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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회사생활] 워라밸을 넘어 이제는 '워라만'

일과 삶을 분리하는 이분법은 위험, 일을 통해 삶의 질 높일 수 있어

2022.08.25(Thu) 08:59:20

[비즈한국]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란 단어가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그림 형제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나선 아이들처럼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이 단어에 휩쓸렸다.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칼 같이 퇴근, 즉 여덟 시간 근무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 내 소중한 삶을 사는 것을 워라밸이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은 회사는 부도덕하고 시대착오적인 회사처럼 비난받는다. 여덟 시간 이상을 회사에 있으면 마치 내 삶에 큰 문제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이 단어에 나는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워라밸은 일이 밀리든 말든, 동료나 상사가 힘들어하건 말건, 회사가 위험하건 말건, 그 어떤 경우라도 일이 내 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로 확대되고 있는 듯하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를 강타하면서 여덟 시간 이상을 회사에 있으면 마치 삶에 큰 문제가 있는 듯한 분위기다. 과연 일과 삶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일까?

 

국민 명함앱이자 직장 내 고민을 토로하는 커뮤니티가 무기인 ‘리멤버(remember)’ 앱에서는 후배들의 이런 모습에 너무나 힘들어하는 상사, 선배대표들의 불만을 어렵지 않게 본다. 물론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아직 좋은 후배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적 삶을 표상하는 듯한 워라밸이, 나의 삶을 유지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일’을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일, 직장생활이 나의 행복과 상관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방해하는 요소로 확대해석 되는 것 같다.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워라밸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노동착취 당하는 생산 근로자를 위해서 생겨난 개념이다. 21세기 한국의 상황과 많이 다른 50년 전 섬나라의 기사에서 단어를 가져온 그분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그리고 조선일보 2020년 6월 27일 기사에 의하면 2018년에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가 ‘악셀 슈프링거 2018’ 시상식에서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찾으려 하지 마라”라고 말했다가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 워라밸에 반대하는 나쁜 기업인으로 낙인찍혔다. 일과 개인 생활의 적절한 조화를 이야기한 것인데, 사람들은 일단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 자체를 거부하는 모양새다. 

 

한국인은 그동안 저녁이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의 노동시간이 OECD 국가 중에서도 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자. 일과 삶은 반대되는 것인가? 일을 하는 동안 나의 삶은 멈추는가? 일은 고통스럽고, 그저 일이 끝난 이후의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인가? 

 

직장인 중에는 글로벌 회사의 근무 환경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런 글로벌 회사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우리보다 철저하게 사적인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구분할까? 오랜 시간 글로벌 회사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점심을 먹으며 일하는 워킹런치가 다반사고, 오히려 점심시간으로 한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한국의 회사 문화를 무척 의아해한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기업은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을 따르기에 국내 기업과 업무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본사나 다른 나라 지사를 방문해보면 점심시간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점심시간에도 미팅은 진행된다. 12시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함께 점심밥을 먹을 사람을 찾아 아침부터 전화를 돌리는 일도 없다. 

 

왜 우리는 유독 워라밸에 집착할까? 나도 모르게 피리 부는 사나이에 이끌려 목적지도 모르는 채 따라 나선 것은 아닌가. 과연 워라밸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까?

 

지인 중에 마케팅을 가르치는 교수가 있다. 그는 워라밸만을 좇는 요즘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이 얼마나 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지 요즘 사람들은 그걸 간과하는 것 같아요.” 그의 요지는 일을 제대로 해내고 조직생활을 잘 해내면 삶의 전반적인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생활 초반에 전반적인 나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기반을 잘 다져야 합니다. 이 기초공사가 이후의 삶을 더 즐겁게 만들 수 있으니 결국 일이 삶의 중요한 기쁨이 되는 것이지요. 이제는 균형이란 말을 버리고 만족감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나 역시 이 말에 공감한다. 일과 삶의 만족감에 대한 그의 말을 들으면서 ‘워라만(워크-라이프 만족)’의 개념을 정립했다. 멘토링을 청하는 젊은 후배들에게 워라만을 설파하며 ‘꼰대짓’을 하고 있다. 

 

조금 물질적으로 표현해보면,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연달아 받으면 연봉과 직급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직은 연봉을 많이 주는 사람에게 더 중요한 직을 맡길 수밖에 없다. 세속적으로 표현하면 ‘본전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더 큰 성과를 이뤄내는 사람들은 거기에 걸맞은 정보와 외부 네트워크가 구축되기 시작한다. 내 삶을 더 근사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즉 일에서 성취와 만족감을 맛보는 사람은 직장 밖의 삶에서도 좀 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일과 삶은 나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는 나의 성장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될 뿐이다. 

 

직장에서의 삶을 폄하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을 버려라. 이제는 ‘워·라·만’이다. 균형이 아니라 더 큰 만족을 찾아 노력해보라.

 

필자 박중근은 조직 관리 전문가로 2018년 캠프코리아를 설립해 기업 교육 및 코칭을 하고 있​다. 나이키코리아, 한국코카콜라, 아디다스코리아에서 상품기획과 마케팅을 하고 닥터마틴 한국 지사장을 역임했다. 부산외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비즈니스 기획,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70년대생이 운다’ ‘오직 90년대생을 위한 이기적인 팀장 사용 설명서’가 있다.​​​​​

박중근 캠프코리아 대표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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