 플라스틱, 비닐 등 폐기물이 증가했다. 여기에 집에서 배달해 먹는 비대면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과도한 포장재 문제가 떠올랐다.
음식 포장으로 발생하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줄이자는 ‘용기내 챌린지’가 일회용기 없는 포장의 가능성을 보여준 뒤 다회용기에 거는 기대가 커졌지만 소비자와 점주가 불편함을 떠안아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랐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용기 수거 서비스의 등장으로 편의에 관한 걱정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평가다.
다회용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또 다른 음식점의 점주는 “플라스틱을 줄이는 데서 오는 만족감도 있겠지만 소비자는 음식을 먹고 난 뒤 소재별로 일일이 분리수거를 하고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수고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소비자 반응도 긍정적이다. 신사역 인근에서 근무하는 이 아무개 씨는 “처음에는 사무실에서 다회용기를 어떻게 사용하나 싶어 서비스 이용이 꺼려졌는데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 한 번 다회용기로 받아본 후 옵션이 있으면 매번 선택한다. 일회용품 포장과 크게 다르지 않고, 한식의 경우 오히려 사무실 안에서 처리하기 난감한 잔반까지 그대로 동봉해 내놓으면 돼서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불편은 해소…비용 부담은 장벽
하지만 역시 문제는 비용이다. 점주 A 씨는 “가격이 (일회용기 대비) 1.5배는 비싸다. 일회용기 값도 치솟았지만 다회용기 가격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수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아직 하나라는 점도 가격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회용기는 일회용기와 마찬가지로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반찬이 많은 한식이나 소스, 국물 등 소포장이 많은 구성일 경우 필요한 용기 개수도 늘어난다. 이 때문에 다회용기를 취급하는 가게 점주들도 주요리만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고 반찬류는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하는 경우가 있다.
비용 대비 다회용기가 기술적으로 미흡한 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점주들은 “스테인리스 그릇들을 겹쳐놓으면 서로 끼어서 잘 빠지지 않는다”거나 “스테인리스 그릇과 플라스틱 뚜껑의 결합부가 잘 맞지 않아 밀봉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용기 제공과 수거를 담당하는 잇그린 측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잇그린 관계자는 “1세대 용기에서 부족했던 부분들을 2세대 용기에서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남구 언주역 인근에서 한식 가게를 운영하는 점주 B 씨는 다회용기 사용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코로나19 시기보다는 한풀 꺾였지만 배달 비중이 여전히 높은데, 포장에 들어가는 부자재값 부담이 커지면 이익도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다. 1인 메뉴는 4가지 밑반찬, 김자반, 공깃밥과 찌개 등으로 구성되는데 단가에 비해 일회용기가 많이 필요해 이 메뉴를 없앴다. 최근 일회용기 값이 치솟은 것도 한몫했다. 주요리를 담는 1인분용 그릇 한 박스는 몇 개월 사이 5만 원에서 8만 원으로 가격이 뛰었다.
한식 1인 구성(위)에는 플라스틱과 비닐류가 낱개로 총 12개, 2인 구성(아래)에는 16개 사용된다. 사진=강은경 기자
B 씨는 “만약 다회용기 포장으로 배달 문화가 바뀐다면 부담이 느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도입할 것 같다. 일회용기를 다회용기로 바꿀 때 비용 부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구성 등까지 이것저것 따져봐야 할 것”이라면서 “여러 지점 중 우리 가게가 가장 배달 비중이 높다. 배달이 하루에 몇 건 정도밖에 없는 지점들은 굳이 수거 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까지 서비스를 늘릴 필요가 없으니 다회용기 서비스가 완전 정착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다회용기 점주를 확보하는 것은 수거업체 잇그린의 과제이기도 하다. 배달 앱을 통해 점주들에게 서비스를 안내하는 한편 별도로 점주들에게 입점을 유도하고 있다. 다회용기 포장 옵션을 적용할 점주들은 잇그린이 제공하는 웹사이트에서 원하는 용기를 필요한 만큼 주기적으로 구매하고, 잇그린은 수거-세척-가게로 반납하는 구조다.
현장에서는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점주들이 다회용기 서비스에 발을 들이게 하는 유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회용기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수요만큼이나 공급 또한 확보돼야 지속 가능하다는 것. 다회용기 옵션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장기적으로 비용을 낮추는 방법 등이 언급된다. 배달 앱 관계자는 “현재 다회용기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기존의 메뉴 카테고리뿐만 아니라 포장 카테고리나 다회용기 카테고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중복 노출된다”고 말했다.
다회용기 서비스는 젊은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을 거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9월에는 관악구, 10월에는 광진구와 서대문구로 서비스 범위가 확장된다.
잇그린 관계자는 “요기요에서 시범 사업을 운영했을 때 한 번 사용해본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다회용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음식물을 처리할 때도 편리해 1인 가구가 많은 지역에서 지속적인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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