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에 직면했는데도 다자공동체로서 대응을 못 하고 있다. 집단대응을 할지 집단자살을 할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7월 18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연설 내용이다. 최근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폭염과 산불 등 기상이변이 생기면서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한 것이다. 7월 21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의 자매이자 어머니인 지구가 고통 속에 울고 있다. 세계 지도자들은 국가안보 등 중대 사항을 처리할 때와 같은 수준으로 기후 변화에 맞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세계적으로 이상기후가 뚜렷한 상황이다. 사막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폭우가 내리고, 영국은 섭씨 40도 넘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고 호주는 연일 홍수가 났다. 유럽 전역에서는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각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2015년 유엔 195개국은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을 체결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기로 약속했다. 40여 개국이 참여한 교토의정서를 발전시킨 형태다. 파리협정 제2조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2℃보다 훨씬 아래(well below)로 유지해야 하고, 1.5℃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한다고 규정했다. 나라별로 감축 목표도 설정했는데, 한국은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온실가스 24.4%를 감축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탄소중립 이행도는 처참한 수준이다. 기후변화 국제 분석기관인 기후행동트래커(CAT: Climate Action Tracker)는 한국의 이행 수준을 ‘매우 불충분(HIGIHLY INSUFFICIENT)’으로 평가했다. 6가지 평가단계 중 하위 5위다. CAT는 “한국이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보다 4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2021년 12월에 새로 설정하고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한 것은 개선된 상황이지만, 2020년에 화석연료 비중이 67%를 차지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6% 내외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1년 온실가스 잠정배출량은 6억 7960만 톤으로 전년보다 3.5% 증가했다. 국내총생산(GDP)당 배출량은 356톤/10억 원 수준이다. 이에 한국은 세계적으로 ‘기후악당’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탄소중립 내용 없고 ‘미세먼지 정화기 설치’ 등 엉뚱한 내용도
2021년 11월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2050년에는 실질적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또 정부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갱신했는데,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높여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방안이다.
그러나 5월 10일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시나리오는 사실상 윤석열 정부가 이어가야 하는 형국이다.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정책은 어떨까. 윤 대통령의 기후위기 대응 주요 공약은 △미세먼지 30% 이상 감축 △지속 가능한 산림자원 육성 △사전 예방적 관리로 물 서비스 제공 △생물다양성 보전 △쓰레기 처리 매립·소각 중심에서 열분해 방식으로 전환 등이다.
문제는 공약에 탄소중립 방안이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계획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국제적으로 대표 온실가스로 정한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 △삼불화질소(NF3) 관련 내용이나 탄소를 감소시키는 방안도 찾아보기 힘들다.
기후위기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 공약은 △화력연료 발전 비중 축소 △내연기관 자동차 신규등록 2035년 금지 △플라스틱 1회용품·쓰레기 발생 감소 △바이오순환림 조성해 탄소흡수 증가 등에 불과하다.
이 같은 공약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발표된 국정과제에 반영됐다. 대표적으로 산림지원을 육성하고 보호하겠다는 정책이 빠지고, 물 서비스 관리와 생물 다양성 보전은 하나의 정책으로 축소됐다.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신규 등록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사라졌다.
국정과제에 담긴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큰 축은 ‘초미세먼지 30% 감축’과 ‘탄소중립 이행방안 조정’이다. 기존 국가목표였던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목표는 그대로다.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에 온실가스 배출 목표 ‘40%’ 유지
윤 정부는 탄소중립 이행의 구체적인 이행을 위해 7월 12일 시행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을 제정했다. 이 시행령은 탄소중립 계획과 관련 위원회 설치 등을 명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에서 대통령령(40%)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한다는 방안이 명시된 것이다. 이는 이전 문재인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이어간다는 의지다. 또 국가 탄소중립 계획을 넘어 시·도별 계획을 세울 수 있게 정비하고, 특정 도시를 탄소중립도시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기후변화영향평가 도입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설치도 눈여겨볼 만하다.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변형된 형태다. 이에 따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도 대폭 수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 정부 시절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수송 △건물 △농축수산 △폐기물 △흡수원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탄소 포집, 저장, 활용) △수소 등으로 항목을 나눠 2050년까지 탄소배출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탄소중립 이행 이유가 ‘무역장벽?’ 재생에너지 내용 하나도 없어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환경부 업무보고에서 엿볼 수 있다. 7월 18일 환경부는 핵심 추진과제로 ‘과학적이고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 이행’을 설정했다. 환경부는 탄소중립을 이행해야 하는 이유로 ‘무역장벽 직면’을 들었다. EU 등에서 탄소배출이 많은 수입품에 국경세를 부과하고, 글로벌 기업도 탄소중립을 선언해 우리나라가 무역장벽에 직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 “지구 온난화로 폭염, 폭설, 태풍, 산불 등 이상기후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을 명시하던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이유다.
그러면서 환경부는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원전 비중을 기존 27.4%에서 30%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명시했다. 탄소 감축목표는 다시 설정하겠다고 밝혔는데, 2023년 3월 국가계획으로 반영하겠다는 목표다. 수출품이 탄소장벽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기업에 탄소배출권 할당량을 늘리겠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결국 탄소중립 정책에 탄소를 줄이는 방안이 부재할뿐더러,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등 기존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홍종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까지 감축하겠다고 하는데, 그 방안이 하나도 없다. 원전을 확대해서 탄소 중립을 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4기가 추가로 들어오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탄소를 어떻게 줄일지 계획이 하나도 없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언급도 부재하다. 모든 에너지, 기후위기 정책을 원전 정책 하나로 대체하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기후위기가 환경 위기를 넘어 경제 위기라는 것을 새 정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주력 전원은 재생에너지다. 정부는 주요 국가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재생에너지 목표량을 대폭 상향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는 낮추려는 모순된 방향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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