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트업은 혁신, 평등한 업무환경, 빠른 성장 등 대체로 긍정적인 상징이 된다. 하지만 빛의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다. 스타트업의 성공 신화 뒤에는 수많은 실패의 스토리가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빠른 성장만 추구하다가 사업을 접는 경우도 있고, 경영진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서 팀원들이 번아웃과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기업이나 오래된 강소 기업에 비해 체계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직원을 도와주지 못하는 일이 많다.
회사가 잘 경영되고 내적으로 튼실하게 운영되고 있더라도 외부 요인에 의해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올해 5월 암호화폐 루나·테라의 폭락으로 암호화폐 관련 유럽의 핀테크 업체들도 휘청거렸다. 이번 칼럼에서는 유럽에서 들려온 스타트업계의 어두운 소식을 살펴본다.
#베를린 핀테크 ‘누리’ 파산 신청
최근 스타트업과 핀테크 업계를 놀라게 한 것은 베를린 기반의 핀테크 스타트업 누리(NURI)의 파산 신청 소식이다. 누리는 2015년에 ‘비트왈라(Bitwala)’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2021년 누리로 이름을 바꿨다. 누리는 40만 명 이상의 고객에게 암호화폐, 디지털 자산 및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은행 계좌를 제공한다. 누리 측에 따르면, 2022년 4월 말 기준 누리의 총자산 규모는 약 5억 유로(6740억 원)에 이른다.
누리의 미국 비즈니스 파트너인 암호화폐 대출업체 셀시우스 네트워크는 지난 7월 파산을 신청했다. 셀시우스는 세계 최대 규모의 탈중앙화 금융(Defi) 대출 플랫폼이다. 소비자가 가상자산을 맡기면 이를 담보로 달러 등 법정화폐를 대출해준다. 누리는 비트코인 이자 계좌를 통해 고객과 셀시우스 사이의 투자 중개 역할을 했다.
지난 5월 누리는 총 200명의 직원 중 45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누리의 CEO 크리스티나 발커-마이어(Kristina Walcker-Mayer)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불안정성이 커짐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후 누리는 8월 10일 독일 베를린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누리는 파산 절차를 통해 장기 구조 조정 계획을 세우고, 일시적인 파산 절차가 장기 구조 조정 계획의 기반을 제공할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누리는 파산 신청을 하게 되었다는 발표와 함께 “고객에게 가장 안전한 경로를 보장하기 위해 파산 신청을 하게 되었다. 현재와 미래의 고객에게 계속해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번 파산 신청으로 기존 고객이 돈을 인출하지 못하거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리는 은행 라이선스를 빌려주어 은행이 아닌 기업도 핀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돕는 솔라리스(Solaris)를 통해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솔라리스는 독일의 연방금융감독청(BaFin)이 승인하고 감독하는 유럽 은행으로, 솔라리스 은행 계좌의 모든 자금은 독일예금보증제도(DGS)에 따라 최대 10만 유로(1억 3400만 원)까지 보호된다.
2021년은 핀테크 스타트업이 그야말로 ‘대세’였다. 올해는 모두가 핀테크, 특히 암호화폐 관련 시장을 암울하게 바라본다. 시장환경 악화로 후속 투자 유치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들은 이제 길고 긴 보릿고개가 시작됐다.
#번아웃, 차별⋯다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원들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창업자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에게 큰 스트레스이다. 번아웃은 혁신 기술에 대한 비전, 희망찬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어려움이다. 유럽 스타트업 전문 매체 ‘시프티드(sifted)’가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무려 84.5%가 번아웃을 호소했다. 또 스타트업 종사자 87%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라고 답했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회사를 빨리 성장시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매니저의 관리 경험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얘기한다. 경험 없는 경영진은 주로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겠다”라는 의지를 불태운다. 결국 이 압박은 함께 회사를 만들어가는 팀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설문조사에서 22%에 달하는 사람들이 차별이나 왕따 등의 괴롭힘을 경험했다고도 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스타트업에 ‘여성혐오’와 ‘형제애 문화(brotherhood)’가 만연해 회사에서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고 대답했다. 네트워킹이 매우 중요한 스타트업 문화에서 사람들과의 연결과 관계가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간다는 것. 한 응답자는 “남자들과 함께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새로운 프로젝트 참여와 승진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HR 소프트웨어 기업인 브리드(Breathe)의 조사에 따르면, ‘유독한(toxic)’ 직장 문화로 인해 영국 경제는 연간 202억 파운드(31조 원)의 손실을 보고, 직원의 27%는 그런 문화 때문에 퇴사한다. 직원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매우 큰 손실이다.
지금까지 스타트업은 ‘고객이 왕’, ‘시장이 원하는 제품’이라는 슬로건 아래 빠른 성장을 위한 제품 개발에 매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품을 만들 때면 늘 고객경험(CX, Customer Experience)을 이야기하고, 그에 관한 특별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이 대세였다. 그 사이 성장 이면에 자리 잡은 유해한 업무환경은 개인, 회사, 사회 그 누구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최근 유럽 스타트업계에서는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훌륭한 인재를 유치하고 채용하는 것은 스타트업이 매일 당면하는 큰 어려움이다. 이와 더불어 인재를 채용한 후에도 이들을 잃지 않으려는 리텐션(retention, 보유) 노하우에 대한 관심도 높다.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진리는 스타트업에 어떤 화두를 던져줄까? 제품과 서비스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것만이 아니라 경영과 직장문화의 혁신도 스타트업이 선도해 나갈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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