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무리 인품 좋은 사람이어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때론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뻔한 팩트를 알면서도 인정욕구 많은 성격 탓에 미움 받고 싶지 않은 욕망으로 괴로울 때가 많은 1인이다. 그래서 주변에선 ‘너 참 인생 피곤하게 산다’는 말을 들을 때도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에, 관계에 신경 쓰이는 마음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떤 집착이 내 삶을 이리도 피곤하게 만드는 걸까 싶을 때가 있다. 최근에도 피곤할 정도로 마음이 쓰이는 관계가 생겨서 무척 피로감을 느끼던 찰나, 마치 기막힌 우연처럼 보게 된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과거 센 언니 캐릭터로 날렸던 개그우먼 이경실의 ‘호걸언니’다.
‘호걸언니’는 호스트로 개그우먼 이경실이 출연해 주변 친한 개그맨과 개그우먼을 게스트로 모셔와 그들의 개그 활동 여정, 인생에서의 험난했던 순간 등을 편안하고도 유쾌한 토크쇼 형식으로 풀어내는 채널이다. 왕년의 스타답게 출연진 또한 화려한데 이성미, 최양락, 이경규, 조혜련, 김지선, 전유성, 이봉원 등이 출연해 매회 빵빵 터지는 입담과 토크 케미로 현재까지 약 20만 명 정도의 구독자를 모았다.
이날 알고리즘의 신기한 우연으로 보게 된 회차는 이경실의 절친 후배 중 하나인 개그우먼 정선희가 나오는 편이었다. 스토리의 꽤 많은 부분은 정선희가 10여 년 전 비운의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을 때, 그녀 곁을 지키며 삶에 큰 위로가 된 이경실과 정선희가 함께 나눴던 마음의 연대 스토리였다.
뒤돌아보면 눈물 나고 참담했던 순간의 기억들을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유쾌하고 통쾌하게 웃으면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마치 체화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힘겨웠던 시절을 회고하는 이경실, 정선희 이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본인 의지가 아닌, 좋지 않은 일로 안티팬이 많았고, 지금도 꽤 많은 안티팬들 때문에 조심스러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스토리 따윈 관심 없이 자신들을 싸잡아서 욕하고 미워했고, 지금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웃으며 말하는 두 여자. 그런데 버티기 힘든 대중의 미움을 대처하는 방식으로 정선희가 토크 도중 절친 방송인 최화정의 방법을 이야기하는 순간, “아, 이분들은 이런 멋진 발상의 전환으로 미움받는 고통도 다르게 해결하는구나” 싶었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최화정에게 라디오 방송 쉬는 시간 도중, 어떤 아이돌이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미워한다. 그리고 나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나에 대한 오해를 하고, 나에 대한 악플을 단다”는 고민을 전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최화정이 그 특유의 무심하지만 경쾌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게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굴 좋아하기도 해. 그러니까 사람들은 너를 잘 모르면서 덮어놓고 싫어하는 것처럼, 너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잘 모르면서도 그냥 좋아하는 것도 있잖아. (그러니까) 퉁쳐~!”
“모든 무거운 문제를 밝게 희석시켜 주는 장점이 있다”는 절친 최화정의 이 말을 들은 정선희는 이후 힘들 때 마다 이 말을 인생좌우명으로 삼게 됐다고 한다. 정선희 왈, “나도 가끔 참 내가 표독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이면은 모르니 나를 이웃집 언니 같고 포근한 모습으로 그냥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또 진짜 나의 모습을 모르고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함께 공존하는 것.” 그게 인생이란다. 그러니까 퉁치면 그만이다. 그야말로 생각해 보지 못한 발상의 전환이다. 내 후진 면을 모르고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내 진면목을 모르고 미워하는 사람의 존재는 그걸로 퉁치면 된다니! 세상 유쾌한 한 방 같은 위로에 내 마음도 녹았다.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게의 베스트셀러 저서 ‘미움 받을 용기’에 보면, “타인이 나를 인정하든 나를 인정하지 않든 그것의 결정권은 타인에게 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언급한다.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그것은 타인의 과제이다. 타인의 과제임을 인정하고 그 과제를 나로부터 분리해 버리면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 따위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자유로운 인생을 말한다.
혹시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미움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운가? 그 평가는 당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니 살포시 내려놓는 연습을 시작해 보시라. 만약 이 연습조차 힘들다면 최화정의 퉁치는 방식을 개그우먼 정선희처럼 적용해 보면 어떨까. 당신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사람들의 얼굴 대신, 정말 보이고 싶지 않을 만큼 후진 당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걸 모르니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볼 것. 그 얼굴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유 없이 서글퍼지는 마음도, 울컥하는 분노도 조금은 잠재워질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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