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물가가 계속 상승함에 따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신음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3% 수준이다. 4월 4.8%, 5월 5.4%, 6월 6% 등 계속 오르는 추세다. 자영업자 부채도 늘었다. 8월 2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부채 규모는 1억 2000만 원에 이른다.
이에 정부도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6월 28일 올 1분기 코로나19에 따른 방역 조치로 피해가 발생한 소기업·소상공인 94만 개 사업체에 3조 5000억 원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진행 중이다. 보정률은 기존 90%에서 100%로, 분기별 하한액을 5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상향했다. 지급 대상은 올해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거리두기를 이행한 소상공인 등 매출이 감소한 곳이다. 2분기 손실보상금은 9월께 지급될 예정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대미가상인회 관계자는 “이전 정부와 바뀐 게 없다. 최근에 보상 받은 것도 없고, 한번 대상자에서 제외되면 계속 관련 지원을 못 받는 경우도 생긴다. 최근 손실보상금 지급이 지연되는 사례도 여럿 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손실에 대해 획기적으로 보상하겠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과 달리 이전과 크게 바뀐 점이 없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소상공인 살리기’를 강조했다. 대선 기간과 취임 초기에 종종 시장에서 ‘국밥 오찬’을 갖는 등 소상공인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또 문재인 정부의 손실보상 방식을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규제 강도와 피해 정도에 비례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정과제서 사라진 ‘임대료 나눔제’와 ‘특별회계 설치’
윤 정부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살리기 공약은 ‘손실보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거리두기 등으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돕겠다는 취지다. 관련한 공약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코로나19 손실 확실히 보상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긴급구조플랜 즉각 가동 △‘코로나 긴급구조 특별본부’ 등을 설치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활력 되찾음 △임대료 나눔제를 통해 지속적인 경영 안정 지원 추진 등이다.
얼핏 보면 앞선 문재인 정부 정책과 유사해 보이지만, 윤 대통령은 차별화를 강조했다. 대상자를 지정해 일괄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피해 정도에 비례해 차등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5조 원 이상의 특례보증을 통해 저리대출 자금을 확대하고, IMF 외환위기 때와 같이 채무를 조정해 소액 채무는 원금 감면 폭을 70%에서 90%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안도 포함됐다. 또 대통령 직속으로 코로나 긴급구조 특별본부를 설치해 긴급구조 프로그램을 바로 가동하고, 임대료를 임대인, 임차인, 국가가 3분의 1씩 나누어 분담하는 ‘임대료 나눔제’ 도입도 약속했다. 영세 자영업자의 부가세·전기·수도요금 등을 한시적으로 절반 경감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러한 의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까지 이어졌다. 4월 28일 인수위는 ‘과학적 추계 기반의 온전한 손실보상을 위한 코로나19 비상 대응 100일 로드맵’을 발표하며 소상공인·소기업 약 551만 개사가 2019년 대비 2020년과 2021년 손실이 약 54조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당시 안철수 전 인수위원장은 “이런 숫자를 계산해낸 것은 처음이다. 정확한 손실규모 계산은 기본 중 기본인데 왜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았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며 문 정부를 비판했다. 당시 인수위는 소상공인 피해지원금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했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본격적인 정책 방향이 확립된 것은 국정과제를 통해서다. 5월 10일 발표한 국정과제에서 정부는 소상공인 손실보상과 관련해 △온전한 손실보상 △채무조정·금융지원 △민간 주도 상권 회복 △경영 부담 완화를 약속했다. 공약과 유사한 방향이지만, 세부 내용은 상당히 달라졌다. 우선 50조 원 이상의 재정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방안은 ‘손실보상 추진’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구체적인 보상 방안이나 손실보상금 차등지급 방식에 대한 언급도 없다. 심리상담 제공과 디지털 치료제 지원에 대한 내용도 사라졌다.
채무조정과 금융지원을 실시하겠다는 방안은 유사한 수준으로 포함됐다. 다만 세금, 공과금, 임대료, 인건비 등의 세제 지원 확대와 ‘코로나19 피해자에 과감한 금융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은 빠졌다.
특별본부 등 기구 설치도 빠졌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중·장기적 복원력을 회복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정책을 수립하는 대통령 직속 ‘코로나 긴급구조 특별본부’ 설치안이 사라졌다. ‘코로나 극복 및 회복지원 특별회계’ 설치안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 방안들은 정부 주도에서 모두 민간 주도로 기조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국정과제에는 정부 주도 기구 설치안이 빠진 대신에 민간 스스로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상권기획자 제도’ 등의 도입 방안이 새롭게 포함됐다.
임대료를 임대인, 임차인, 국가가 3분의 1씩 나눠 분담하는 ‘임대료 나눔제’ 도입은 사라졌다. 코로나19 종식 후 국가가 임대료 삭감액을 제외한 손실분 전액을 보전해주겠다는 공약도 없다. 대신 ‘임대료, 세금, 공공요금 등 경영 부담 경감’, ‘폐업·재도전 과정 패키지 지원을 통해 재취업·업종전환 촉진’ 등의 설명으로 대체됐다.
#저리대출 등 ‘새출발기금’ 시행하겠다지만…볼멘소리 나오는 이유
소상공인·자영업자 정책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부는 7월 12일 업무보고를 통해 국정과제에서 언급한 추진 과제를 구체화했다. 우선 손실보상과 관련해 1분기 손실보상금 지급에 이어 9월경부터 2분기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또 민간 주도 상권 회복 방안에 대해선 ‘2023년 지역 정체성을 담아낸 읍면동 로컬 브랜드’를 구축하고, 법 개정을 통해 ‘상권기획자 제도’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채무조정과 금융지원에 대해선 고금리를 저금리로 전환하는 대환대출을 실시하고, 9월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소비진작 캠페인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국정과제와 마찬가지로 임대료 나눔제와 경영 부담 완화 등에 대한 내용은 전부 빠졌다.
초저금리 대출 대상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8월 26일 발표된 ‘새출발기금’으로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소상공인의 70.8%가 코로나19로 매출액이 감소하고, 영업제한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저리 특례자금 지원, 채무재조정 등 방안이 담긴 ‘새출발기금’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는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인데,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이후 대출을 90일 이상 연체한 개인사업자와 소상공인은 원금을 최대 80%까지 탕감 받을 수 있다. 취약계층은 90%까지 가능하다. 손실보전금, 재난지원금 등을 수령한 사업자 등은 코로나 피해사실이 입증됐다고 본다.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차주’는 부채에서 재산가액을 뺀 금액(순부채)의 60~80%가 원금 조정된다. 보유 재산에 따라 총부채 대비 감면율은 0~80%가 될 전망이다. 이자와 연체이자는 모두 감면된다. 이자 유예 이용 등 ‘부실우려차주’는 원금 조정은 지원되지 않지만, 9% 초과 고금리분은 9% 금리로 조정된다. 1회만 채무조정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조정한도는 담보 10억 원, 무담보 5억 원으로 총 15억 원이다.
총 30조 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은 윤 정부 주요 공약인 ‘소상공인 살리기’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손실보상금액을 누락 없이 피해 정도에 비례해 차등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담은 정책이다. 금융위원회 역시 새출발기금 추진 배경으로 국정과제인 ‘온전한 손실보상’을 명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나오는 등 그간의 손실을 보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선애 소상공인연합회 홍보과장은 “전반적으로 이전 정권과 크게 차이는 없고, 세심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소급적용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지원을 하다 보니 이전 지원에서 제외됐던 분들은 계속 제외되는 일이 생긴다. 이 부분이 아직 해결이 안 됐다. 새출발기금도 손실보전금을 수령한 사업자가 대상인데, 여기서 배제된 사람들은 이후 대출과 금융 조정 등 향후 모든 정책에서도 배제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출 감면이 아니라 직접적인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지현 공간대여협동조합 이사장은 “사실 지금 당장 필요한 부분은 자금 지원이다. 초저금리 대출 등의 제도는 지원 대상이 안 되는 분들이 너무 많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제도가 많아 보이더라도 현장에서는 적용사례가 굉장히 적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자금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민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 대표 역시 “정부에서 말하는 피해 자영업 대상과 보상방안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들어 원금을 감면 받으려면 3개월 이상 대출을 연체해야 하는데, 그 정도라면 아예 막다른 길에 다다른 상황이다. 대부분 자영업자들은 지속되는 코로나와 높은 물가·인건비 등으로 가게를 운영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대출원금 감면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사업장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지원이 너무 부족하다. 인건비 일부 지원 등 현재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업주들이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전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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