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학 다닐 때 여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 이야기였다. 한두 번이야 장단 맞춰준다지만 대부분 이야기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됐고, 끝나가나 싶을 때면 화음을 얹듯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군대 이야기를 들고 나오곤 했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군대에서 축구 경기를 한 이야기.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여자들)는 그때부터 귀를 막고 술과 안주에 집중하곤 했다. 그랬는데… 지금 난 군대 드라마를 보며 웃고 있다. 작년엔 ‘디피(D.P.)’가 그러더니, 올해는 ‘신병’이 작정하고 나타났다.
‘신병’은 유튜브 채널 ‘장삐쭈’에서 누적 조회 수 2억 5000만 뷰를 기록하며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동명의 애니메이션 원작을 실사화했다. 올레tv와 시즌(seezn) 오리지널 드라마인 ‘신병’은 사단장 아들인 박민석(김민호)이 신병으로 전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등 별별 인간군상이 모인 군대에서 이들이 생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짤막한 에피소드 형식인 원작과 달리 드라마는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지면서 원작의 싱크로율을 극대화한 인물들과 원작에 없던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를 녹여내면서 웃음과 함께 쫀쫀한 긴장감을 더한다.
‘신병’의 재미는 철저한 계급 중심의 폐쇄적인 군대 안에서 사단장 아버지(별 두 개!)와 연대장 삼촌을 둔 ‘군수저’ 박민석이란 존재가 빚어내는 웃음에서 나온다. 박민석은 제5341부대 1생활관으로 전입했지만 이미 부대 내 모든 사람들은 그가 사단장 아들이란 사실을 알고 있고, 곧 육본 등 다른 편한 곳으로 옮겨갈 것이란 걸 안다. 회사로 치면 부대 사람들에게 박민석은 그룹 내 실세 계열사 사장 아들쯤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윗사람 입장에선 신입사원이라 해도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인 것.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작정 잘해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순탄하게 조직 생활을 하기 위해 대충 잘해주면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거리를 유지할 것 같은 그런 존재.
문제는 군대가 일반 사회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회사에서야 치사하고 더러워도 근무 시간만 견뎌내면 되지만, 군대는 24시간 내내 함께할 수밖에 없다. 밥 먹듯 야근하는 회사에서 동료들끼리 가족 이상으로 끈끈해지듯, 좋으나 싫으나 함께해야 하는 군대도 함께하는 이들을 ‘전우’로 거듭나게 만든다. 쓰지 말아야 할 말이지만 ‘폐급’이나 ‘고문관’이라 불릴 만하던 어리바리하고 눈치 없는 박민석이 아버지의 전출 명령을 거부하고 5341부대 1생활관에서 나름대로 버젓한 군인으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웃음과 더불어 나름의 감동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어디나 그렇듯 튀는 사람이 있고, 융화할 수 없는 사람도 있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 문제다. ‘신병’의 웃음과 긴장감은 도무지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간들끼리 모여 부딪칠 때 발생한다. 1생활관의 실세이면서 프로불평러이자 ‘강약약강’을 몸소 보여주는 상병 최일구(남태우), 시의적절한 처세로 생활관 분위기를 살리는 일병 김상훈(이충구), 일절 어떤 불평도 없고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열지 않는 이병 임다혜(전승훈) 등 1생활관의 면면은 다채롭다.
여기에 인간이 어쩜 저럴까 싶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후임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3생활관 상병 강찬석(이정현)이나 강자에게 빌붙어 맞선임을 무시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 이병 지정민(노성은), 얼굴 마주하고 한마디만 해보면 정신이 아찔할 만큼 역대급 기피 신병인 성윤모(김현규) 등 존재감 강한 인간들이 가득하다. 이런 캐릭터들의 관계성 덕분에 키득키득 웃다가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원작은 유튜버 장삐쭈가 직접 일인 다역으로 더빙했는데, 드라마 ‘신병’의 인물들은 원작을 찢고 나온 듯한 높은 싱크로율로 원작을 아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놀라움을 안긴다. 여기에 확장된 이야기가 얹어지면서 ‘악마 상병’으로 불리는 상병 강찬석 같은 캐릭터는 시청하는 이들에게 소름을 안긴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츠다 하사 역을 맡아 진짜 일본인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존재감을 과시했던 이정현이 강찬석을 연기해 눈길을 끈다. 원리원칙을 따지는 융통성 제로의 ‘FM 빌런’인 소대장 오석진(이상진)도 눈여겨볼 캐릭터. 상병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물소위’인 그가 행보관(오용)에게 “엎드려 뻗쳐!”를 시전하던 3화의 배수로 공사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신병’의 명장면 중 하나다.
군대 시트콤 ‘푸른거탑’ 시리즈로 이미 명성을 알린 제작진의 노하우와 디테일 넘치는 장삐쭈 원작이 만나 이렇게나 즐거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병’. 총 10부작인 ‘신병’은 PART2인 6~10화를 지난 8월 5일 올레tv와 시즌(seezn)에서 공개했고, 현재 ENA채널에서 매주 토요일 밤 11시에 방송 중이다. 군대 내 폭력과 괴롭힘, 사회에서의 계급이 군대에도 반영되는 계급 문제 등 다양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펼쳐내 군 생활을 경험한 이들은 물론 군대를 모르는 사람들도 흥미진진하게 시청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처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 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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