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이 6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한다. 노조는 사용자 측인 금융사뿐만 아니라 정부를 향해서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23일에는 서울을 시작으로 총파업결의대회를 열고 사용자 측과 정부를 향해 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금융노조는 지난 19일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39개 지부 조합원 9만 777명 중 7만 1959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쟁의행위 찬성이 93.4%의 득표율로 가결됐다. 금융노조는 쟁의권 취득을 알리고 9월 16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서울(8월 23일)을 시작으로 대구(8월 25일), 부산(9월 1일)에는 총파업결의대회를 연다. 23일 오후 7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결의대회에는 노조 추산 약 1만 5000명의 조합원이 참가했다.
금융노조는 잇따라 입장을 발표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22일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검토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같은 날 오후 3시에는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쟁의행위 배경과 핵심 요구사항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특히 간담회에선 박홍배 노조위원장이 나서서 “의도나 사실관계와 다른 보도가 나오고 있다”며 요구사항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에 직접 답변했다.
금융노조가 올해 산별 중앙교섭에서 요구한 단체 협약 개정안은 34개다. 이 중 핵심 안건은 △임금 6.1% 인상 △은행 영업점 폐쇄 중단과 적정인력 유지 △정년 연장과 임금 피크제 개선 △주 36시간·4.5일제로 근무 시간 단축 △재택근무 시 사생활 보호와 근로조건 결정 △이사회 참관 등 경영 참여 보장 △성평등, 모성보호 확대 △조합 활동으로 인한 집행유예 이하 처분 시 해고 제한 등이다. 노조 측에 따르면 사용자 측은 3월 31일 1차 실무급 교섭부터 7월 26일 중앙노동위원회의 2차 조정까지 사용자 측은 요구안을 하나도 수용하지 않은 상태다.
특히 귀족노조 논란의 원인인 임금 인상률을 두고 양측의 입장차가 크다. 협상 과정에서 사용자 측은 2차 교섭까지 임금인상률을 제시하지 않다가, 3차 교섭에서 0.9%를 제시했다. ‘1%를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중노위의 조정 회의가 열리자 공공기관 총인건비 인상률을 반영해 1.4%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노조는 22일 간담회에서 “지난 10년간 금융 노동자의 임금인상률 평균이 2%대에 그친다. 10%에 가까운 임금 인상률을 보이는 IT 기업이나 제조업 대기업 등에 비해 과하지 않다”라며 “임금 인상분으로 취약계층에 지원하는 등 500억 원 이상 기부하며 사회 환원에도 힘썼다”라고 호소했다.
쟁의 배경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금융노조 측이 공공성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39개 지부에는 시중은행과 더불어 국책은행, 일부 금융 공기업이 포함돼 있다. 김승태 한국자산관리공사지부 위원장은 “이번 총파업으로 금융의 공공성에 관한 인식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 좋겠다. 금융도 보건이나 의료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공공성이 크다”라며 “순이익을 많이 낸 은행이 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늘려야 하는데 비용을 줄이려고 점포를 줄이고 인건비를 깎는다. 산업 기반이 바로잡혀야 국민이 잘 산다”라고 말했다. 금융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결국 임금 인상, 노동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노조는 은행 점포 폐쇄 중단에 관해 “사용자가 영업점을 폐쇄하기 전 고객 불편 최소화와 금융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 보호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내용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 측이 공공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사항”이라며 “디지털화가 산업의 전환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도 과도하다. 고객이 디지털화에 불가피하게 맞추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정은 대구은행지부 위원장은 “지역은행도 자체적으로 점포를 폐쇄하고 있다. 남아 있는 거점 점포에 가면 하루 순번이 300~500번이 넘어갈 만큼 고객이 몰린다. 사측이 인프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디지털에 주력하니 경영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금융 취약계층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직원에게 돌아간다”라고 역설했다.
주 36시간 4.5일 근무를 두고는 노동 안정성을 근거로 내세웠다. 주5일 근무제는 2002년 금융권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는데, 당시 언론 등이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현재는 안착했다는 것. 김재범 공공정책본부 부위원장은 “주 4.5일제는 교섭에서 꾸준히 요구한 사항이다. 선진국에서도 노동시간을 점점 단축하고 있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이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라며 “금융권에서 도입하면 모든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정부를 향해서도 강하게 날을 세웠다. 정부가 임금 인상 자제 발언,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제시, 예대금리차 제한, 소상공인 채무 원금 감면 등 금융권에 압박을 가하자 ‘관치금융’이라고 반발했다. 금융노조는 “노사자치주의를 위반해 산별교섭을 어렵게 만들고, 과거 보수정권의 ‘방만 프레임’을 가져와 공공기관을 탄압한다”라며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의료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금융 공공기관 노동자도 사명감으로 버티며 헌신해왔는데 이제 와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개혁의 대상으로 내몬다”라고 반박했다.
금융노조는 정부가 잇따른 은행 점포 폐쇄를 방임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사전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이에 따라 노령 고객과 금융 취약계층이 있는 지역이나 수도권 외곽, 구도심의 점포가 사라진다는 거다.
이처럼 금융노조는 금융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총파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총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소비자와 금융 취약계층에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 직원의 동의를 얻는 것도 관건이다.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는 한 은행원은 “일하기 바빠 쟁의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총파업이나 결의대회는 교섭을 위한 보여주기식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라면서도 “현장에 일손이 부족하고, 연봉이 잘 오르지 않는 건 사실이다. 실수령액도 적다. 파업에 동참할지는 아직 모르겠다”라고 털어놨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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