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증권가에서는 A 증권사 직원이 조폭 자금으로 투자를 진행했다가 손실을 내 조폭들에게 치아가 뽑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 직원은 부동산업계에서는 소위 ‘신’이라고 불렸는데,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손실을 보았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는데, 사실이야 어떻든 ‘신뢰가 생명’이라는 금융계에서 조폭과 공생해 이익을 낸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존 리 전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와 강방천 전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의 차명 투자 의혹은 또 어떤가. 리 전 대표는 최근 아내 명의로 지인이 설립한 부동산 관련 P2P 업체에 투자하고, 이 업체를 메리츠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에 편입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리 전 대표는 사임했다. 강 전 회장은 자신과 딸이 대주주로 있는 공유 오피스 업체에 본인의 자금을 대여해준 뒤 법인 명의로 자산을 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강 전 회장도 논란이 불거지리라는 것을 예상했던 것인지 은퇴를 선언했다. 누구보다 ‘가치투자’로 열정을 불사르던 이들에게 왜 이런 의혹이 발생한 것일까.
최근 B 증권사 전 대표 B씨와 리서치센터 연구원 C씨 등이 선행매매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 B 전 대표는 C씨에게 “공표할 기업분석보고서 관련 종목을 미리 알려달라”고 한 뒤 해당 주식을 매수하고 리포트 공표 후 이를 매도하는 방법으로 총 47개 종목을 매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를 통해 1억 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라며 “선행매매를 암암리에 하는 사람들 많다”고 웃어넘겼다. 직장인 A씨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불법적이지 않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사람들의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이야 어떻든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수익을 냈다면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그는 “그런 행위가 문제가 된다면 법으로 규제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만약 리 전 대표와 강 전 회장의 차명 투자로 누군가가 손실을 보았다면 투자자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아마도 투자 손실을 입힌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이 아무런 문제 없이 투자자들에 손실이나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끝났을 것이다.
우리는 건강한 자본주의,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금융계 안팎에서 CSR, ESG 등을 강조하는 이유도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세상은 인간의 이기심 덕분에 돌아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인간은 타고나길 ‘자기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설적인 투자자 존 템플턴도 ‘영혼이 있는 투자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높은 도덕성으로 월가에서 가장 존경받는 투자 스승이다.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해라’, ‘실수에서 배워라’ 등 존 템플턴이 말하는 투자 원칙이란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생각하는 원칙들이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보다 높은 차원의 도덕적이며 인격적인 성공을 강조했다. 즉, 기계적으로 계산된 높은 투자수익보다 여러 의미의 넉넉한 삶을 살아가기를 지향했다.
과거 골프광으로 알려졌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첫 티샷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없던 것으로 하고 다시 치는 ‘멀리건’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골프에서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매너와 에티켓이 나쁘면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비난받는다. 골프처럼 인성이 드러나는 스포츠도 없다는 얘기다. 그만큼 골프 경기에서는 규칙 위반에 대한 제재가 매우 엄격하다. 조금이라도 신뢰에 금이 갈 만한 행위에 대해선 앞뒤 봐줄 것도 없이 불이익을 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옛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고 했듯이 경영진 스스로 과거보다 훨씬 높은 도덕적 잣대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말로만 투명성과 룰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은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아무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는 리 전 대표의 말대로 앞으로의 인생에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세아 금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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