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 강남구 삼성로 한복판에는 1994년부터 ‘공사 중’인 곳이 있다. 그 면적만 무려 3026.9㎡(916평)에 이른다. 약 28년째 방치된 이 땅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봉은사 옆에 위치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93년 주식회사 신성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76번지 일대에 지하 6층~지상 19층의 운봉빌딩 등 건물 두 동을 짓기로 했다. 인접한 봉은사는 환경오염과 사찰 경관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봉은사는 ‘공사금지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1994년 법원이 공사중단 명령을 내리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다. 당시 대법원은 “사찰과 불과 6m 거리를 둔 채 사찰 경내 전체를 내려볼 수 있도록 높이 87.5m 고층으로 신축하면 사찰의 일조가 침해된다. 또 전체 경관과 조화되지 않고 사찰 경관이 훼손되며 조망이 침해된다”고 판시하며 조망 침해·경관 훼손·종교활동 침해 등을 모두 인정했다.
이후 해당 부지는 방치됐지만 다시 갈등이 불거졌다. 토지를 소유한 운봉장학문화재단이 2014년 운봉빌딩과 스포츠센터 개발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재단은 강남구청에 건축허가 설계변경을 신청했다. 당초 19층이라는 높이가 봉은사의 일조권 등을 침해한다고 봤기 때문에, 층수를 낮춰 각각 지하 5층~지상 6층, 지하 6층~지상 14층 건물로 설계를 변경한 것이다.
이번에도 봉은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봉은사는 “운봉빌딩이 신축되면 전통사찰 봉은사의 문화환경 및 수행환경을 침해하게 된다. 또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를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국이 되어 사생활을 침해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심한 위압감을 주게 될 것”이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결국 강남구청 허가를 받은 운봉빌딩 건축은 2018년 재개됐지만, 공사에 진척이 없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내부 사정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예 중단된 상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설계변경을 허가한 강남구청도 공사 지연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개발을 맡은 B 건설사는 담당자 부재를 이유로 공사 지연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토지 소유자인 운봉장학문화재단 역시 이사장 부재를 이유로 이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문제는 공사 재개 이후에도 현장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는 것이다. 코엑스와 봉은사 등이 위치한 강남구 중심 사거리에 공사장이 28년째 방치돼 있는 것이다. 주변 경관도 좋지 않다. 특히 공사장 가림벽은 봉은사 산책로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봉은사 산책로에서 만난 주민 A 씨는 “산책 겸 봉은사에 자주 오는데 항상 가림막이 거슬렸다. 왜 사찰에 이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했다. 봉은사에서 만난 한 스님은 “보기에 좋지는 않다. 오는 분들마다 물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공사장 가림벽만을 볼 수 있었다. 공사장 현장 역시 마찬가지. 가림막은 오래돼 글자가 지워졌고, 내부에 인부들이나 건축 중인 건물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28년간 강남의 금싸라기 땅이 아무런 대안 없이 공사장 그대로 방치되는 상황이다. 운봉장학문화재단이 소유한 이 부지의 공시지가는 1994년 51억 6241만 2000원에서 2022년 482억 4744만 8000원으로 835%나 상승했다. 그러나 관할 자치구인 강남구청도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조계종 봉은사 관계자는 “현재 별도로 입장을 밝힐 내용은 없다. 왜 다시 공사가 중단됐는지는 모른다. 현재 봉은사에서 소송 등 대응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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