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스타벅스가 내놓은 여름 시즌 굿즈(MD, Merchandise)에서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돼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미션음료 3잔을 포함한 총 17잔의 스타벅스 음료 제품을 주문하면 받을 수 있는 증정품인 ‘서머 캐리백’에서 대표적인 발암 화학물질인 ‘폼알데하이드’가 검출된 것.
문제가 된 서머 캐리백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스타벅스가 직접 제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커피 등 각종 식음료를 판매하는 기업에서 터진 발암물질 사건은 회사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것을 누가 만들었든 관리감독의 책임도 당연히 피할 수 없다. 처음 문제가 제기된 이후 스타벅스코리아의 초기 대응 역시 매우 안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스타벅스코리아 입장에서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다. 제작 납품을 맡은 하청 기업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타벅스 시즌 굿즈 정도의 수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중국 이외의 국가는 생각하기 어렵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굿즈 생산 검수를 보다 철저히 하고, 돌아선 소비자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각종 세심한 보상책을 내놓는 것으로 비판을 잠재우는 분위기다.
#MOQ와 SKU
폼알데하이드가 어떤 경로로 검출됐느냐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진짜 문제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자.
사람들은 왜 스타벅스 MD를 가지고 싶어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은 스타벅스 MD의 상품성에서 출발한다. 그간 스타벅스 MD는 사은품 혹은 판촉물 이상의 만듦새와 디자인을 인정받았다. 그것은 스타벅스의 브랜딩 역량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다른 원인도 있다. 바로 생산에 필요한 최소 수량 자체가 많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스타벅스의 굿즈 마케팅을 따라한다. 하지만 흉내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비즈니스 용어로 최소 주문 수량을 MOQ(Minimum Order Quantity)라고 한다. MOQ가 높을수록 가격협상력이 높아져 생산단가가 내려가기 때문에, 같은 비용으로 더욱 질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 스타벅스코리아에서 생산하는 굿즈의 MOQ는 최소 수만 개에서 최대 100만 개 이상에 달한다. 가령 스타벅스코리아의 굿즈를 상징하는 품목은 2005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스타벅스 플래너(다이어리)’다. 2014년에는 이탈리아 수첩 브랜드 ‘몰스킨’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그 가치를 더욱 높였다. 이후 몰스킨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스타벅스코리아의 다이어리 제조 파트너다.
그런데 스타벅스코리아는 현재 제조업체를 몰스킨에서 다른 곳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현재 스타벅스코리아에서 주문하는 플래너의 연간 생산량은 150만 개에 육박한다. 이 정도 물량을 안정적인 품질로 납품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2018년에 몰스킨에서 팬톤으로 파트너를 변경했다가 제본 불량 등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몰스킨은 유럽 명품 이미지가 강하지만, 제품 전량을 중국에서 생산하며 대량 생산 능력을 갖춘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게다가 몰스킨에게 스타벅스코리아는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객이다. 실제로 몰스킨 CEO가 직접 나서서 스타벅스코리아를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비즈니스 용어로 SKU(Stock Keeping Unit)가 있다. 개별 상품의 숫자를 의미하는 용어로, SKU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진열 관리해야 하는 품목이 늘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다이어리 MD 마케팅이 매년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스타벅스코리아는 최근 수년간 다양한 MD 개발에 몰두했다. 실행 시즌도 겨울 한정에서 여름까지 확장하고, 봄과 가을에도 수많은 새 시즌 MD를 쏟아냈다. 쉽게 말해 SKU가 크게 늘어난 것.
올해 나온 것만 세어봐도 무서울 정도다. △1월 그린스토리 MD를 시작으로, 코어 MD △2월 밸런타인 MD, 케이스티파이 콜라보 상품, 스프링 프로모션 MD △3월 삼일절, 코어 2차, 화이트데이, 체리블라섬, 제주해녀 시리즈 △4월 여름 MD, 베이스볼 파크 MD, 코어 3차 △5월 서머1 액세서리, 프리퀀시 프렌즈, 서머 트래블 △6월 액티브 서머 데이 & 나잇 MD, 콜드컵 4종, 서머1 페이즈2 MD △7월 프리퀀시 프렌즈 MD, 라인프렌즈 MD, 투고그린 MD, 서머2 프로모션 MD, 5스낵 & 3웨이 파우치 MD,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MD △8월 광복절 MD까지. 매장 및 지역 한정 MD를 제외하고도 이렇게나 많다.
벚꽃도 채 지지 않은 4월에 여름 MD를 선보일 정도로 이렇게 많은 굿즈를 디자인하고 검수하고 납품받는 과정에서 상품성은 필연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품성 하락은 다이어리의 종이 질이 예전 같지 않다는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부터 서서히 시작된다. 폼알데하이드 사건 역시 이러한 상품성 저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벅스의 연간 출시 MD의 SKU는 2012년 40종에서 2020년 500종으로 무려 8배가 늘었다. 올해는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쯤 되면 다이소가 부럽지 않다.
#한정 없이 쏟아지는 한정판이 주는 피로감
이렇게 늘어난 스타벅스 MD가 전부 잘 팔린다면 비즈니스 관점에서 문제될 건 별로 없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스타벅스 굿즈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감성’과 ‘한정판’ 두 단어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제는 분기로도 모자라 매달 수십 종의 한정판 MD를 내놓으면서 ‘한정판’의 의미는 퇴색하고 소비자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자연스럽게 소비자 입장에서는 디자인이 떨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MD는 구매를 미루게 된다. 어차피 그다음 한정판 MD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나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재고 증가로 이어진다. 한 스타벅스 매장 근무자는 최근 MD 종류가 너무 많아져 매장 내 진열조차 어려울 정도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규모가 작은 매장의 경우 창고에 보관할 곳조차 마땅치 않다는 설명이다. 빨리 안 팔리면 본사에서 그다음 신규 MD를 보내오기 때문이다.
보통 기업 같으면 할인을 해서라도 재고를 해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스타벅스코리아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스타벅스는 정책상 대외적으로 공식 할인을 하지 않는다. 연초에 하는 럭키백 행사로도 한계가 있다. 결국 임직원을 상대로 한 잦은 내부 바자회 등을 통해 10분의 1 가격에 쉬쉬하며 재고를 털어낸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SKU 증가는 비단 MD에만 그치지 않는다. 커피 다음으로 많은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푸드’도 사정은 마찬가지. 커피와 함께 곁들이는 샌드위치, 베이글과 같은 ‘뉴욕 감성’은 이미 버린 지 오래다. 요즘 스타벅스 푸드 코너는 ‘파리바게뜨’와 같은 베이커리를 넘어 아예 편의점을 방불케 한다. 포장에서 스타벅스 로고만 가리면 어디에서 파는 물건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디자인도 제각각이다. 실제로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에선 “스타벅스가 무슨 편의점이냐”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올 정도다. 지난달 불거진 부실 샌드위치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종류가 너무 많다보니 제대로 된 품질관리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스타벅스코리아는 장기화된 팬데믹을 구실로 온라인에 판로를 열었다. 관계사인 쓱닷컴에 스타벅스관을 열고 각종 MD를 팔기 시작한 것. 여기에 네이버 쇼핑 브랜드관, 카카오톡 선물하기, 전용 앱 내 선물하기 기능 등 판로도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매장에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던 각종 MD를 온라인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으니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아예 온라인 전용 MD까지 선보이는 등 꽤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한정된 시간 동안 공간을 판매하는 것이 본질인 스타벅스로서는 MD를 통한 고객 유인 효과를 포기한 양면적인 결정이기도 했다. 그만큼 스타벅스 MD의 한정성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브랜딩 무시한 외형 성장에 올인한 결과
스타벅스코리아는 왜 그토록 MD를 미친듯이 많이 만들었을까. 그것은 스타벅스코리아에게 굿즈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겨울과 여름 시즌 두 달간 진행되는 ‘17잔 마케팅’의 매출 견인 효과는 무시무시하다. 스타벅스코리아가 그간 월별 매출을 공개한 적은 없지만, 업계에서는 행사를 하는 달과 그렇지 않은 달의 매출 차이가 약 20~30% 나는 것으로 본다.
MD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는 ‘오픈런’을 해야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까닭에 만드는 족족 팔렸다. 하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많은 MD를 쏟아내면서 이제는 ‘또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MD 이상의 상당한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푸드 역시 다를 게 없다.
스타벅스답지 않은 스타벅스코리아의 물량 공세는 3년 전 이뤄진 CEO 교체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보통 기업의 경우 새 수장이 오면 숫자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진다. 마케터 출신 CEO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스타벅스코리아, 즉 SCK컴퍼니의 지난해 매출은 2020년 1조 9284억 원에서 2021년 2조 3856억 원으로 무려 23.7%나 성장했다. 2017년 26.0%, 2018년 20.5%, 2019년 22.8% 등 매년 2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중이다. 이쯤되면 2022년 올해 회사 내부의 매출 성장 목표 역시 자연스럽게 짐작이 된다.
여기서 진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매년 20% 이상 성장하는 것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종 경쟁업체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성장률이다. 압도적 1위를 하고 있는 기업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스타벅스니까 그냥 되는 것 아닐까 할 수도 있지만, 전쟁터 같은 외식 업계에서 그냥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MD, 푸드 등을 담당하는 스타벅스코리아 각 부서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스타벅스 고유의 브랜딩이나 품질 관리, 디자인 일관성은 무시하고 그저 외형 성장에만 올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020년 여름, 여의도에서 서머레디백을 받기 위해 300잔을 구매해 299잔을 버린 유명한 사건에 대해 스타벅스코리아는 그것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대다수 사람들에게 혐오스러운 해프닝이었다. 소비자들이 갖고 싶어하는 건 물건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 녹색 가방이 아니라 스타벅스의 감성과 문화라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게 됐다.
스타벅스 서머 캐리백에 나온 폼알데하이드로 인해 암에 걸린 사람은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스타벅스코리아의 성장 전략은 암세포보다 더 무섭고 지나치게 빠르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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