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와 서울시가 보존 중심이었던 도시재생 사업 기조를 ‘개발 중심’으로 바꾸면서 동력을 잃은 기존 사업지에서 주민 반발이 속출하고 있다. 2020년 선정된 5단계 서울형 도시재생활성화 지역들은 사업이 사실상 멈춰선 상태다. 지난해 현장지원센터가 개소된 이 지역들은 비교적 신규 대상지에 해당한다. 절차대로라면 전체 사업기간 5년 중 2년 차인 올해엔 사업구상안을 토대로 계획을 수립하고 고시해야 한다.
하지만 5단계 지역 곳곳에서 이미 현장센터가 문을 닫거나 사업이 잠정 중단됐다. 주민들은 서울시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을 멈춰 세우는 방식도 불합리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주민들은 서울시가 현장센터의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지 않거나 용역업체와 재계약하지 않는 방식 등으로 사업 이탈을 유도한다고 주장했다.
#재계약 미루고 회피 ‘고사작전’ 나섰나
금천구 독산2동 1035번지 일대는 최근 활성화계획 수립을 맡은 용역업체와 계약이 종료됐다. 활성화계획 및 공동체지원 용역은 설계안을 그리는 도시재생사업의 핵심 절차 중 하나다. 용역업체는 현장지원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사업계획을 구상, 수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올해 3월까지였던 계약이 밀리고 밀린 끝에 4월 말 코디네이터들의 근무가 중단됐다. 도시재생코디네이터는 도시의 경제·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재생사업의 계획을 세우고 운영 기획과 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독산2동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관계자는 “1년짜리 용역 계약 종료를 앞두고 서울시에서 계속 (재계약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업체에서 한 달 정도 더 업무를 보며 기다렸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자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 현재 활성화계획 용역이 멈췄고 2차 계약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독산2동 현장지원센터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시설 임대료가 연말 분까지 지급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산2동과 함께 5단계 대상지로 선정됐던 △중구 신당5동 144-11일대 △양천구 신월1동 799일대 △마포구 합정동 369일대 등도 비슷한 행보를 걸었다. 합정동의 경우 작년 말 센터가 문을 닫았고 신당5동과 신월1동도 도시재생 사업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중랑구 망우본동 182-34일대까지 총 5곳으로 시작했던 5단계 서울형 도시재생활성화사업이 2년도 안 돼 제동이 걸린 것이다.
#기존 ‘도시재생’에 마음 식었는데…가이드라인·소통 부재
현재 코디네이터들이 떠난 독산2동 현장지원센터에는 주민들과 구청에서 파견된 사무국장만 남았다. 120여 명의 주민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센터에서 매달 정례회의를 열거나 격주로 주민소통 모임을 갖고 있다. 올여름 쏟아진 폭우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피해 조사에 나서는 등 처음 서울시가 강조했던 주민 역량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이야기다.
서울시가 이 지역에 5년간 마중물 사업비 100억 원 지원을 결정한 배경에도 이 같은 지역적 특성이 있다. 5단계 대상지들은 공모 이후 현장실사, 발표평가 등 경합을 거쳐 선정됐다. 당시 서울시는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공적인 사업추진에 대한 구의 의지를 사업선정 사유로 들며 “재생 지역 내 위치한 초등학교와 연계한 재생사업 모델 제시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의 활성화용역이 중단되고 승인권한을 쥔 서울시의 의지가 꺾인 상황에서 사업은 실질적으로 진전이 어렵다. 초등학교 연계 돌봄사업, 생활SOC 조성 등을 포함한 계획은 원래 예정된 절차와 달리 서울시 도시재정비위원회 승인은커녕 사전자문도 받지 못한 상태다. 이 일대는 면적 10만 3000㎡ 안에 561명이 재학 중인 독산초등학교와 어린이집 5곳이 밀집했다.
이 지역은 노후저층주거지역으로 주민커뮤니티시설 등과 같은 생활 SOC(Social Overhead Capital·사회간접자본) 부족, 협소한 골목길로 인한 주차 문제, 초등학교 통학 시 안전 문제가 계속 제기된 곳이다. 아동 돌봄 공간과 마을 노인정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도시재생 사업에 발을 들였지만 갑작스럽게 사업 진행마저 불확실해지자 주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혜민 독산2동 도시재생 주민협의체 총무는 “아이를 둔 가구와 노년층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생활 SOC 확보가 필수적이다. 조부모와 같이 살거나 조부모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많은 지역적 특성도 있다. 키움센터 등의 돌봄 시설이 있어야 하는 조건인데 부지가 없다는 이유로 못 만들었고 제대로 된 노인정도 없다”며 “등굣길에 차량 통행이 많아 안심 등굣길 지정 등 안전 문제도 지속적으로 논의해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기존 대상지를 다루는 서울시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확한 입장 표명이나 소통 노력 없이 대상지 스스로 포기하게끔 시간을 지체하거나 1년 단위 재계약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등 대응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사업 관계자는 “서울시 관계자로부터 공식 자료에 사용된 ‘마을공동체’에 포함된 ‘마을’이라는 표현이 ‘크리티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도시재생사업의 마을, 주민이라는 개념에 정치적 의미를 덧씌우는 시도다. 도시재생사업은 물리적인 성격도 있지만 마을의 현안을 다루는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의미도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도시재생사업 공모 사전 단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협의체를 만들고 역량을 입증해 보이도록 했다. 기존 정책에서 수정할 부분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도 없이 이런 식으로 사업을 종료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독산2동은 도시재생사업이 폐지 수순을 밟더라도 주민 커뮤니티 공간, 육아 돌봄 공간, 경로당 등 최소한의 시설은 확보하도록 대응할 예정이다. 다음 주 초 서울시를 방문할 계획도 세웠다.
서울시 주거환경개선과 관계자는 “사업 중단이 아니다. 협의 진행 중”이라며 “현재 재구조화를 진행하고 있다. 독산2동을 포함해 5단계 지역들 모두 재구조화 이후 용역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시장(市長)이 바뀌었다고 정비사업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정이 바뀔 때마다 정비 중심에서 보존 중심으로, 다시 정비 중심으로 일괄적으로 기조가 바뀌는 것은 부적절하다. 정비사업 방향성을 정치가 아니라 전문가에 맡겨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 도시 계획 및 개발, 재생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어 정비 혹은 재생이 필요한 곳을 구분해 각 지역에 맞는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
[단독] '정비사업 활성화 수혜' 신탁사 14곳 중 6곳에 국토부 출신 등기 임원 포진
·
규제 심판대 오른 단통법, '성지'도 '호갱'도 사라질까
·
"실적 좋은데 주가는 반토막" 게임사들, 주식시장서 맥 못추는 속사정
·
[대선 공약 점검⑦] 표준수가제, 강아지공장 근절, 전담기관 설립…그 많던 공약이 달랑 한 줄로
·
현대모비스 자회사 신설…하청 리스크 해소일까, 승계 위한 꼼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